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노향의 부동산톡] 전세사기 보상에 '5040억'.. 높은 전셋값·이자에 세입자 고통

김노향 기자 2022. 6. 13.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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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G가 임대인의 채무불이행을 대위변제한 금액은 지난해 '5040억원'으로 조사됐다. /사진=이미지투데이
#. 서울에서 5억원대 전셋집에 사는 A씨는 최근 임대차 재계약과 함께 전세대출 연장 신청을 했다가 깜짝 놀랐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이자율이 높아질 것이란 예상은 했지만 매달 67만원 내던 이자가 대출 연장 후 133만원으로 두 배 가까이 불었다. 2년 동안 연봉도 올랐고 우대금리도 그대로, 전세금 인상분은 '주택임대차보호법'상 상승률인 5%만 적용됐는데 "이자 때문에 못 살겠다"는 말이 나왔다.

#. B씨는 얼마 전 전세사기 의심자 3명이 형사고발당하는 뉴스를 보며 1년 전 잠적한 집주인을 떠올렸다. 혹시 저 중에 자신의 집주인도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3년여 전 현재 집에 전세로 입주했다가 중간에 집주인이 잠적해 경매 소송까지 하는 처지가 됐다. 이른바 '빌라왕'으로 불린 집주인은 서울 외곽의 수십채 빌라를 갭투기(매매가-전세금 차액만 내고 주택 매수)한 전형적인 사기꾼이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제작 지원한 웹툰 '루나파크'의 작가 홍인혜씨는 B씨와 같은 전세사기 피해자다. 그는 집주인의 채무불이행과 국세 체납으로 집이 압류된 사실을 알고 이런 말을 했다. "어째서 타인이 체납한 세금을 내 돈에서 가져가지?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내 안에서 무너진 건 '상식'이었다. 세입자가 미리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잖아. 등기부등본 깨끗하면 된 거 아니었어? 법 앞에 개인은 무력했다."

HUG 관계자는 "유명 웹툰 작가의 실제 사례를 대중에게 알림으로써 전세사기 피해예방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면서 "해당 작가의 경우 직접 경매에 참여해 소유권을 이전받고 현재는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영위하고 있지만 피해자 대부분은 큰 금전적 손실을 입고도 구제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한편에선 전셋값과 이자 상승으로 인한 '신종 전세대란' 문제도 확산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취임 약 3주 만인 지난 6월 2일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관련 대책을 논의하며 "법의 사각지대에서 잘 먹고 잘 사는 임대인이 없도록 강력한 대책을 빠른 시일 내 만들겠다"고 밝혔다. 서울 강서구에서 빌라 1000채 이상을 소유한 빌라왕이 전세금을 가로채 잠적한 사고 발생 3년 만의 대책 마련이다.



세금으로 전세사기범 빚 상환 논란


HUG는 지난 6월 2일 전세 사기범 3명을 형사고발 조치했다고 밝혔다. HUG가 대위변제한 건수가 3건 이상인 다주택 채무자 가운데 연락이 두절돼 상환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거나 미회수 채권이 2억원 이상인 경우다.

HUG가 임대인의 채무불이행을 대위변제한 금액은 지난해 '5040억원'으로 조사됐다. 대위변제 규모는 ▲2018년 792억원 ▲2019년 3442억원 ▲2020년 4682억원 ▲2021년 5790억원 등으로 계속 증가했다. 지난해 대위변제 금액 가운데 부채비율이 90%를 초과한 금액은 3575억원(70.9%)을 차지했다. 올 1∼4월 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 사고금액은 2018억원으로, 사고 규모가 최대였던 지난해 같은 기간(1556억원) 대비 29.7% 급증했다.

이는 HUG의 전세금반환보증에 가입한 세입자만 조사한 것으로 전체 피해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추산된다. 임대차시장에서 보증보험에 가입한 비율은 10% 정도로 추산된다. 전세 사기는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이 높은 수도권 외곽이나 지방, 신축 빌라 등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자본이 부족한 집주인이 임대차계약 만료 후에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하거나 세금 체납 등을 해도 전세금을 돌려주기가 어렵게 된다. 세금 체납에 따른 공매는 전세 확정일자 권리보다 우선해 세입자는 공매 후 세금 체납액을 제외한 돈만 받을 수 있다.

국토교통부 산하 공공기관인 HUG의 전세금반환보증이 세입자를 보호하는 측면에서 사회안전장치 역할을 하지만 한편으론 국민 세금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어서 범법자의 부채를 대신 상환해준다는 논란도 제기된다.
이미지투데이


상생임대인제도 등 인센티브 확대 필요


전세사기뿐 아니라 높아진 집값과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는 형태의 또 다른 전세불안도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당초 전세제도 취지는 무주택자의 주거비용을 줄여주는 '주거 사다리' 기능을 했지만 전세가율이 63.8%인 상황에 전세대출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사실상 '서민 주거' 수단의 역할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부동산원 조사 결과 올 3월 서울 아파트의 평균 전셋값은 6억3294만2000원으로, 2020년 3월 말 평균 4억6070만원 대비 37.6% 올랐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들어 서울 아파트 전세거래는 ▲1월 1만1405건(이하 계약일 기준) ▲2월 1만2099 ▲3월 1만1235건 ▲4월 9848건 ▲5월 8433건 ▲6월 8일 741건 등으로 2월 이후 감소했다.

같은 기간 서울 아파트 월세거래(준월세 포함)도 ▲1월 4133건 ▲2월 4373건 ▲3월 4351건 ▲4월 3879건 ▲5월 2680건 ▲6월 8일 203건 등으로 비슷하게 감소했다. 전체 임대차 대비 월세 비율은 같은 기간 ▲1월 21.79% ▲2월 21.87% ▲3월 23.47% ▲4월 23.96% ▲5월 19.75% ▲6월 8일 15.41% 등으로 1~4월 증가세를 보였다. 5월 들어 월세 비율이 급격히 하락한 것은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올 4월과 5월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각 0.25%포인트씩 인상해 현재 기준금리는 1.75%가 됐다. 이는 지난해 5월과 비교해 1년 새 '3.5배' 오른 수준이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전세의 월세화를 막을 수 있었지만 이는 세입자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다가온다. 이자 증가뿐 아니라 집값 상승분까지 더해 전세를 살아도 주거불안이 증폭될 전망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올해 한시적으로 시행한 '상생임대인제도'를 폭넓게 확대 적용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상생임대인제도는 공시가격 9억원 이하 1주택자인 집주인이 재계약을 하며 임대료를 5% 이하로 인상하는 경우 양도소득세 비과세 특례 적용을 위한 실거주 요건 2년 중 1년을 인정해주는 인센티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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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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