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역 상가 땅 반값에도 안팔려 … 첫삽 못뜨는 오피스텔 급증

서찬동 선임기자(bozzang@mk.co.kr), 이석희 기자(khthae@mk.co.kr) 2023. 12. 10. 17:48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울 알짜 땅 줄줄이 공매
수익형 부동산 초비상
이태원역 근처 주상복합
고금리 짓눌려 공매 넘어가
가산동 'W몰' 자리도 매물로
금싸라기땅 공매 성사 촉각
여의도 성모병원 인접 토지
금융중심지 관심 뜨겁지만
대금완납 등 낙찰 걸림돌 많아
LH가 오는 13일 공매하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61-2 토지. 개발시장이 침체된 상황에서 입찰 가격이 4000억원을 웃돌아 매각 성사 여부가 주목되고 있다. 김호영 기자

"벌여놓은 사업을 마무리 짓는 게 우선이지, 토지 매입이나 신규 개발사업은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용산구, 여의도동 같은 곳에서 알짜 입지 땅이 매물로 나오고 있지만, 현재 건설사나 시행사 관계자들은 자금 경색에 대비해 최대한 리스크를 줄이는 체질 개선에 들어갔다. 그러면서 재무 부담을 키울 상황이 아니라고 하소연한다.

오는 14일 공매가 진행되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 1310-5 일원은 시행사인 삼양엘앤디가 5층 높이 상가 건물로 개발하려다 사업이 중단됐다.

대지 5500㎡ 규모로 강남역에서 가까워 입지는 양호하지만 기존 낡은 건물을 철거까지 마친 상태에서 브리지론을 본PF(프로젝트파이낸싱)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다. 첫 입찰가는 5300억원에 달했지만 매수자가 나서지 않자 이번 최저입찰가는 절반 수준인 2535억원가량으로 떨어졌다. 결국 입찰 전 수의계약도 가능해졌다.

앞서 지난 5월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간 중견 건설사 신일건설의 사업장도 공매에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422-1 일원은 약 1200㎡ 대지에 주상복합아파트를 짓다가 공정률 50%에서 멈췄다. 지난달 첫 공매가 616억원에 매물로 나왔지만 계속 유찰돼 현재 364억원가량으로 입찰가가 떨어졌다.

신일건설은 기업회생 신청 당시 전국에 10여 곳 사업장이 있었다. 분양이 완료되고 준공이 얼마 남지 않은 사업장은 공사가 계속 진행되더라도, 초기 단계 사업장은 공매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11일 공매가 진행될 서울 금천구 가산동 60-27·50 땅은 패션 아웃렛인 'W몰'이 있던 곳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여파로 매출이 부진해지자 지난해 시행사가 지식산업센터로 개발하기 위해 사들였다. 하지만 지난 10월 브리지론 만기 연장을 못해 결국 2607억원에 공매로 나왔다.

토지 매각 가격이 감정가보다 떨어져도 선뜻 나서는 인수자가 없어 매물로 나오는 땅은 당분간 더 쌓일 전망이다. 공매를 받아줄 주체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소규모 오피스텔 개발 현장은 '수익형 부동산' 중에서도 특히 사정이 좋지 않다.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에서 분양 중이던 오피스텔 '여의도 그랑리세'도 시행사의 자금난에 공매를 진행 중이다. 애초 감정가액은 260억원대였지만 여러 차례 유찰되며 최저입찰가가 154억원가량으로 뚝 떨어진 상태다. 부동산 활황기를 누렸던 노른자 입지의 하이엔드 오피스텔마저 사업성이 악화하자 첫 삽도 못 뜨는 상황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올해 1~9월 오피스텔 공급량은 1만2800실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분의 1 수준이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전국에 개발이 중단돼 매물로 나온 토지 50곳 정도의 리스트가 시행업계에 나돌고 있다"며 "지금은 개발사업에 나설 때가 아니어서 거의 거래가 안 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보유한 여의도 성모병원에 인접한 8264㎡ 대지는 공매가격이 4024억원에 달해 부동산시장 향방에 가늠자가 될 전망이다.

애초 문재인 정부 시절 집값을 잡기 위해 알짜 땅을 공공임대주택 용지로 발표했지만 지역주민 반발이 거센 데다 LH 자체 재무 부담이 커지자 매각으로 돌아섰다. 이 땅은 민간에서 사들여도 주거 용지로 개발이 가능하다. 현재 2종 일반주거지역으로 용적률은 최대 250%다. 서울시의 '여의도 금융중심 지구단위계획'에 따라 준주거지역으로 용도변경이 이뤄지면 최대 용적률은 500%로 상향될 수도 있다.

지난 10월 30일 입찰 공고문이 처음 게시된 뒤 한 달여 만에 조회 수가 4700건을 돌파했다. 관심 매물이라도 조회 수가 많아야 2000건 안팎인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으로 뜨겁다. 하지만 여의도가 국제 금융중심지 개발을 비롯한 호재가 많은 점은 인정한다 해도, 시장 침체로 이 땅이 1차 입찰에서 낙찰될지는 미지수라는 의견이 시행업계에 팽배하다. 주변 토지 거래액보다 높은 공매가격과 매매대금 완납 조건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 현재 하이엔드 주거시설인 '브라이튼 여의도'가 들어선 땅은 3.3㎡(평)당 1억1000만원 수준에 팔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LH의 공매 토지는 평당 1억6000만원에 달한다.

한 시행사 관계자는 "종상향을 감안해도 개발할 때 기대되는 건축 규모에 비해 토지비가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며 "무엇보다 계약 시 매매대금 100%를 완납해야 하는 조건은 현 금융시장 상황에서 시행사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건"이라고 지적했다.

건설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감이 낮은 것도 공매 성적을 장담하기 힘든 요인이다. 주택시장은 올 초 발표된 1·3 대책 이후 분양시장이 잠시 살아났지만 최근 수도권 집값이 하락 전환하는 등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있다.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최근 증가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전국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은 총 1만224가구로 집계됐다.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이 1만가구를 넘어선 건 2021년 2월 이후 2년8개월 만이다.

올해 폐업한 종합건설사가 500곳을 넘고 부도 처리된 건설사도 14곳에 달한다.

[서찬동 선임기자 / 이석희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