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센트럴파크 될까… 기대 우려 뒤섞인 세운지구[황재성의 황금알]

황재성 기자 2023. 10. 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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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운상가 재정비계획 다시 개발 중심으로 변경
2: 최첨단 시설로 중무장한 경제문화 중심지로 주목
3: 강남 개발 본격화와 용산전자상가 등장에 쇠락
4: 일·주거·문화 가능한 도심복합단지로 변신 기대
황금알: 황재성 기자가 선정한 금주에 알아두면 좋을 부동산정보
매주 수십 건에 달하는 부동산 관련 정보가 쏟아지는 시대입니다. 돈이 되는 정보를 찾아내는 옥석 가리기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동아일보가 독자 여러분의 수고를 덜어드리겠습니다. 매주 알짜 부동산 정보를 찾아내 그 의미를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서울시가 도심에서 낙후된 지역으로 손꼽혀 왔던 세운재정비촉진지구를 대규모 녹지공간과 업무, 주거용 건물, 문화상업시설 등으로 개발하는 내용이 담긴 변경안 주민 공람을 지난 25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진행 중이다. 사진은 세운재정비촉진계획 조감도. 서울시 제공
‘붕어빵틀에서 인공위성까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한창이던 2021년 12월 10일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역사박물관은 서울 성동구 청계천로 530에 위치한 청계천박물관에서 기획전시를 개최했습니다. 이듬해 4월까지 진행된 이 전시회는 ‘청계천 기계공구상가’의 역사를 소개하는 내용들로 채워졌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이를 소개하는 보도자료의 제목으로 붕어빵틀과 인공위성을 거론한 데 대해 “일상적인 것에서 최첨단의 물건까지 가능한 곳, 청계천의 넓은 제작 스펙트럼을 보여준다”고 설명했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여겨졌던 ‘세운상가 일대 청계천을 한 바퀴 돌면 탱크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실제로 가능한 일임을 보여주겠다는 뜻입니다.

당시 전시에선 청계천에 붕어빵틀을 제작 의뢰한 뒤 일주일 만에 만들어지는 제작과정을 영상에 담아 소개했습니다. 또 미디어아트 작가 송호준이 청계천에 의뢰해 만든 인공위성(‘OSSI-1’)을 2013년 4월 카자흐스탄에서 우주로 쏘아 올리는 과정을 담은 영화 ‘망원동 인공위성은’을 무료로 상영했습니다. 제작 당시 공정에 참여했던 청계천 기술장인의 작업 일부를 재현하는 이벤트도 진행됐습니다.

최근 청계천 기계공구상가 일대가 다시 주목받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이곳을 포함한 주변 일대를 재정비하기 위한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이하 ‘변경안’)을 확정하고 지난 25일부터 다음 달 8일까지 주민공람을 진행 중입니다.

세운지구 위치도
변경안은 종로구 종묘에서 중구 퇴계로 일대 약 43만㎡ 부지를 대규모 녹지공간과 업무 및 주거용 건물, 다양한 문화·상업시설이 어우러진 ‘녹지생태도심’으로 바꾸기 위한 재개발 사업 시 반영해야 할 지침입니다.

핵심은 종묘에서 퇴계로까지 1km 정도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세워진 세운상가 전체를 공원(존치정비구역)으로 만들고, 세운상가 좌우에 위치한 기계공구상가나 인쇄소 밀집지역 등은 고밀 개발을 통해 직주 근접이 가능한 복합업무단지로 바꾸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세운 서울시장이 33대 시장(2006년 7월 1일~2010년 6월 30일)으로 재직하던 2006년에 추진했던 재정비계획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침체됐던 국내 부동산 경기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여기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시절(2011년 10월 27일~2020년 7월 9일) 세운상가와 주변 일대 관리 방향을 개발 대신 보전과 재생으로 바꾸면서 동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서울시의 이번 변경안에 대해 여전히 반대와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특히 세운상가가 지닌 근대 서울의 역사적 가치를 송두리째 뽑아 버리는 일이 마냥 옳으냐는 지적이 적잖습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상가군을 없애고 조성한 녹지축 주변으로 남산의 경관을 가리게 될 초고층 건물군을 조성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주장합니다.

서울의 한복판에 자리한 세운상가와 주변 일대가 지닌 역사적 가치가 무엇인지, 현재 상황은 어떠한지, 서울시가 그리는 미래는 어떻게 될지를 짚어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세운상가, 신문화의 전진기지

국내 최초의 도심재개발 사업으로 건립된 세운상가는 최초의 주상복합건물, 최초의 슈퍼마켓 등 수많은 진기록을 보유하며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서울의 명물로 여겨졌다. 사진은 1983년 11월에 촬영한 것으로, 전성기 시절의 세운상가 상가 내부 모습이다. 동아일보 DB
세운상가는 서울 종로구 종로3가와 중구 퇴계로 3가까지 남북으로 연결된 주상복합상가 건물 7곳을 통칭하는 이름입니다. 일반적으로 ‘세운상가’로 불립니다. 세운은 1966년 4월 서울시장으로 부임한 김현옥 시장이 ‘세계(世界)의 기운(氣運)이 이곳에 모이라’는 뜻에서 붙인 것이었습니다.

건물은 모두 8개였는데, 현재는 7개만 남아 있습니다. 북쪽(종로3가)에서 남쪽(퇴계로3가)으로 세운상가(현대상가)-세운상가 가동-청계상가-대림상가-삼풍상가-풍전호텔(현 호텔PJ)-신성상가(인현)-진양프라자의 순으로 배치돼 있습니다. 종묘 바로 앞에 위치했던 세운상가(현대상가)는 2008년 철거되고, 현재는 공원(세운초록띠공원→다시세운광장)이 조성돼 있습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2010년 발행한 책(‘세운상가와 그 이웃들’)에 따르면 세운상가의 뼈대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소개공지대(疏開空地帶)’입니다. 이는 시가지에 화재가 났을 때 주변으로 번지는 일을 막기 위해 대규모 직선형으로 조성하는 빈터입니다.

미국과 전쟁을 치르던 일제는 일본의 주요 도시가 폭격받고, 제주와 부산 근처에 미군기가 출현하자 1945년 3월 ‘한반도 내의 도시소개대망’을 세운 뒤 서울에 5곳의 소개공지대를 결정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세운상가 자리로, 규모가 폭 50m, 길이 1km에 달했습니다.

일제가 미국에 항복하고 해방이 되자 텅 빈 공터였던 이곳에 무허가 건축물이 난립합니다. 해외 교민과 북쪽에서 내려온 이주민, 서울로 일자리를 찾아 모인 농촌지역 주민들이 거주하는 집이었습니다.

서울시는 한국전쟁 이후 복구계획을 세우고 이곳에 도시계획도로를 건설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재정 부족과 행정력 부재 등으로 계획은 실현되지 못합니다. 그 결과 무허가 건축물은 더욱 늘어났고, 지역 환경은 갈수록 나빠졌습니다. 게다가 일대에 대규모 사창가도 형성되자 여론의 비판이 잇따랐습니다.

이에 서울시는 소개공지와 주변 지역 환경정비를 위한 도심부 불량주택지대 재개발을 주요 시정계획으로 정합니다. 그리고 도로 대신 세운상가를 건설하기로 결정합니다. 이 과정에 김현욱 시장은 재개발지구 지정-계획 수립-건축물 철거를 동시에 진행하는 불도저 같은 추진력을 보였습니다.

건설공사도 거침없이 진행됐습니다. 1966년 9월 8일 첫 기공식이 거행됐는데, 이듬해인 1967년 11월 17일 첫 상가(현대상가)의 준공식이 진행됐을 정도였습니다. 이를 통해 2000개가 넘는 점포와 호텔 객실 177실, 주거용 아파트 851채가 들어서는 초대형 주상복합 건축물이 들어섭니다.

세운상가는 1967년 첫선을 보인 뒤 1980년 중반까지만 해도 신문화 전진기지이자 대중문화의 메카로 자리매김했다. 사진은 1977년 세운상가에서 불법복제음반(일명 ‘빽판’)을 사려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동아일보 DB
세운상가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개념들이 많이 도입됐습니다. 8~17층 높이의 건물 1~4층에는 상가를 넣고, 5층 이상에 아파트를 배치한 국내 최초의 주상복합건물이었습니다. 당초 계획에는 1층은 자동차 전용도로와 주차장으로 구상됐으나 최종적으로는 상가가 들어섰습니다.

또 전체 상가군을 세운상가(현대상가)+세운상가 가동, 청계+대림상가, 삼풍상가+풍전호텔(현 호텔PJ), 신성(인현)상가+진양프라자 등 4개 지구로 나눈 뒤 일상 도시 생활에 필요한 동사무소, 파출소, 은행, 극장, 초등학교 등을 배치했습니다. 주변 지역의 개발을 고려해 생활거점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의도였습니다.

특히 4개 상가군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종로와 을지로, 퇴계로 일대에 이미 활성화돼 있던 산업과의 연계성을 고려해 배치했습니다. 예컨대 세운상가(현대상가)와 세운상가 가동은 전자제품, 청계+대림상가에는 기계·조명·건축자재 관련 시설을 유치하는 식입니다.

사람이 걷는 보행로와 차들이 다니는 도로를 분리하는 ‘보차분리’도 도입됐습니다. 이를 위해 보행로는 3층에 설치한 데크를 활용하게 했습니다. 이를 통해 종묘에서 퇴계로까지 1km 거리를 걸어서 통행할 수 있게 한다는 구상이었습니다.

아파트는 당시로서는 최첨단 시설을 고루 갖춘 최고급이었습니다. 1968년 10월 14일 자 동아일보에 실린 분양 광고에는 ‘실내 전체 스팀 난방, 온수, 냉수 상시 공급, 수세식 화장실과 최신욕조와 샤워 설비, 주부실(안방)은 스팀식 온돌 장치, 어린이 놀이터 설치’와 같은 홍보문구가 보입니다.

상가 시설에는 TV, 냉장고, 오디오 등 각종 전자기기는 물론 국내 최초 대형 슈퍼마켓, 미용체조실(헬스장), 실내골프장, 사우나 등 당시 국내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기능들이 최초로 입점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마디로 세운상가는 신문화의 전진기지였습니다.

● 세운상가, 도심 팽창에 외면받다

세운상가는 1970년대 후반부터 비판에 시달린다. 특히 1층 공간에 주차 차량과 통과 차량, 보행자가 뒤얽히면서 설계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기 시작한다. 사진은 1993년 2월 10일 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것으로, 세운상가 1층 통로가 언제나 짐을 싣고 내리는 트럭들로 만원이어서 불편으로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DB
1967년 처음으로 모습이 공개됐을 때 세운상가에 대한 기대는 컸습니다. 세운상가로 인해 서울의 상업 판도가 달라질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습니다. 기존 백화점은 건물이 낡고, 거의 임대방식의 소매인이 운영하는 잡화점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아파트는 지하철이 다니지 않던 시기였으므로, 종로 중구 등 도심으로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이 부각됐습니다. 그 결과 세운상가에는 당대 최고 유명인사와 고위 관료 등이 입주하는 등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197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세운상가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비판의 이유는 크게 3가지였습니다. 첫째는 도시 경관을 해친다는 지적입니다. 인접 지역의 건축물과 비교할 때 너무나 크고, 동서 방향으로 발달한 서울시의 도로 축을 단절시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녹지축 단절을 유발했다는 문제입니다. 북악산-창덕궁-종묘로 이어지던 녹지가 남산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3층에 보도를 둔 보차도 분리 시도에 대한 비난입니다. 동서 방향 중심인 서울시 교통흐름에 남북 방향의 도로를 설치해 방해했다는 것입니다. 또 보행로를 3층에 둠으로써 1층 공간이 주차차량, 통과차량, 보행자가 엉키는 혼잡만 유발했다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이처럼 서울시의 도시형성 질서를 거스르는 건물군의 배치는 결과적으로 동서로 이어지는 도시축의 흐름을 단절하고, 주변 지역의 개발 활성화에 긍정적인 영향도 주지 못한 것으로 평가받았습니다. 또 계획의 도와 달리 세운상가 좌우측에 위치한 주변 상권의 기능 연계마저 막고, 활성화를 저해한다는 지적도 이어졌습니다.

당시 설계를 주도했던 윤승중 원도시건축 명예회장은 책(‘세운상가와 그 이웃들’)에서 이에 대해 “(세운상가를) 계기로 주변에 영향을 줘서 같이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것을 기대했지만 70년대까지는 경제적인 능력이 따라오질 못하면서 주변 지역 개발이 안 됐고, 80년대 이후에는 서울시가 재개발지구로 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여기에는 1970~1990년대까지 가파른 경제성장과 함께 폭발적으로 늘어난 인구와 자동차 등으로 도심 교통난이 심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울역사편찬원에 따르면 1960년까지 244만 명에 불과했던 서울 인구는 1970년 543만 명, 1980년 836만 명으로 폭증합니다. 자동차는 1961년 4506대에서 1970년 3만 4870대, 1980년 13만 505대로 수직상승합니다.

세운상가가 쇠퇴한 주원인은 강남개발과 용산전자상가의 등장이었다. 하지만 경제의 가파른 성장으로 서울 시내 자동차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사진은 1988년 촬영한 청계천 주변 세운상가 모습이다. 동아일보 DB
세운상가의 쇠퇴는 주거시설부터 나타나기 시작됐습니다. 1970년대 강남개발이 본격화되고, 한강변에 대형 공급 아파트가 건립되면서 거주민들의 이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상권도 1970년대 명동 인근에 위치한 신세계 미도파 롯데백화점 등이 잇따라 개관하면서 중심지로서의 위상을 잃게 됩니다.

직격탄은 세운상가의 주력이던 전기·전자업종이 1977년 도심부적격 업종으로 지정되고 도심 외곽으로 이전하는 정책이 결정된 일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1983년 서울 용산구 일대에 위치한 청과물시장을 송파구 가락동으로 이전시키고, 그 자리에 대규모 가전제품 판매단지를 조성하기로 결정합니다. 이어 1987년 용산 전자상가가 가동되고, 1998년 서울 광진구에 테크노마트가 들어서면서 상인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이후 역대 서울시장들은 세운상가와 주변 일대 재정비계획을 세우고, 세운상가 전면 철거 등을 추진했지만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의해 급제동이 걸립니다. 2014년 세운상가 철거와 주변 8개 구역을 통합개발하는 계획을 전면 취소하는 대신 전체를 171개로 쪼개 분할 개발하기로 한 것입니다.

그런데 뚜렷한 성과가 나지 않자 박 전 시장은 2020년 3월 발표한 ‘세운상가 일대 도심산업 보전 및 활성화 대책’을 통해 “‘개발·정비’에 초점이 맞춰져 있던 세운상가 일대의 미래 관리 방향을 ‘보전·재생’으로 전환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아예 재개발이나 철거 대신 기존 시설의 유지 관리에 초점을 맞춰 관리해나가겠다는 의미였습니다.

● 세운상가 자리에 연트럴파크 4배 녹지축

근대화의 상징이자 대형 주상복합건물의 효시로 평가받던 세운상가는 강남개발과 용산전자상가의 등장으로 빠르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사진은 2008년 12월 17일 세운상가 8개 상가 가운데 하나인 종로 세운상가(현대상가) 철거작업(‘세운녹지축 조성사업’)을 시작할 당시의 모습이다. 동아일보 DB
하지만 서울시가 지난 24일 발표한 ‘세운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이하 ‘변경안’)은 다시 개발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세운상가와 주변 일대의 대대적인 변신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그 필요성에 대해 변경안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재개발이 좌초된 세운지구에는 30년 이상 된 노후 건축물이 97%에 달하며, 붕괴 화재 등에 취약한 목조 건축물도 57%에 이른다”며 안전에 취약하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에 사업체 수와 종사자 수가 전반적으로 감소하면서 세운상가와 주변 일대의 경쟁력 약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서울시가 최근 작성한 ‘서울도심 기본계획-2023년’에 따르면 세운상가 주변 지역 사업체 대표자의 70% 이상이 50대 이상이며, 2017년 사업체 1곳당 매출액은 2010년 대비 15% 감소했습니다.

여기에 도심 공동화 현상도 가속화하고 있습니다. 재정비촉진지구 내 정비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서 공실이 늘어났고, 2020년 1월 유동 인구는 전년 동월 대비 30%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게다가 난개발 조짐마저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제시된 변경안의 핵심은 미국 뉴욕 맨해튼이나 일본 도쿄처럼 도심에서 일하면서 근처 녹지 공간에서 휴식을 취하고, 여가 활동까지 누리게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세운상가를 이루는 7개 노후 상가를 공원으로 바꾸기로 하고, 삼풍상가와 풍전호텔(호텔 PJ)을 도시계획시설 상 공원으로 결정했습니다. 7개 상가 중앙 지점부터 공원화해 위아래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구상입니다.

공원으로 지정된 토지는 협의 매수 대상이 돼 서울시가 토지 소유주와 가격을 놓고 협상에 들어가게 됩니다. 서울시는 소유주와 협상을 시도하되 결렬되면 수용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계획대로 진행되면 북악산-창덕궁-종묘-남산을 거쳐 한강으로 이어지는 약 14만㎡ 녹지 축이 확보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연트럴파크(경의선숲길공원·3만4200㎡)의 무려 4배 크기에 해당하는 규모입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세운상가와 주변 일대를 대규모 녹지공간과 업무 주거용 건물,. 문화상업시설 등으로 재개발하는 방안을 또다시 추진하기로 해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그림은 2008년 12월 18일 자 동아일보에 게재된 삽화로, 종로세운상가(현대상가) 철거식을 알리는 내용을 담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박원순 전 시장이 1100여억 원을 투입해 만든 공중보행로는 철거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만 서울시는 공중보행로 사업과 세운지구 개발 사업 간 연결성이 없어 별도로 추진계획을 세워 처리 방안을 고민하겠다며 직답을 피하고 있습니다.

주변 지역은 세운상가 개발과 묶어 통합 재개발을 유도해나갈 방침입니다. 우선 블록별로 공원을 조성하고 주변 건물들 전면부는 공원과 연결할 계획입니다. 지하공간을 통합 개발해 자동차가 지상으로 다니는 것을 최소화하고, 남은 공간은 직선 형태의 공원으로 만들 예정입니다.

또 청계천과 도심공원 일대에는 도심 공동화를 막고, 직주(직장·주거) 혼합도시를 구현하기 위해 1만 채 규모의 도심 주거단지도 조성합니다. 개발되는 주택의 10%는 도심형 임대주택으로 만들어 직장인, 청년, 신혼부부 등에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종묘~퇴계원 일대에 위치한 각종 영화관이나 공연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국내 영화산업의 메카로 불리는 충무로를 도심 문화거점으로 활용하고, 을지로 일대 도심공원 지하에 1200석 규모의 대규모 뮤지컬 전용 극장을 건설할 계획입니다.

하지만 이런 서울시 계획이 순탄하게 진행되기에는 적잖은 걸림돌이 있습니다. 우선 기존 소유주나 상가 영세 임차인들 반발입니다. 실제 세운지구 일대 상가주 등 일부 주민은 서울시 수용계획에 반대하는 탄원서를 걷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세운상가에서 활동하는 영세 임차인들의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 우려도 해결과제입니다. 세운지구의 대표적인 업종이자 가장 비중이 큰 인쇄업종의 경우 종사자 수만 1만 4000명으로 추산됩니다. 그런데 이들의 90%가량이 5인 이하 사업장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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