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단 개발” 진짜 목적은 ‘아파트 분양’?
“산단 인허가 특례법 이용 편법 택지 개발”
[주간경향] 길은 좁고 구불구불했다. 개천 위로 난 작은 다리는 차량이 지나가기에 위태로워 보였다. 차로 몇 분 올라가니 이내 산업단지 조성공사 현장에 닿았다. 충남 아산시 탕정면 용두리 1-8일원의 산지를 깎아 만드는 아산탕정테크노 일반산업단지이다. 약 11만평(약 36만8763㎡)인 산업단지 부지 북쪽으로 물한산(284m)과 꾀꼬리산(271m)이 있고, 남쪽으로는 방화산(168m)이 있다. 경사가 가파른 편이라 수십m 이상 바위와 흙을 깎아내 여러 단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산에서 나온 바위들이 공사장 한쪽에 높이 쌓여 있었다.
공사로 드러난 황토색 절개지 바로 위쪽으로 깊은 숲이 보였다. 산업단지 부지와 주변 산지는 생태자연도 1등급으로 지정된 곳이다. 1등급이 아닌 지역도 상당 부분은 2등급으로 지정돼 있다. 지난 5월 31일 이곳에서 만난 임장빈 아산탕정테크노 일반산업단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청정지역이라 산업단지 허가가 나와선 안 될 지역이었다”면서 “2015년 이후 공사만 8년째인데, 완공 후에도 주변 산업단지도 놀고 있는 땅이 많아 분양이 제대로 될까 싶다”고 말했다.
아산탕정테크노 일반산업단지는 1·2공구로 나뉜다. 2016년 8월 시행사(탕정테크노파크)가 처음 허가받은 용두리 부지를 1공구로 하면서, 인근 갈산리 일대를 2공구로 신설하는 변경승인신청을 했다. 충청남도는 2018년 10월 19일 이를 승인했다. 임 위원장의 한숨은 자신의 땅이 수용당한 갈산리 일대에 이르자 더 커졌다. 1공구 중심부와 직선거리로 4.6㎞, 차량으로는 약 9.4㎞, 13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이곳 10만평 부지(31만7376㎡)는 1공구의 지원시설로 3500세대의 아파트와 학교, 주차장, 산업체가 입주할 복합시설 용지 등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산업단지보다 아파트 개발에 더 큰 관심
지난해 12월 14일 충청남도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 갈산리 땅의 수용재결을 인용하면서 지난 1월 말부터 바닥 다지기 공사가 시작됐다. “평지라 공사비도 적게 들고 큰 도로(왕복 6차선의 국도 43호선과 2025년 준공 예정인 당진천안고속도로)와 역(천안아산역, 탕정역)도 멀지 않아 교통이 좋죠. 아산의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이라면서 모든 건설사가 욕심을 낸 땅이에요.” 임 위원장이 부지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농사를 짓지 못하도록 일부 부지는 하얀 천으로 덮여 있었다. 올해 9월까지 포도 농사를 짓겠다며 남겨둔 나무들도 보였다.
2공구 북쪽의 이순신대로 건너편으로는 3953세대, 3027세대의 아파트단지들이 높이 서 있다. 2공구 부지에도 3500세대의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임 위원장은 아파트 개발을 목적으로 산업단지 계획변경이 이뤄졌다고 보고 있다. 산업단지 개발을 명목으로 값싸게 농지를 수용한 후 아파트를 분양해 개발이익을 남기려는 사업에 공무원과 정치인들이 길을 열어줬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지원단지 명목으로 이렇게 먼 거리에 있는 부지까지 하나의 산업단지로 묶어 변경해준 거죠. 이런 논리라면 경기도에 산업단지를 세우고, 지원단지라는 명목으로 수㎞ 떨어진 서울 강남의 땅을 수용할 수 있는 거죠.”
시행사는 입주업체 직원들을 위한 기숙사 시설을 1공구에 계획했지만, 급경사 산지라 정주환경이 좋지 않아 2공구를 마련할 수밖에 없었다는 입장이다. 1공구를 추가로 확장하고, 2공구에도 산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주거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에 이를 충족할 필요성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충남도 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에서 주거수요 예측에 타당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3차례에 걸쳐 수정하기도 했다. 시행사 쪽은 지가상승과 공사비 증가로 1평당 133만원인 기존 조성원가로는 산업단지 건설이 어렵다면서 아파트 부지를 분양해 추가 수익을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도 내비쳤다. 시행사는 심의위원회에서 “지원시설용지를 개발해 거기에서 일부 남는 이득금으로 산업단지 조성원가를 ‘다운(Down)’시켜 산업단지도 살고 지원용지도 살 수 있게끔 하는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그러나 본말이 전도된 논리라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2017년 열린 심의위에서 한 위원은 “10단이 넘어가는 대절토사면을 만들어 내는 험준한 지형개발이 기본적으로 조성원가가 높아지니까 2공구 아파트 개발을 해야 한다는 이 논리가… 타당한 논리가 너무 약하다. 그 명분이 있어야 다음 심의에 원만한 승인절차가 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변호사)는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에 관한 특례법(특례법)을 이용해 편법으로 택지를 개발하는 사례라고 봤다. “산업단지 안에 노동자들이 주거할 곳으로 공동주택이 들어갈 순 있지만, 변경승인하면서 처음 허가받을 때 없던 대단지 공동주택단지가 그것도 몇㎞씩 떨어진 곳에 들어왔다. 산단 규모도 10만평 정도로 작은 편인데, 국도와 연결되는 진입도로를 내는 데 435억원의 예산이 투입된다. 굉장한 특혜성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임 위원장은 “대장동은 수익의 반을 국가에서 환수했지만, 이건 모두 민간사업자가 가져가는 것이라 대장동보다 더한 경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충남도 관계자는 “조례를 통해 이윤이 나도 10% 이상은 가져갈 수 없도록 했다. 준공 정산으로 돈이 남을 경우 기존 분양가에서 토해내도록 해 그만큼 산업용지 가격이 싸진다”고 말했다. 산단 개발에 종사하는 한 관계자는 그러나 “조성원가를 여러 방법으로 조정할 수 있기 때문에 이익을 남길 방법은 있다”면서 “시행사 입장에선 아파트가 가장 이익이 많이 남지만, 대단지 아파트 개발은 사실 산업단지 조성 목적에 위배된다는 점에서 허가가 쉽진 않아 요즘은 흔한 사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시행사들이 아파트를 넣어야 인구 유입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논리로 설득한다고 했다. 실제 충남도 관계자도 “산단 근로자에게 특별공급으로 내 집 마련의 여건을 만들어줄 수 있고, 아산시와 도 입장에선 그만큼 인구 유입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위원장을 비롯해 60여명의 토지주는 변경승인신청을 허가해준 충청남도의 행정처분이 무효라면서 두 차례 소송을 제기했는데 1심에선 두 재판부에서 승소와 패소가 엇갈렸고 2심에서 패소했다. 법원은 충남도의 행정처분을 무효로 할 정도로 그 하자의 정도가 중대하고 명백하지는 않다고 보고 있다. 다만 변경신청의 정당성은 부족하다고 봤다. 대전고등법원 제1행정부는 지난 2월 2일 선고에서 “단지 분양단가 인하만을 목적으로 하여 추가로 지원단지를 개발하는 내용의 산업단지계획이 승인되는 경우, 그러한 산업단지계획은 산업단지계획 제도의 본래의 취지와는 달리 지원단지 내 공동주택 등의 개발사업을 통한 사업시행자의 이윤 추구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있으므로 그러한 경우에까지 산업단지계획을 승인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토지수용 제도 공익성·공정성 높여야
충청남도는 2019년 2월 2공구 주민들의 재산권 피해를 막기 위해 2공구 토지보상이 50%를 넘었을 때 토지수용 재결을 신청하도록 사업시행자와 협의를 마쳤다고 문서로 밝혔다. 맹지인 1공구 주민들은 대부분 토지매매에 동의한 반면, 보상비와 개발 이후 분양가의 차이가 크게 날 2공구 토지주들은 대부분 반대했다. 이런 상황에서 1·2공구를 ‘일단의 토지’(하나의 산업단지)로 보면 수용재결을 위한 토지면적 50% 이상 확보라는 조건을 손쉽게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이런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수용재결이 이뤄졌다. 항소심에서 뒤집히긴 했지만 1심 법원에서 신뢰보호원칙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수용재결을 취소하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다만 법원은 대체로 1·2공구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주거환경 개선 효과나 교통망 확충에 따른 기능적 연계가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산업단지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반면 중앙토지수용위원회는 2022년 8월 2공구에 대해 주민동의가 50%를 넘지 않았다는 이유로 수용재결을 취소했다. 그 후 반대운동을 했던 2공구 토지주 일부가 시행사와 토지매매에 동의하면서 50%를 넘겨 그해 12월 수용재결이 다시 이뤄졌다.
토지수용에 앞서 시행사와 지자체, 주민이 함께 감정평가사를 선정해 감정평가를 한다. 아산탕정의 경우 주민동의서를 위조해 특정 감정평가사를 선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실제 동의서를 시행사 등에 유리하게 조작한 부동산 업자들이 사문서 위조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다. 이런 논란 속에 지방토지수용위원회에서 2020년 첫 번째 수용재결 취소가 있었다. 임 위원장은 “감정평가 동의서를 위조하는 등 절차상의 문제도 있지만, 변경승인 당시 시행사가 법적 자격 요건을 갖추지 않은 문제도 있다”고 주장했다.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민간기업이 산업단지의 사업시행자 자격을 얻으려면 일정 수준 이상의 시공능력을 갖춘 건설사가 주주로 있어야 한다. 현재 시행사 주주로 참여하는 대우건설이 지분을 처음 얻은 때는 2019년 2월 14일이고, 2018년 10월 변경신청을 할 당시엔 없었다. 충남도는 해유종합건설이 참여했다고 하지만 해유건설의 2017년, 2018년 감사보고서나 탕정테크노파크의 감사보고서의 주주명부엔 해유건설이 없었다는 점에서 사업시행자 자격 요건에 중대하고 명백한 흠결이 있다고 임 위원장 등은 주장한다.
토지수용 제도 자체의 공익성과 공정성을 담보하는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승수 대표는 “공익성이 인정될 때 토지수용이 가능한데 공익성의 범위가 너무 넓어서 민간기업의 이윤 추구에 동원되는 게 문제”라면서 “민간기업이 산업단지 특례법을 악용해 땅장사를 하는데 국가가 강제수용권을 부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하 대표는 “우선적으로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한 특례법을 폐지하고, 현재 진행되는 특혜성 산업단지 사업에 대한 전면적 수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승종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 연구위원은 “중토위에서 공익성 협의를 통해 택지개발로 분양 이익을 과도하게 실현한다면 그 이익에 상응하는 만큼 산업단지 내 토지 가격을 낮추도록 하는 통제가 뒤따를 것”이라면서도 “산업단지가 필요로 하는 규모에 맞춰 택지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산업단지 조성으로 이주자가 있을 경우엔 영국이나 미국처럼 인근 지역에서 동일한 주거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주택 가격의 차액을 보상해주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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