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업자에게 정보 새나가도.. LH, 경고·주의뿐

성유진 기자 2021. 3. 1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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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H 땅투기 의혹] 국민주택 책임진 공룡 공기업의 민낯
11일 오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진보당이 연 'LH 직원 투기 의혹 정부합동조사단 1차 조사결과 발표에 따른 기자회견'에서 한 참가자가 '관련자 엄중처벌' 등이 적힌 손피켓을 청사 담장에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3기 신도시 공직자 토지 거래’ 1차 조사에서 드러난 20명은 모두 LH(한국토지주택공사) 직원이었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LH와 임직원은 과연 더 이상 기관이 필요한가에 대한 국민적 질타에 답해야 할 것”이라며 “LH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회복 불능으로 추락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의 1차 조사는 차명 거래를 전혀 걸러낼 수 없는 초보적인 조사였는데도 LH 직원들이 신도시 예정지에서 투기가 의심되는 거래를 한 것이 추가로 적발됐다. 전문가들은 방만하게 운영돼온 공기업의 허물어진 기강과 도덕 불감증, 허술한 보안 의식 등이 이번 사태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핵심 정보 쥐고 있지만, 보안은 허술

LH는 2009년 한국토지공사와 대한주택공사의 통합으로 출범한 자산 규모 184조원에 1만명 가까운 직원을 거느린 공룡 조직이다. 신도시 등 각종 택지 개발 과정에서 후보지 물색, 지자체·주민 협의, 토지 보상, 시공사 선정, 분양 등 거의 모든 과정에 LH가 관여한다. 내부적으로 부동산 개발 정보가 많을 수밖에 없고, 직원들은 부동산 투자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편이다.

이해 충돌과 정보 유출 위험이 상존하지만, 내부 통제 장치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2018년 3기 신도시 유력 후보지로 거론되던 고양 삼송·원흥지구 개발 도면이 유출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LH는 이 사실을 6월쯤 처음 인지했지만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다가 10월에야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수사 결과 개발 도면은 LH 차장급 직원과 군인 출신 계약직 직원을 거쳐 부동산 업자에게 건네진 것으로 드러났다.

같은 해 경기도 신규 택지 후보지 관련 자료가 현직 국회의원에게 유출되는 일도 있었다. 2019년에는 후보지 지구 지정 업무를 하는 부서가 통제구역 지침을 어기고 문을 열어둔 채 직원 모두가 자리를 비워 감사에 적발되기도 했다.

LH의 조치는 매번 경고나 주의 처분에 그쳤다.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실이 LH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10년간 한국토지주택공사법상 비밀 누설 금지, 미공개 정보 이용 행위 금지 조항을 어겨 적발·처벌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정의당 강은미(왼쪽에서 셋째) 비상대책위원장이 1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등의 농지 불법 거래를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정의당은 이날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 사퇴를 요구했다. /국회사진기자단

◇도덕 불감증·갑질 논란도

이번 광명·시흥 땅 투기 의혹이 터지면서 LH 내부의 심각한 도덕 불감증과 기강 해이 상태도 드러났다. LH 서울지역본부의 한 직원은 부동산 유료 사이트에서 토지 경매·공매 강사로 활동하며 수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 11일 파면됐다. 이 직원은 “내부 정보를 이용한 게 아니어서 법적으로 문제 될 게 없다”며 항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LH 입사 6개월 차 직원이 사내 메신저 대화에서 다른 사람 이름으로 공공 택지를 사겠다면서 “이걸로 잘리게 돼도 어차피 땅 수익이 회사에서 평생 버는 돈보다 많을 텐데”라고 말한 사실이 알려져 비난을 받기도 했다.

작년에는 토지 보상 담당 직원이 한 부동산 개발업체로부터 법인카드를 받아 유흥비 등으로 약 280만원을 사용한 것이 국무조정실에 적발돼 파면됐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해 3~5월 출장비를 부정 수급한 LH 임직원은 2898명, 금액은 4억9228만원에 달한다.

갑질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2018년 부산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LH 직원이 자신보다 연배가 훨씬 높은 현장 직원들에게 “(집합에) 늦으면 초당 1000원” “억울하면 계약 특수 조건 봐라”라는 문자를 남겨 논란이 됐다. LH 부장급 직원이 대구의 한 국민 임대 아파트 입주자 대표에게 “국민 임대 살면서 주인한테...” “못사는 게...” 같은 막말을 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LH 직원에 대한 징계는 1개월 감봉이 전부였다.

이창무 한양대 교수는 “내부 정보 이용 여부와는 별개로 LH 직원들 사이에서 부동산 투자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었던 것 같다”며 “거대 공기업이 토지 개발 등을 독점하는 구조에서 내부 통제·감시마저 제대로 되지 않다 보니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문제”라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날 “LH가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기존의 병폐를 도려내고 환골탈태하는 혁신 방안을 마련토록 하겠다”고 강조했지만 구체적인 개혁 방안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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