[집잇슈]오피스텔 임대인 울리는 한국부동산원 '부동산테크'
부동산테크 시세 쓰면 가입 보증금 더 낮아져
임대인들 "세입자에 수천만원 돌려줘야" 탄식
"의도치 않은 깡통전세 사태 만들 수도" vs "임차인 보호 위해 보수적으로 매겨"
전세보증금반환보험 가입금액의 기준으로 삼는 한국부동산원의 '부동산테크' 시세를 두고 나오는 말이다. 논란은 최근 오피스텔 임대인들이 전세보증금을 내주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서 불거졌다. 임대인들은 고금리, 가격 하락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험 가입 요건까지 높아지자 '삼중고'에 허덕이는 모습이다.
특히 지난해 말 부동산테크의 오피스텔 시세 공개가 확대됐는데, 이 때문에 보증보험 가입 문턱이 더 높아지자 시장에 더욱 한기가 돈다. 임대인들은 '요건 완화'를 외치고 있지만 정부는 '임차인 보호'가 우선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부동산테크 시세가 임대인 울리는 이유
오피스텔 임대인들은 강화된 HUG의 전세금반환보증보험(이하 전세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맞추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전세보증보험은 임대인이 계약 기간이 만료됐는데도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경우 HUG가 대신 변제해 주는 보험이다. 지난 2022년 말 '빌라왕' 등 대규모 전세 사기가 터지면서 이 상품을 찾는 임차인이 급증했다. ▷관련기사: [똑똑한 전세살이]⑤33만원 내고 1억 지키는 법(feat.전세보증보험)(2023년 2월22일)
그러나 가입 요건이 까다로워지면서 임대인 입장에선 갱신 계약 시 전세 보증금 수천만원을 돌려주거나 신규 계약 시 '기준이 되는 시세'에 맞춰야만 상품에 가입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전세보증보험 가입 요건 중 가입 금액을 공시가격의 150%에서 140%로 낮추고, 인 한도 안에서 전세금의 담보 인정 비율도 100%에서 90%로 줄였다. 결국 전세 보증금이 공시가격의 126%(140%x90%) 내에 들어와야만 보험 가입이 가능해진 셈이다.
전세보증보험은 임차인이 보증료를 내고 가입하는 상품이긴 하지만, 가입이 안 되는 주택은 임차인의 선택을 받기 힘들다. 이 때문에 임대인 입장에서도 보증금을 조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령 A 주택의 기준 시가가 2억원라면 기존에 3억원(공시가격의 150%)까지 보증보험 가입이 됐지만, 요건 강화 이후부터는 2억5200만원까지만 가입이 된다. 만약 2년 전 전셋값이 상승세라 전세보증금을 3억원까지 책정했다면, 2년 후에는 시세를 4800만원 낮춰야 갱신 계약 또는 신규 계약이 되는 셈이다.
더군다나 지난해 말부터는 이 문턱이 사실상 한층 더 높아졌다. 한국부동산원이 운영하는 '부동산테크' 시세가 대폭 공개되면서다.
오피스텔은 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을 위해 주택 가격을 산정할 때 '부동산테크' 시세와 'KB 시세' 둘 중 하나를 이용할 수 있다. 이 두 곳에 모두 시세 공개가 안 돼 있을 경우만 국세청 '홈택스'의 기준 시가를 적용할 수 있다.
이 3가지 기준 금액 중 가장 먼저 적용하게 되는 부동산테크 시세가 너무 낮다는 게 임대인들의 불만이다. 부동산테크는 해당 오피스텔의 상한 평균 가격, 하한 평균 가격을 제시하는데 HUG의 전세보증보험 가입 시 주택 가격 산정을 할 땐 '하한 평균 가격의 90%'로 계산해서 본다.
이때 나오는 하한 평균 가격 자체가 터무니없이 낮다는 게 임대인들의 주장이다. 한국부동산원이 전세사기 등 피해 예방을 위해 지난해 말 오피스텔 시세 공개를 기존 물량 대비 두 배가량 확대했는데, 그 영향으로 오피스텔 대부분이 부동산테크 시세를 쓰게 된 상황에서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부동산테크 시세는 지난 2014년 최초 공개했는데 공동주택에 좀 더 집중하다 보니 오피스텔은 시세가 일부만 공개됐었다"며 "이로 인해 전세사기 방지 등 미흡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서 지난해 말 공개 범위를 대폭 확대해 대부분 공개가 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부동산테크 시세는 전국 협력 중개업소를 통한 실거래가, 매물 등 데이터에 더해 부동산원에서 자체적으로 분석하는 머신러닝, 알고리즘 자료 등까지 참고해 부동산원이 직접 가격 결정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선량한 임대인 도와야 vs 임차인 먼저 보호해야
이처럼 부동산테크 시세가 공개되면서 하루아침에 수천만원의 보증금을 돌려주게 생긴 임대인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경기도 하남시 망월동 한 주거용 오피스텔을 소유한 임대인은 "지난해 연말만 해도 부동산테크 시세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세청 기준 시가를 기준으로 삼아 준비를 하고 있었다"며 "그때 계산했을 땐 기존 임차인 전세보증금을 2000만원만 반환하면 됐는데 부동산테크 시세를 적용하니 5000만원을 돌려주게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임대인이 갑자 수천만원의 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 됐는데 이 돈을 마련하지 못하면 의도치 않게 전세 사기범으로 몰릴 수도 있다"며 "임차인도 월세보다 전세를 선호하기 때문에 전셋값을 대폭 낮춰야 하는데 단번에 수천만원씩 낮추는 건 부담이 너무 크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B 오피스텔(총 273가구)의 경우 현재 전용면적 28·30㎡ 모두 1억6000만원 전후에 전세가 실거래되고 있다. 2년 전에 비하면 시세가 1000만원가량 낮아졌다.
이 오피스텔의 보증보험 가입금액을 산정할 때 홈택스 기준 시가로 보면 28㎡의 경우(7층 이상) ㎡당 244만4000원으로 126% 한도를 적용하면 1억7374만원까지는 보증보험 가입이 된다. 갱신 계약이나 신규 계약 모두 안정권에 들어서는 셈이다.
그러나 같은 평형 기준 부동산테크 시세는 하한 평균가가 1억6600만원으로 책정됐다. 여기서 90%는 1억4940만원이기 때문에 2년 전 1억7000만원을 기준으로 전세 계약을 체결했을 경우 2000만원가량 돌려줘야 보증보험을 들고 갱신 계약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런 탓에 임대차시장의 교란을 방지하기 위해선 전세보증보험 요건 완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오피스텔 시장은 고금리 기조가 이어진 가운데 지난해 전세사기 여파로 전세 및 매매 수요가 크게 줄면서 이미 거래가 꽉 막히고 가격이 급락한 상태다.
한국부동산원의 집계 결과 4분기 전국 오피스텔 가격은 0.56% 내려 전분기(-0.37%) 대비 하락 폭이 더 커졌다. 서울은 3분기 -0.14%에서 4분기 -0.38%, 수도권은 -0.26%→-0.45%, 지방 -0.82%→-1.02% 등 모두 내림 폭이 확대됐다.
부동산 중개업체 집토스에 따르면 올해 2년이 지나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서울·경기·인천 빌라(연립·다세대) 12만2087건 가운데 66%가 동일 보증금을 유지할 경우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되면 임차인도 보증보험 가입 매물을 구하기 힘들어질 거란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우선 임대 사업자부터 구제에 나섰다. 앞서 1·10대책에서 임대 공급 활성화를 위해 임대인이 의무 가입하게 한 '임대보증금보험'의 주택 가격 산정 방식을 완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전세보증보험은 가입 요건이 강화된 지 8개월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점인 만큼 다시 완화하긴 어려워 보인다. 아울러 여전히 전세사기 등 위험이 남아있는 만큼 정부의 '임차인 보호' 입장도 단호하다.
HUG 관계자는 "한 사이클(기본 임대차 계약기간 2년)은 최소 돌려봐야 효과 자체를 파악할 수 있다"며 "요건을 강화한지 1년도 안 됐기 때문에 당장 완화를 검토하고 있진 않다"고 말했다.
부동산원 관계자는 "선량한 임대인의 경우 안타깝고 임차인들도 전세보증보험 가입 매물을 구하기 어려울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의 전셋값을 안정화하고 전세사기 등을 막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채신화 (csh@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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