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설계·시공·감리 겹친 ‘무량판 구조’ 부실 되풀이
‘필수’ 보강근 설계 오류·누락 많고…설계사 역량 부족도
현 감리제도 전 과정 문제 못 막아…“구조기술사 참여해야”
인천 검단, 경기 남양주 등 철근이 빠진 ‘부실 아파트’들은 모두 ‘무량판’ 구조였다. 과거 붕괴 사고로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 삼풍백화점도 무량판 구조였다. 전문가들은 무량판 구조가 정밀한 설계와 시공, 감리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붕괴 등 사고 위험이 발생할 수 있음에도 무량판에 대한 낮은 이해로 철근 누락 사건이 빈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무량판 구조는 전단보강근 필수
무량판은 ‘없을 무(無), 대들보 량(梁)’이란 용어 그대로 수평 기둥인 보가 없어 기둥이 상판을 지탱하게 만든 구조물이다. 보가 없는 만큼 층고를 높게 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무량판 구조가 충격에 취약하고 사고 시 인명피해가 크게 날 수 있다는 점이다. 기둥과 슬래브 사이 철근 정착에 문제가 생기면 기둥이 슬래브를 뚫는 ‘펀칭’ 현상과 함께 각 층이 아래로 떨어져 연쇄 붕괴가 일어날 수 있다.
펀칭 현상은 무량판 구조인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기 바로 전날인 1995년 6월28일 백화점 옥상에서도 발견됐다. 김영민 한국건축구조기술사회 정책부회장은 “무량판은 짧은 시간에 무너지고, 슬래브도 그 과정에서 떡시루처럼 붙어버리기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면 큰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며 “기둥을 단단하게 고정하고 하중을 막아주는 전단보강근이 필요한 것은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 구조 계산도 안 한 설계업체
하지만 국토교통부가 지난 30일 발표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발주 무량판 구조 아파트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필수 요소인 보강근이 설계 때부터 오류가 나거나 누락된 경우가 많았다. 구조 계산을 제대로 해놓고도 현장 배포 도면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하는 일도 2건 있었다. 입주가 시작된 822가구 충남도청이전도시 단지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무량판 부분 기둥 336개 중 13개가 설계 오류로 보강근이 빠졌다.
보강근 구조 계산 자체를 안 하거나 계산이 잘못된 곳도 7단지에 달했다. 보강근 적용 구간을 잘못 설정했거나 계획 변경 구간에서 계산을 빠뜨린 경우, 단순 계산을 실수한 경우 등이 나왔다. 안홍섭 군산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LH가 설계를 발주하면 그중 일부를 구조설계사들에게 주고 다시 쪼개서 하청에 발주하는 식으로 설계 작업이 진행된다”며 “그 과정에서 실력이 부족한 기술자들이 설계에 참여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민간 건설사 관계자 A씨도 “민간 건설사는 입찰을 해서 설계사를 채택하지만 LH의 경우 퇴직자들이 넘어간 소수 회사 중 극히 일부가 무량판 설계를 사실상 독점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입주한 공주월송과 아산탕정, 그리고 입주 예정인 양산사송 A2 단지는 모두 보강근이 ‘단순 누락’된 것으로 파악됐다. 무량판 구조에 대한 이해가 낮은 현장에서 실수 또는 의도적으로 보강근을 빼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30년차 철근공 B씨는 “공사 일정을 단축하기 위해 보강근 개수를 설계보다 줄여 넣는 일이 있다”고 말했다. 민간 건설사 관계자 C씨는 “최근에는 컴퓨터로 산출량이 정확히 계산되어 설계가 되는데 현장에서는 벽식공법 등에서처럼 관행적으로 철근 일부가 필요 이상으로 설계에 반영된 것인 줄 알고 몇개씩 뺄 수도 있다”고 말했다.
■ 구조 전문가는 어디에
현행 감리제도만으로는 설계부터 시공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막지 못한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LH 발주 현장에서 감리 업무를 여러 차례 맡았다는 D씨는 “도면대로 시공되는지를 확인하는 게 기본적인 감리 업무”라며 “설계부터 잘못된 것은 감리나 시공사가 오류를 잡아내 수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건축구조 전문가가 설계부터 시공 현장까지 전 과정을 감독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현행 건축법 23조는 건축물 설계는 건축사가 아니면 할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여기에 구조기술사가 참여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부회장은 “이전에는 건축학과랑 공학이 구분되지 않았지만 현재는 두 학과가 분리되면서 건축사가 구조를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현장에 투입되고 있다”며 “영국의 세이프티 코디네이터처럼 발주자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안전 책임 전문가가 현장에 상주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지원·심윤지 기자 yjw@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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