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화의 지리각각] 이건 땅과 서울에 대한 모독이다

이규화 2021. 8. 13. 09:4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특정계층 향한 반감이 집값폭등 한 원인
공원 이어 난데없는 공항, 학교 소환
차라리 대학들에 주학복합건물 허용을
외곽 확장보다 도심 수직개발 바람직
을지로 3~6가 50만평 고밀도 개발을
대한민국 수도 서울 한복판 중 한복판인 을지로의 2021년 8월 모습이다.

집값폭등은 시기 질투가 부른 참사다. 집권세력이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한 중상층의 부동산 불로소득(엄밀히 따지면 세상에 불로소득이란 없다. 길거리 횡재나 복권 당첨도 미미하지만 노동이 따른다. 하물며 집을 사고파는 데는 위험감수 등 많은 신체적 정신적 노동이 수반된다)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취한 정책들이 당초 취지와 다르게 낳은 결과다. 문재인 정권은 들어서자마자 서울 강남 재개발·재건축에 불리한 정책을 쏟아냈다. 2018년 1월부터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를 시행했다. 재건축 조합원이 얻은 이익의 최고 50%를 환수한다니 재건축 사업이 얼어붙었고 새 아파트 공급 길이 막혀버렸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35층 층수제한이라는 덫을 씌워놓은 상태에서 새로운 규제들이 쏟아지니 강남, 서초, 송파의 신규 아파트 공급은 거의 끊길 수밖에 없었다.

공급이 달리자 값은 폭등했다. 강남발 가격상승은 서울 다른 지역, 수도권, 광역시, 중소도시로 연쇄적으로 파급됐다. 시장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판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정지역 특정계층에 대한 반감에서 나온 대책이 잘 될 리 없다. 정권은 이들을 부동산 불로소득에만 눈독 들이는 투기꾼으로 보았다. 문재인 정권의 소위 강남 중상층에 대한 반감과 시기는 지금도 여전하다. 부동산 불로소득은 절대 용인할 수 없다며 재개발재건축 규제완화는 절대 풀 수 없다고 한다.

심지어 수요억제에서 공급확대로 정책적 전환을 했다고 평가받는 작년 8·4 부동산대책에서도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적대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겠다고 하면서 공공의 참여를 요구했다. 공공재개발 및 공공재건축의 초과이익의 90%를 환수하겠다고 했다. 그러니 강남3구와 용산, 여의도 등 재건축조합들은 정부의 공공재건축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이다.

집값폭등의 배경에는 전 세계적인 저금리와 유동성 충일이라는 강력한 원인이 있지만, 적어도 어떤 정책을 쓰느냐에 따라 상승폭에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공급엔 장사가 없다. 강남발 공급축소만 없었더라면, 그래서 연쇄적 수요자극이 없었더라면, 문재인 정부 4년 동안 서울 아파트값이 평균 2배(일부 지역은 3배 이상) 오르는 현상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핵심 외면 변죽만 울리는 여권 주자들 집값대책

문 정권이 이렇게 편견을 갖고 부동산 정책에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데도 정권을 이어받겠다는 여권 대선주자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큰 틀에서 답습 수준이다. 공급을 늘리겠다고 하지만, 방식에서는 민간이 제외되고 지역에서는 강남3구가 빠진 서울외곽에만 포커스를 맞춘 변죽 울리기다.

재미있는 것은 여권주자들이 난데없이 공항과 학교를 소환하고 있다는 것이다. 문 정권이 골프장(녹지와 마찬가지다)과 공원을 소환한데서 한술 더 떠 이젠 공항을 밀어버리고 아파트를 짓겠다고 한다. 학교 교사를 주학(住學)복합빌딩으로 짓겠다는 가상한 발상까지 나왔다.

이낙연 후보는 성남 서울공항을 폐쇄하고 그 자리에 3만호의 아파트를 짓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공항을 없애면서 그 주변 고도제한을 풀어 추가로 4만 가구 공급도 가능하다고 한다. 공항을 없애는 것은 쉬울지 몰라도 새로 공항을 짓는 것은 매우 매우 어렵다. 대체공항을 어디다 어떻게 짓겠다는 건지 대안을 제시 못했다. 서울공항의 쓰임은 대통령이 해외순방 때 잠깐 이용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미 공군이 주둔하고 있고, 수도권 안보에 중요한 전략공항이다. 공약을 위한 공약일 가능성이 높다.

박용진 후보는 더 배포가 크다. 김포공항을 없애겠다고 한다. 김포공항 자리에 아파트 20만호를 지어 임대 또는 분양하겠다고 한다. 허를 찌르는 건 좋은데, 국민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김포공항을 인천공항의 단순한 서브공항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2600만 수도권 인구가 인천공항에만 의존할 순 없다. 수도권에서 가장 가까운 청주공항도 100km 이상 떨어져 있다. 파격적 행보를 하는 박 후보의 강력한 부동산대책 의지를 보여주는 발상으로는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지만 현실성은 거의 빵점이다.

정세균 후보가 서울 도심 공급에 관심을 둔 것은 일단 평가할 만하다. 서울의 국공립학교를 고층으로 재건축해 5층까지는 교사로 쓰고 6층 이상은 공공임대 주택을 들여 어린 자녀를 둔 가구에 공급한다는 아이디어다. 이른바 주학(住學)복합빌딩 재건축이다. 정 후보는 이렇게 공급될 수 있는 물량이 20만 가구에 이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수요가 많은 서울 곳곳에 공급을 늘린다는 점에서는 이낙연, 박용진 후보와 차별된다. 그러나 공약이 알려진 후 인터넷에 논란이 인 것처럼, 청와대를 재건축해 150층 주학빌딩을 짓자는 것만큼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자라나는 청소년 학생들의 학습 환경이 지금보다 악화될 것이 뻔하다. 이 방식이라면 오히려 서울 곳곳 대학들의 건물을 주학복합건물로 재건축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현실적이다. 대학생은 상대적으로 학습 영향을 덜 받고 대학 재정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서울 곳곳의 공공건물이나 부지를 개발하거나 재건축해 초고층으로 올리는 방안도 있을 것이다.

이재명 후보는 아직 특정지역 개발이나 방식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지만, 공공임대 공공분양 위주의 공급계획에서는 대동소이하다. 다만 역세권 등 좋은 위치에 고품질의 공공임대 주택을 지어 30년 이상 살 수 있도록 하겠다는 지리적 공간적 고민을 한 것은 눈에 띈다.

현재까지 야권 후보들은 구체적인 공급 방안을 밝히지 않고 있다. 야권 후보들의 공약은 주로 재개발·재건축을 활성화하는 민간 공급 위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끊임없이 비용과 오염 높이는 평면적 확장

여권 대선주자들의 부동산 공급계획은 거의 모두 평면적 확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공항 같은 거대한 부지확보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수도권에 신도시급 부지를 확보하고 대규모 아파트를 공공 임대 또는 공공 분양하겠다는 것인데, 신도시 개발은 이미 정부가 밝힌 3기 신도시 5곳으로 충분하다. 이곳에서만 모두 26만9000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여기에 수년 후에는 1기 신도시 재건축까지 본격 시작된다.

현재 주택 수요와 공급에서 가장 미스매치가 심하게 일어나는 곳은 서울이다. 특히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곳들이다. 대표적인 곳이 강남3구, 마용성(마포 용산 성동) 등이고 지하철역과 도로가 잘 정비된 곳을 선호한다. 수요 압력이 높은 곳에 공급을 늘려야 하는 것은 부동산정책의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도 여권 대선주자들은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자꾸 외곽으로만 돌고 있다.

공항은 공항 그 자체로서도 중요한 기능을 하지만, 수도권의 대규모 저밀도 공간으로서 미래세대를 위한 개발 유보지 성격도 갖고 있다. 이 점을 무시할 수 없다. 땅도 고정불변이 아니라 용도에 따라 형질을 변경할 수 있지만, 공항 같은 수십 수백 만평의 땅의 형질을 함부로 변경하는 것은 국가 백년대계를 감안할 때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현재 수도권은 개발도상국에서나 일어나는 스프롤(sprawl)현상이 심각하다. 도시지역의 무분별한 확장으로 녹지가 훼손되고 있다. 박정희시대 이래 50여 년간 보존해온 그린벨트가 야금야금 사라지고 있다. 교외 주택 공급은 도로와 철로,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들여야 하는 추가적인 부지 수요로 인해 도시가 아메바처럼 형성된다.

◆을지로 방치는 땅과 서울에 대한 모독

눈을 서울 내부로 돌려보자. 과연 서울에 주택 공급을 할 수 있는 땅이 부족한가? 결코 그렇지 않다. 전반적으로 서울은 주거형태의 60% 정도가 아파트여서 대지 당 가구 수가 세계 주요 도시보다 높다. 그러나 도심과 부도심 등 핵심지역에서는 뉴욕, 도쿄 등에 비해 낮다. 즉 용적률이 낮다. 뉴욕의 맨해튼만 해도 전체 평균 용적률이 서울 사대문안보다 훨씬 높다. 층고와 고도 제한이 거의 없으니 당연하다. 현재 허드슨 강변에 진행 중인 허드슨야드의 초고층 복합개발사업은 용적률이 3300%까지 허용됐다. 서울 대로변 교통요지는 제한적으로 1100%(아주 가끔 1500%) 정도까지 허용되고 나머지 고밀도 개발이라고 해도 500~800%가 제한선이다.

서울의 용적률을 높여야 한다. 즉 건물 층고를 올려 가구 수 공급을 증가시켜야 한다. 가구 수 증대에 대한 가장 강력한 규제가 층고를 제한하는 것인데, 현재 서울 재건축단지는 35층으로 억제돼 있다. 집권세력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묶어 놓은 것을 오세훈 신임 시장이 풀겠다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미국 뉴욕은 공중권(空中權, Air Rights)이라는 게 있다. 일조권과 비슷한 개념으로 토지 위의 공중에 대한 권리를 규정한 것으로 사고 팔수도 있다. 즉 한 부지에 50층의 건물을 짓는다면 인접한 부지에는 몇 층 이상 또는 몇 미터 이상 건물을 짓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토지주들끼리 보상을 주고받는 계약을 하는 것이다.

현재 서울은 공중이라는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곳이 그렇지만 그 대표적인 곳이 을지로와 종로 3, 4, 5, 6가다. 충무로3가역에서 충무로를 따라 종로3가까지, 여기서 동쪽으로 종로를 따라 동대문역까지, 다시 장충단로를 따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다시 서쪽으로 퇴계로를 따라 충무로3가역까지 가로 1.5km, 세로 1.1km 약 1.65㎢(50만평) 지역은 낡고 허름한 저층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유명한 냉면집들이 있는 을지로 3, 4가를 갈 기회가 있으면 그 주변을 한번 돌아보시라. 깜짝 놀랄 것이다. 이곳이 과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한복판 중 한복판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쓰러져가는 건물들과 지저분한 골목들이 엉켜 있다.

여기 50만평의 저층 낙후지역을 개발해 대규모 아파트를 공급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 지역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핵심 중의 핵심임에도 오랫동안 개발의 손이 미치지 못했다. 15년 전 중구 차원에서 을지로에 150층 관광허브빌딩을 짓는다는 방안이 나왔지만 서울시가 반대해 무산된 적 있다. 이곳을 초고층 고밀도 개발하면 이미 갖춰진 입지 자체의 경쟁력과 상징성 뿐 아니라 교육과 문화예술, 편의시설 측면에서 강남 버금가는 주거타운이 될 수 있다.

게다가 용적률을 높임으로써 건폐율을 낮춰 녹지를 확보할 수 있다. 이곳에 층수를 다양화한 평균 50~70층 주상복합건물 200동을 지으면 얼추 3만 가구 정도를 공급할 수 있다. 고품질로 짓되 평수를 다양화하고 임대와 분양을 섞어 중산층 이하에서부터 5분위 경제적 상류층까지, 1인가구에서부터 4~5인 가구까지 더불어 사는 소셜믹스가 이뤄진 도심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강남 집값은 안 잡힐래야 안 잡힐 수 없다. 그리 만드는 정권이나 지도자는 칭송받을 것이다.

문 정권 사람들도 이 같은 사실을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도심을 개발하면 또 수혜를 입을 계층이 나타나지 않을까 우려해서 나서지 않는 것일 수도 있다. 이제 시기와 질투를 버려야 한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15~17세기 경제적 문화적 기술적 발전의 핵심 계층이었던 유대인과 위그노(신교신자)를 미워해 네덜란드와 영국으로 밀어내는 우를 범했다. 좌파 정권이 중상층을 압박하는 부동산정책을 계속 하면 이들도 해외로 이주하려고 할 것이다. 실제 문 정권 들어 해외이주가 급격히 늘었다고 한다.

지금은 도시의 무분별한 스프롤현상을 막고 도심을 고집적 고밀도 개발하는 것이 세계적 도시개발 트렌드다. 탄소중립을 위해서도 도시의 평면적 확장을 막고 수직화 집적화 효율화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시골 면사무소 뒷골목보다도 못한 수도 서울 한복판을 저렇게 방치하는 것은 땅과 서울에 대한 모독이다.

이규화 논설실장

Copyright © 디지털타임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