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들어 매매 중개 달랑 1건…사실상 전멸" 공인중개사 비명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나 세계 금융위기, 코로나19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어요.”
서울 관악구에서 30년간 이사업체를 운영해 온 구삼진 대표는 “요즘 같은 불경기는 처음”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보통 5t 트럭 1대 분량의 이사를 하고 받는 돈은 90만~100만원 선(사다리차 비용 제외). 이삿짐 나르는 직원 4명에게 12만~18만원씩 주고 기름값과 자잿값을 대고 나면 10만원밖에 안 남는다고 한다. 그마저도 이사 건수가 60~70% 줄었다. 경기가 좋을 땐 한 달에 100건 넘게 계약했지만, 11월엔 40건이 전부다. 그는 “일감은 주는데 인건비는 올라 이런 상태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주택시장의 ‘거래 절벽’이 ‘골목 경제’를 덮쳤다. 이사 수요가 줄면서 부동산 중개·이사·인테리어 업체 등 부동산 시장과 연관된 자영업이 고사 위기에 빠졌다.
3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1~10월 전국 주택 매매량은 44만996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89만4238건)보다 49.7% 줄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2006년 이후 최저치다. 특히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 거래는 900건에 그쳤다. 1년 전(2839건)의 3분의 1 수준이다. 국내 최대 규모(9510가구) 단지인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는 지난해 1~11월 166건이 거래됐지만, 올해 1~11월 거래량은 48건뿐이다.
거래 건수가 수입과 직결되는 부동산 중개업소는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현재 개업 공인중개사는 11만8624명이다. 같은 달 전국 주택 매매량(3만2173건)으로 단순 계산하면 중개사 1명이 10월에 중개한 매매 건수는 평균 0.27건에 그친다. 4명 중 한 명꼴로 매매 중개를 한 셈이다. 노원구의 서재필 을지공인 대표는 “올해 들어 매매 중개를 한 건 했다”며 “예년의 10% 수준으로 거래 전멸 상태”라고 말했다. 성동구의 한 공인중개사는 “지난 9월에 중개보조원 1명을 그만두게 했다”며 “월급 150만원에 식비도 줘야 하는데, 노는 날이 많아 부담이 컸다”고 했다.
급기야 문 닫는 업체도 속출했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전국에서 중개업소 9936곳이 폐업하거나 휴업했다. 특히 지난 6월부터 5446곳이 문을 닫았다. 지난해 같은 기간(4815곳)보다 13.1% 증가한 수치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최근에 ‘대책 좀 내놓아봐라’는 회원사 전화가 빗발친다”고 말했다.
이사업체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경기도 수원 일대에서 이사업체를 운영하는 이모 사장은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다 보니 일감이 없어 죽을 맛”이라며 “직원들이 밤에 배달이나 대리운전을 뛸 정도”라고 말했다.
인테리어 업체 사정은 더 심각하다. 서울 송파구에서 인테리어업을 하는 송모 대표는 “부동산 경기가 좋고 사람들이 여유가 있어야 집을 고치는데, 요즘 누가 그러겠나”라며 “두 달째 올스톱”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사무실이 아파트 밀집지역에 있어 그동안 집 내부를 고치는 대공사를 한 달에 4~5건씩은 했다. 하지만 지난 10월부터 주문이 끊겼고, 12월 예약도 없다. 송 대표는 “누수나 난방기 등 시설 보수만 하며 버티고 있는데, 누가 늦게 망하느냐 경쟁하는 게임 같다”고 말했다. 사상철 한국인테리어경영자협회장은 “매매든 전세든 집이 나가질 않아 한두 달 전 예약이 잡혔던 건도 공사를 못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주택 거래 위축이 골목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큰 만큼 거래가 활성화되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성환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취득세를 낮춰 거래에 숨통을 열어줘야 연관산업을 둘러싼 서민경제가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의영 기자 apex@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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