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책연구기관 3곳 "文정부, 국민에 부동산 실패 책임 떠넘겨"
국토교통부 산하 국토연구원을 포함한 국책 연구기관 세 곳이 정부 부동산 정책의 난맥(亂脈)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합동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기관들은 “현 정부 출범 이후 20차례 넘게 부동산 대책을 발표했음에도 주택 가격이 전국적으로 급등했다”며 “정치가와 공직자들이 실정(失政) 책임을 국민 탓으로 전가하고, 부동산을 통한 불로소득을 바로잡겠다고 징벌적 과세 수준의 애먼 칼을 빼 들었다”고 비판했다.
7일 정부와 국책 연구 기관에 따르면,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과 국토연구원,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연구원은 지난달 ‘부동산 시장 질서 확립을 위한 중점 대응 전략’이라는 719페이지짜리 보고서를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제출했다.
보고서는 최근 몇 년 사이 전국적으로 집값이 급등한 부동산 시장에 대해 “정부의 정책 오류 또는 의도적 정책 실패로 인해 거래는 실종된 채 명목 가치만 올랐다”고 진단했다. 이어 “주택 소유자는 낮은 가격에 매물을 내놓아도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거래 절벽’에 신음하고, 실수요자는 ‘매물 잠김’으로 예산과 조건에 맞는 주택을 찾아내지 못해 밤마다 울고 있다”고 적었다.
보고서는 “정부의 정책 목표가 부동산 가격을 통제하는 것이 돼서는 안 된다”며 “부동산 거래가 활성화되도록 규제와 조세 등 불필요한 시장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주택 공급은 충분하며, 다주택자 등 투기꾼들이 집값을 끌어올린다”며 수요를 억누르는 규제 일변도의 부동산 정책을 쏟아냈다. 그 결과, 2017년 5월 5억7000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올해 7월 11억900만원으로 94.5% 올랐다.
국책 연구기관들은 작년 8월부터 1년에 걸쳐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연구한 결과, 현 정부가 집값 상승의 ‘원흉’으로 다주택자를 지목한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보고서는 “객관적 기준이나 사회적 합의 없이 여러 주택을 소유한 것만으로 종합부동산세 등 세금 중과의 핵심 표준으로 삼았다”고 했다. 보고서는 또 “역대 정부가 추구하는 정치적 이념에 따라 주택 정책이 영향을 받았다”면서 “현 정부는 충분한 정책 검증 과정 없이 임대차 3법을 강행함으로써 스스로 반(反)자본주의적 이미지에 갇히게 된 측면이 작지 않다”고 했다.
◇”공공이 악덕 투자자 같다”
공공(公共) 주도의 주택 공급 정책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도 눈에 띄었다. 보고서는 “국내 주택 공급은 민간에서 주로 맡았으며, 저소득층을 위한 임대주택을 공급해 온 공공이 주도하는 주택 공급 전략은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또한 LH(한국토지주택공사) 등 부동산 정책을 실행하는 정부 산하기관이 제대로 기능 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며 “경영 평가가 보편화한 이래 공공 부문이 실적과 성과에 매몰되면서 차익과 폭리를 노리는 악덕 투자자와 다르지 않게 됐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각종 규제책에도 집값이 잡히지 않자 문재인 대통령은 ‘특단의 공급 대책’을 주문했고, 정부는 올해 초 ‘2·4 대책’을 통해 LH 등 공공 주도로 전국에 80만 가구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공공 주도의 주택 공급 확대 정책은 소유주 반발 등의 난관으로 지지부진하고, 재건축·재개발 등 민간 정비 사업에 대한 완화 요구는 여전히 외면받는 실정이다. 올해 서울 재건축 단지에서 나온 일반 분양 물량은 275가구뿐이다.
◇집값 비정상...거품 붕괴 위험
보고서는 또 부동산 금융 분야에 대해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 등을 집값 안정 수단으로 활용하면서 자기 자본이 부족한 실수요층의 주택 구매 기회를 과도하게 제약한 측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최근 시중은행을 통해 대출 조이기에 나서면서 전세금 대출이 막히고 중도금을 못 구해 청약 포기자가 나오는 등 무주택 서민들의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최근의 부동산 가격을 ‘비정상’으로 진단하며 ‘거품 붕괴’를 경고하기도 했다. 보고서는 “환율과 금리 둘 중 하나만 정상화하거나 실물 경기가 침체한다면, 집값이 올랐다는 환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라며 “일본처럼 부동산 거품이 순식간에 꺼지면 주거 약자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피해를 함께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보고서는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가 작년 초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에 주문한 협동 연구 과제이다. 금융·조세·법률 등 부동산 정책의 사각지대를 해결한다는 취지로 연구가 진행됐고, 국토연구원과 주택금융연구원이 함께 참여해 보고서를 만들었다. 연구를 진행한 기관들은 “공공성 강화도 필요하지만, 집이 자산 형성을 위한 재화이자 경제활동의 한 축임을 인정해야 한다”며 “균형 잡힌 시각으로 주택을 바라보는 일관된 정책 운용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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