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0㎞ 역대급 철통엄호…첩보영화 뺨친 젤렌스키 방미

권한울 기자(hanfence@mk.co.kr) 2022. 12. 22.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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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군용기 타고 조기경보기·전투기 호위받아
철통 보안 속 열차로 폴란드 이동
폴란드서 미군 수송기 C-40B 탑승
“2차대전 처칠 연상” 평가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아내 질 바이든 여사(왼쪽)가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가운데)을 맞이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젤렌스키 대통령이 외국을 방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P = 연합뉴스]
21일(현지시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첩보영화를 방불케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은 극비리에 추진됐고 최고 수준의 보안과 철통같은 엄호 속에 진행됐다. 지난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이 시작된 지 300일 만에 처음으로 전투현장을 비우고 우크라이나에서 8000㎞ 가량 떨어진 워싱턴 DC를 방문하는 상황을 고려해 나온 조치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알린 공식 발표도 21일 새벽 1시(미 동부시간 기준)에 이뤄졌다. 같은 날 오후 2시에 열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백악관 환영식을 13시간 남겨두고 미국과 우크라이나에서 동시에 나왔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오후 2시 30분에 바이든 대통령과 회담한 뒤 오후 4시 30분에 공동 기자회견을 했다. 오후 7시 30분에는 미국 의회에서 연설했다. 연설 이후 우크라이나로 돌아갈 것으로 보이지만, 귀국 일정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고 있다.

방문 논의도 최측근만 정보가 공유되는 가운데 이뤄졌다. 두 정상은 지난 11일 통화하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방미 가능성을 처음으로 논의했으며 미국행을 3일 앞둔 18일에야 최종 확정됐다는 게 백악관 설명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이동 수단과 경로에 대해서도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폴란드까지 열차로 이동해 미군 수송기에 탑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출발 직전인 20일 최대 격전지인 우크라이나 동부 바흐무트를 찾았다. 10개월 만에 처음으로 전장을 비우는 만큼 격전지 전황을 살핀 뒤 장병들을 격려하고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폴란드 프세미실 기차역에서 이동하는 모습이 현지 언론인 TVN24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그는 기차를 뒤로 하고 경호를 받으면서 걸어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탑승했다. 여기서 브리지트 브링크 우크라이나 주재 미국 대사도 목격됐다. TVN24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인근 르제스조우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워싱턴으로 이동했다고 전했다. 지난 4월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이 우크라이나 키이우를 찾을 때와 유사한 경로를 이용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태운 비행기는 미국 공군 수송기 C-40B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보도했다. 독일 람슈타인 미 공군 기지에서 출발한 이 비행기는 란드에 도착했으며 젤렌스키 대통령을 태우고 현지 시각 오전 8시 15분에 출발했다. 비행 경로 사이트 등에 따르면 이 비행기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동부 시간으로 새벽 1시에 미국 방문을 공식 발표한 직후에 폴란드에서 출발해 독일, 영국 등을 지나 서쪽으로 이동했다.

비행기 코드명이 ‘SAM910’인 이 항공기의 이동이 비행경로추적 사이트 등에 한때 노출됐다가 사라졌고, 그린란드 해안을 지날 때 잠깐 다시 노출됐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SAM은 ‘스페셜 에어 미션’(Special Air Mission·특별공중임무)‘을 줄인 말이다. 텔레그래프는 이 수송기가 북해에 도착하기 전 독일 가일렌키르헨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공군기지에서 발진한 공중조기경보기(AWACS)가 해당 해역을 순찰했다고 전했다. 북해는 러시아 잠수함이 활동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어 혹시 모를 러시아의 요격에 대비한 조치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태운 군용기가 북해에 진입하자 영국 서포크 밀든홀 공군기지에서 미 공군 F-15E 전투기가 긴급 발진해 엄호했다. 텔레그래프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외국을 방문하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해 면밀하게 조정된 보호 조치의 일환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국과 나토 등의 호위를 받으며 이동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이날 정오 무렵 워싱턴 DC 인근 앤드루스 공군기지에 도착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1941년 당시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과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만남을 떠올리게 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AP통신은 “중대한 결과를 초래되는 시기에 전시 지도자는 미국 대통령과 유럽 전쟁에 대해 상의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넜다”며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국 깜짝 방문은 1941년 12월22일 처칠 총리가 진주만 공습 이후 루스벨트 미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워싱턴에 착륙했을 때를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짙은 그림자가 드리우던 1941년 당시 처칠 총리는 미국을 찾았는데, 81년이 지난 지금 젤렌스키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처음으로 외국 땅을 밟았기 때문이다. 처칠 총리는 나흘 뒤 미 의회 연설에서도 항전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군복 색깔을 연상시키는 복장을 입은 젤렌스키 대통령은 존망 위기에 처한 나라를 맹렬히 방어하고자 했던 처칠을 상기시킨다고 AP통신은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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