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물결 사자평 억새평원…밀양의 가을은 지금이 절정

백종현 2022. 11. 18. 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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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의 재약산은 이맘때 늦가을 유독 눈부신 산이다. 산머리에 전국 최대 규모의 사자평 억새밭을 얹고 있어서다. 지난 10일 오후 일몰 즈음 황금빛으로 물들어 가는 억새밭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자평 억새 장관은 11월 하순까지 볼 수 있다.

서울은 단풍이 저물어 가고 있지만, 경남 밀양은 지금이 절정이다. ‘햇빛 가득하다(密陽)’는 이름처럼 11월 끝자락까지 가을빛이 머무는 고장이다. 황금빛 물결치는 사자평 억새 평원, 가을 운치가 남다른 저수지 위양지, 단풍에 물든 영남루 등 밀양 곳곳에서 올 마지막 가을을 담아왔다.

눈부신 억새 물결

재약산 등산로 팻말.

태백산맥 남쪽 끝자락의 재약산(1119m). 전국 최대 규모의 억새밭을 산머리에 얹고 있는 산이다. 해발 1000m 이상 준봉들이 병풍을 친 ‘영남알프스’ 산군 중에서도 가장 매혹적인 가을 풍경을 품었다. 재약산에 오르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산내면 얼음골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천황산(1189m)을 거쳐 재약산으로 넘어갔다 오는 방법이 있지만, 이맘때는 남쪽의 단장면 자락에서 오르내리는 편이 낫다. 산행 인파도 피하고 단풍 명소를 두루 볼 수 있어서다.

표충사도 지금 가을빛이 절정이다. 왼쪽 가장 높은 봉우리가 재약산 사자봉이다.

들머리의 표충사는 불교와 유교가 공존하는 기묘한 사찰이다. 문성남 문화해설사가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공을 세운 사명대사를 기리는 사당이 있다”고 일러줬다. 양지바른 땅에 법당(法堂)과 사당(祠堂)이 나란히 가부좌를 틀고 있는 형국이다. 병풍처럼 뒤를 받치고 있는 재약산은 마침 단풍이 절정이어서 경내까지 붉은 기운이 감돌았다.

사자평 억새평원까지는 대략 4.2㎞ 산길이었다. 가파른 계단을 1시간 이상 올라가야 했지만, 고비마다 폭포가 쉼터 노릇을 했다. 흑룡폭포는 단연 절경이었다. 용을 닮았다는 거대한 물줄기 주변으로 울긋불긋 단풍이 짙었다. 물줄기가 겹겹이 층을 이룬 층층폭포를 지나니 이내 사자평의 광활한 품이었다.

경남 밀양 여행

413만㎡(약 125만평)에 이르는 억새밭은 어찌나 넓은지 횡단하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다. “지난달 문재인 전 대통령도 사자평 억새밭을 거닐다 내려갔다”고 성정필 문화해설사가 귀띔했다. 재약산에는 11월 하순까지도 억새와 단풍이 남아 있단다. 서걱서걱 쏴아, 억새는 바람이 일 때마다 서로 몸을 부대끼며 분주하고도 은은한 소리를 냈다. 가을바람 소리를 한참 듣다, 해 질 녘 산 밑으로 발을 옮겼다. 벌겋게 저물어 가는 햇빛이 억새밭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었다.

늦가을의 인생 샷

가을날 더욱 화려한 면모를 드러내는 위양지. 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이 조성돼 있다.

밀양 시내에서 자동차로 15분. 부북면 위양리 너른 벌판 한가운데 그림 같은 저수지가 숨어 있다. 밀양에서 가장 ‘사진발’ 잘 받는 명당이라는 위양지(위양못)다. 위양지는 유서 깊은 저수지다. 신라 시대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축조하고, 백성을 위한다는 의미에서 ‘위양지’로 명명했다. 못 가운데 누각 완재정이 홀로 앉아 있는데, 그 주변으로 느티나무·버드나무·벚나무 따위가 가지런히 심겨 있다. 덕분에 계절마다 남다른 분위기를 낸단다. 아이유 주연의 TV드라마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영화 ‘두근두근 내 인생’도 위양지에서 로맨틱한 그림을 담았다.

“사진이 목적이라면 새벽같이 저수지에 들어야 한다”고 문 해설사는 설명했다. 잔잔한 수면 위로 단풍이 내려앉은 듯한 반영 사진을 찍기 가장 좋은 시간이어서다. 요즘처럼 일교차가 큰 날 아침, 물안개까지 드리워지면 그야말로 환상적인 분위기의 사진을 담을 수 있다.

밀양을 찾은 이틀간 틈틈이 위양지를 거닐었다. 카메라와 삼각대를 이고 온 비슷한 처지의 여행자들이 아침마다 저수지에 모여 들었다. 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1㎞의 둘레길 곳곳이 포토존이었다. 끝내 제대로 된 물안개는 만나지 못했지만, 실컷 ‘물멍’을 즐기다가 저수지를 빠져나왔다.

밀양강을 따라서

양강을 굽어보는 누각 영남루도 곳곳이 단풍으로 화려한 모습이다.

늦가을 밀양이 좋은 건 다채로움이 있어서다. 밀양 시내를 휘감아 도는 밀양강을 따라 단풍 명소가 줄을 잇는다. 시내와 하중도(삼문동)를 잇는 밀양교 북단에는 조선 후기 목조 건축인 영남루가 자리 잡고 있다.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한국 3대 누각으로 통하는 명루(名樓)다. 밀양교와 누각 맞은편 둔치에서 그 명성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마침 단풍이 무르익어 고색창연한 멋이 더했다. 이른바 ‘밀양 8경’ 중 1경이 영남루 야경이다. 어스름한 시각 밀양강 오리배 선착장을 찾으면 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빛나는 영남루와 밀양교를 함께 담을 수 있다.

밀양강 용평교 북단의 단풍길.

영남루 밑으로 내려오면 밀양강변을 따라 걷는 ‘밀양아리길 1코스(6.2㎞)’와 만난다. 수변길이 마무리되는 동쪽 끝자락에 대략 400m 길이의 벚나무 길이 있다. 밀양에서도 아는 사람만 거닌다는 숨은 산책길이다. 길은 짧지만 인적이 드물어 단풍터널을 독차지한 듯한 기분을 누렸다. 인근 용평교 북단 제방의 단풍 낙엽길도 가을 색이 완연했다.

450년 수령의 금시당 은행나무.

밀양강을 내다보는 내일동 끝자락 언덕에는 200년 세월을 훌쩍 넘기는 고택 금시당이 있다. 금시당이 위양지와 함께 밀양에서 가장 포토제닉한 장소로 꼽히게 된 건 고택 앞마당에 있는 나무 한 그루 때문이다. 수령 450년을 헤아리는 거대한 은행나무가 이맘때 줄 서서 기념사진을 담아가는 명물이다. 한데 금시당에는 가을이 채 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직 연둣빛이 강했다. 문 해설사가 “밀양에서도 가장 가을이 늦게 오는 곳인데, 이번 주말 절정의 가을빛을 드러낼 것 같다”고 말했다.

밀양=글·사진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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