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시가, 징벌성 세금" 주민들 집단행동.. 與의원도 "납득못해"
공시가격 인상에 대한 ‘조세 저항’ 움직임이 가장 거세게 분출되는 곳은 세종시다. 세종시는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이 평균 70.6% 올랐다. 재산세율 0.05%포인트 인하 혜택을 받지 못하는 6억원 초과 아파트가 작년 442가구에서 올해 2만342가구로 50배 가까이 증가했다. 세종에선 새뜸마을 6·9·12단지, 수루배마을3단지 등 여러 단지에서 집단 이의 신청을 위한 서명이 진행되고 있다.
◇주민들 “공시가 ‘깜깜이’ 산정이 더 문제”
집단 이의 신청을 준비하는 주민들은 ‘공시가 급등도 문제지만, 공시가 산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세종 호려울마을7단지 입주자대표회 김철주 회장은 “우리 아파트 전용 102㎡는 공시가가 2배 이상으로 오르면서 대부분 집이 종부세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 10월 입주 후 작년 말까지 매매 거래가 단 8건뿐이어서 실거래가의 대표성이 부족한데 무슨 기준으로 공시가를 매겼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시 감일스윗시티10단지 주민들도 공시가격 재검토 요청 동의서를 모으고 있다. 이들은 “작년 3월 입주 후 아직 주민 편의시설도 완비되지 않았고 지구전체가 공사판인 데다 인근 단지까지 다 합쳐도 거래 사례가 극히 소수인데 도대체 공시가가 어떻게 40~50%씩 오르느냐”고 말했다. 서울 노원구청 게시판에는 “적절한 수준의 세금을 회피하거나 반대할 의사는 없지만 그 기준이 되는 금액이 한 해에 40% 인상되는 건 너무 과도하다”는 주민 글이 올라왔다.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도 “실거래가가 더 비싼 옆 단지보다 공시가가 더 높은 게 이해가 안 간다”는 등 불만 글이 잇달아 게시됐다.
서울에선 공시가 인상에 대응하기 위해 다른 아파트 단지와 연합하는 곳도 있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상일동 ‘고덕그라시움’ ‘아르테온’ 등 5개 단지 입주자대표회의 연합회는 23일 국토교통부와 지역구 국회의원실(더불어민주당 진선미), 강동구청에 공시가격을 내려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일제히 보냈다. ‘평범한 입주민들을 투기 세력으로 간주해 징벌성 세금 폭탄을 부과하려는 게 아니라면 상식 선에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항의를 담았다. 연합회는 “공시지가 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조세 정책에 반대하는 서명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유자 대다수가 종부세를 물어야 하는 강남권 고가 아파트 단지에서도 집단 반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입주민은 주민 의견을 취합하고 있고, 역삼동 ‘역삼2차 아이파크’에선 이의 신청 방법을 주민에게 안내하고 있다. 서초구청의 경우 자체적으로 공시가격 검증단을 출범하고 정부의 공시가 산정에 문제 제기를 하고 나섰다.
올해 공시가격 의견 제출(1차 이의신청) 기간은 다음 달 5일까지다. 집주인들의 반발 강도를 볼 때 올해 이의 신청 건수는 역대 최고였던 지난해 기록을 훌쩍 뛰어넘을 전망이다. 공시가격 의견 제출은 2018년 1290건에서 2019년 2만8735건으로 급증했고, 지난해 3만7410건으로 폭증했다. 그러나 의견이 수용돼 공시가격이 정정된 비율은 지난해 2.4%에 그쳤다.
◇여당 국회의원까지 “납득이 안 된다”
공시가 급등에 대한 반발의 파장은 정치권을 덮쳤다. 공시가 인상으로 여론이 악화하자, 민주당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는 23일 “공시가 현실화 정책은 속도 조절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마포·노원·구로구 등 서울 비(非)강남권 지역구 국회의원들은 “코로나로 어려운 시기에 보유세 부담까지 커졌다”는 주민 항의 전화에 진땀을 흘리고 있다. 여당 내에선 ‘속도 조절론’도 제기됐다. 노웅래(마포 갑)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19일 국회 기재위 전체회의에서 “코로나 사태가 안정되고 경기가 회복될 때까지 향후 1∼2년간은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를 일시적으로 완화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진(서울 노원갑) 민주당 의원도 최근 국회에서 “한국부동산원은 작년 서울 아파트 값이 3.01% 상승했다고 발표했는데, 공시가격은 20% 올랐다”며 “납득이 되겠느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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