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심전세앱’으로 전셋집 구해보니… 앱이 아니라 제도를 바꾸셔야겠는데요?[써보니]
하루가 멀다하고 전세사기 피해사례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도 전셋집을 구해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개인의 노력으로 전세사기를 피할 수는 있는건지, 그나마 안전한 주택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혼란스럽기만 하다.
정부는 이런 세입자들을 위해 지난 2월 ‘안심전세앱’을 출시했다. 전세사기 예방대책의 일환으로 출시된 이 앱은 세입자와 집주인의 정보 불균형 해소가 목적이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 관계자는 “전세계약 시 확인해야 할 모든 정보를 한 번에 제공하는 ‘필수 플랫폼’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오는 6월 전셋집 만기를 앞둔 기자는 최근 한달간 ‘안심전세앱’을 사용해 전셋집을 구해봤다. 해당 주택 전세가율, 등기사항증명서, 인근 주택 실거래 체결 내역 등을 정부가 공인하는 앱에서 확인할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었다. 기존에는 세입자들이 이곳저곳을 뛰어다니며 얻어내야 했던 정보들이다.
하지만 임대인에게 기울어진 현재의 전세제도 하에서, 앱을 통해 알수 있는 정보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내 보증금보다 선순위인 체납세금이나 보증금이 얼마인지조차도 ‘임대인 동의’가 있어야만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K-세입자라면 피할수 없는 ‘전세깜깜이’의 운명
본격적으로 전셋집을 알아보기 앞서 ‘전세계약 셀프테스트’를 해봤다. 안심전세앱은 임대차 계약이 낯선 사회초년생을 위해 계약전·계약시·계약후 주의사항을 체크리스트 형식으로 제공 중이다. 주택의 위험성을 파악할 때 어떤 정보를 어디서 확인해야하는지도 함께 알려준다.
체크리스트에 따르면 계약 전 ①주택 상태, ②전세가율, ③선순위 권리관계, ④임대인 세금체납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하지만 현행 제도에서 세입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주택 상태’ 뿐이다.
이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누가 얼마를 돌려받게 되는지, 즉 ‘선순위 권리관계’는 제한적으로만 확인 가능했다. 기자에게 매물을 보여준 중개사들은 대부분 “등기부 상 근저당이 없거나 적은 매물”임을 강조했지만, 등기부는 해당 주택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진 빚만 보여줄 뿐이다.
건축법 상 단독주택인 ‘다가구·다중주택’은 주택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그 집에 살고 있던 임차인들끼리 보증금을 나눠가져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선순위 임차인들의 보증금 현황과 확정일자 확인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집주인의 ‘선의’에 기대야 한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계약 전 중개사가 선순위 확정일자 제출을 요구해도 임대인이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고 “임차인에게는 임대인이 고지 거부했음을 알리고, 층별 보증금이 얼마인지 계약서에 명시하는 정도가 현실적으로 최선”이라고 했다.
임대인 세금체납 여부도 현재는 중개사를 통해 지방세·국세 납세증명서를 요구해 확인해야 한다. 정부는 계약 전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선순위 임차인 정보와 임대인 체납 정보를 요구할수 있는 권리를 명시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지만, 아직은 국회 통과 전이다.
“어라 완전 빈틈 투성이! 이러다 코 베입니다. 공부가 필요해요!” 체크리스트 4개 중 하나라도 확인하지 못했다고 답하자, 앱은 기자에게 ‘전세 깜깜이’ 판정을 내렸다. 민달팽이유니온 지수 위원장은 “현재는 누구도 ‘전세깜깜이’의 운명을 피할수 없다. 빈틈 투성이는 세입자가 아닌 제도”라고 했다.
안심전세앱이 알려준 ‘적정 보증금’, 참고만 했던 이유
업계에서는 전세가가 매매가의 80% 이상인 주택을 ‘깡통전세’라고 본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가 높게 책정돼있으면 집주인의 자기자본은 그만큼 적다는 뜻이라 보증금 미반환 위험이 높다.
안심전세앱 ‘시세조회 및 위험성 진단’ 기능은 빌라의 적정 전세가와 매매가를 파악하기 어려운 문제를 대폭 개선했다. 주소만 입력하면 해당 주택의 매매추정가격과 경매에 넘어갔을 때 예상낙찰가격, 적정 보증금이 얼마인지까지 자동으로 계산해준다.
특히 인근 지역 빌라의 실거래가를 제공해주는 기능이 유용했다. 아파트는 각종 부동산 어플을 통해 실거래가 체결내역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만, 연립·다세대·다가구 등 빌라는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 인근 지역 건물을 하나하나 눌러가며 비교해야 했다.
하지만 앱이 알려준 시세 정보는 참고용으로밖에 활용하지 못했다. 부동산 호황기였던 2020년 이후 전세대출과 HUG 보증보험 발급 기준이 대폭 완화되면서, 빌라·오피스텔 전세 가격이 전반적으로 급등했기 때문이다.
서울 마포구 염리동의 한 투룸 빌라(전용면적 29㎡)는 보증금 3억5300만원에 전세 매물이 나와있었지만, 안심전세앱은 인근 전세가율(42%)을 고려해 1억9200만원 이하로 계약할 것을 권했다. 같은 건물 최근 실거래가(2억9000만원)보다도 1억원이 낮은 가격이었다. 전세가가 매매가보다 더 높은 오피스텔 매물도 여전히 많았다.
결국 기자는 신축급 빌라와 가격이 비슷하되, 거래량이 많고 시세 정보가 비교적 투명하게 공개되어있는 구축 아파트로 선회했다. 하지만 50세대 이상 아파트는 안심전세앱 시세 조회 대상에서 제외됐다. 2월 출시된 ‘안심전세앱 1.0’ 버전에서 서울·수도권 내 50세대 미만 아파트·연립·다세대 주택만 가능하다.
HUG는 ‘2.0 버전’이 출시되는 7월부터는 주거용 오피스텔과 비수도권 시세 정보도 제공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호별로 개별 등기가 불가능한 다가구·다중주택은 앞으로도 시세 조회가 불가능하다. HUG 관계자 “앱을 통해 제공되는 시세는 한국부동산원에서 개발한 알고리즘을 통해 산정되는데, 시세 정보의 정확성도 점차 개선될 예정”이라고 했다.
‘시작이 반’이라 5점은 주지만…
주택가격 하락과 역전세난으로 세입자가 ‘갑’이 됐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졌지만, 현장에서 체감하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협상력 차이는 여전했다.
한 중개사는 “임대인이 저당 등을 설정해 HUG 전세금반환보증보험 가입이 거절되면 계약을 무효로 하고 계약금을 반환한다”는 특약을 넣어달라는 기자의 요구를 “너무 센 표현을 쓰면 집주인들이 싫어한다”며 거절했다. 계약 당일 스마트폰 사용이 익숙치 않은 고령의 집주인에게 안심전세앱을 깔고 악성임대인 조회에 응해달라고 요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민달팽이유니온 지수 위원장은 “세입자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찾아 헤맸던 정보를 정부가 보증할수 있는 공간에서 확인할수 있게 된 것은 유의미하다”면서 “‘시작이 반’이니 10점 만점에 5점은 주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임차인이 안심전세앱으로 임대인의 정보를 확인하고 계약을 한다 해도 임대인이 바뀌면 끝”이라며 “이미 이 모든 정보를 일일이 검토하고 계약했음에도 전세사기를 당하신 피해자들을 생각하면 5점도 후한 점수”라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노루 피하려다 차가 밭에 ‘쿵’···아이폰이 충격감지 자동신고
- 파격 노출 선보인 박지현 “내가 더 유명했어도 했을 작품”
- 개그맨 성용, 21일 사망 항년 35세···발인 23일 거행
- 명태균 “오세훈 측근 A씨로부터 돈받아” 주장…오 시장측 “전혀 사실무근” 강력 반발
- ‘시국선언’ 나선 교수 3000명 넘었다
- “23일 장외집회 때 ‘파란 옷’ 입지 마세요” 민주당 ‘특정색 금지령’ 왜?
- 동덕여대 “남녀공학 논의 중단”···학생들 “철회 아냐” 본관 점거 계속
- 홍준표 “이재명 망신주기 배임 기소…많이 묵었다 아이가”
- 국회 운영위, 대통령실 특활비 82억 ‘전액 삭감’···야당, 예산안 단독 처리
- 불법 추심 시달리다 숨진 성매매 여성…집결지 문제 외면한 정부의 ‘게으른’ 대책 [플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