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집없는 허허벌판에 중개업소만 활개.. 시흥 '땅 쪼개기 거래' 1년새 4배↑

김노향 기자 2021. 3. 10.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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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 무법지대.. 같은 땅 3개월 동안 손바뀜만 3번
머니S가 감정평가사에 의뢰해 과림동 토지 매매 실거래가를 조사한 결과 거래 건수는 2019년 59건에서 2020년 244건으로 1년 새 4배 이상 폭증했다. /사진=김노향 기자

“보시다시피 이 동네는 주택가가 없어요. 조경·목재·철공·폐기물업체와 사장님들 자금 사정을 잘 아는 부동산 주인들뿐이죠. 브로커를 통해 이 땅 얼마에 팔아주겠다고 먼저 접근하기도 해요.”(경기 시흥시 과림동 주민 A씨)

“‘LH 직원이 LH 땅을 사면 안 된다’는 규정은 그동안 없었잖아요. 앞으로 법과 규정이 바뀌어서 다시 이런 일은 안 일어나겠죠. 몇 명 때문에 1만명 가까운 직원 전체가 피해를 보게 생겼습니다.”(LH 직원)

무주택 서민들의 내집마련을 지원하고 국민의 주거고민을 해결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자 현 정부 최대 주택정책 수행 과제인 3기 신도시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과 가족들이 사전 투기를 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후 정부는 부랴부랴 조사단을 꾸리고 경찰의 압수수색과 함께 엄단을 예고했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의 눈은 불신으로 가득차 있다.
서울역 도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한 시간 반. 경기 광명시 버스 종점에서 내려 걸어서 30분을 더 가야 닿는 경기 시흥시 과림동. LH 직원들의 불법 투기 사례가 드러나 관련 조사가 한창인 이곳은 단독주택 하나 없고 임야와 논밭으로 둘러싸였지만 부동산 중개업소 간판은 흔히 볼 수 있었다.
LH 직원들이 사전 투기한 것으로 알려진 과림동 땅. /사진=김노향 기자


과림동 토지 매매 4배 급증… 땅 쪼개팔기 창궐


머니S가 감정평가사에 의뢰해 과림동 토지 매매 실거래가를 조사한 결과 거래 건수는 2019년 59건에서 2020년 244건으로 1년 새 4배이상 폭증했다.

2019년 실거래가는 최소 300만원(계약면적 27㎡)부터 최대 23억원(계약면적 3998㎡), 2020년은 최소 50만원(계약면적 9㎡)에서 최대 21억원(계약면적 2501㎡)에 거래됐다.

김민준 디자인 기자

지난해 거래에선 특이사항도 발견됐다. 조정흔 감정평가사는 “정부가 지난해 8·4 공급대책을 발표한 전후로 거래 건수가 급증했다”며 “무엇보다 거래 대부분은 도로에 접했거나 건축물을 지을 수 있는 땅,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형태의 쓸모 있는 땅이 아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중개업소가 많은 이유는 최근 몇 년 새 과림동 일대에 임야를 쪼개 파는 기획부동산이 창궐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과림동 전체 거래 320건 중에 170건은 기획부동산의 임야 쪼개기 지분 거래로 드러났다. 2017년 이후에도 연도별로 수십건에서 수백건에 달한다. 조 감정평가사는 “과림동 토지로 범위를 좁혀서 봤을 때 이 정도였고 동과 부동산 종류를 더 넓혀 보면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과림동 한 철공업체 바깥벽에 붙은 부동산 광고지. /사진=김노향 기자


“LH 사과 진정성있나?”… 강력 처벌 이뤄지나


현재 네이버부동산에 등록된 과림동 토지 매물만 봐도 ▲334㎡ 2억5000만원 ▲1485㎡ 13억5000만원 ▲803㎡ 20억원 ▲248㎡ 50억원 등으로 여러 개 등록돼있다.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광명·시흥지구는 10년 이상 개발 기대가 높았던 곳이어서 땅값에 거품이 많이 낀 상태”라며 “신도시 토지 수용 과정에 보상금을 더 받으려는 토지주들은 낮은 감정평가가격 때문에 민원 발생이 빈번하고 이런 시스템과 문제를 잘 아는 LH 직원들이 투기했다는 사실이 의아한 부분도 있다”고 했다.
신도시 토지보상 시 감정가격은 일반적으로 농지나 건축지가 아닌 경우 정상가격의 30~50%가 책정된다. 다만 신도시 개발 기대감이 높아짐에 따라 기획부동산과 쪼개기 투기거래 등이 땅값을 올리고 보상 감정 기준 자체가 높아졌을 수 있다는 게 부동산업계의 얘기다.
김민준 디자인 기자

시흥시가 공개한 개별 공시지가에 따르면 LH 직원이 매입 후 수목을 심은 것으로 알려진 과림동 특정 번지 공시지가는 2007년 ㎡당 27만2000원에서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된 2010년대 31만8000원, 2018년 3기신도시 정책이 처음 나온 당시 43만3600원으로 올랐다. 현재는 49만7900원이다.
관계기관 합동조사단과 경찰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LH 직원들은 땅값 보상을 더 많이 받으려는 목적으로 묘목을 심고 가짜 농업경영계획서까지 만들어 지자체에 제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행 농지법상 농민이 아니면 농지를 살 수 없음에도 주말농장을 운영해 고구마를 재배하겠다고 거짓 신고를 하고 실제론 보상금 산정이 어려운 버드나무 등 희귀수종을 심는 수법까지 동원됐다.
과림동 토지. /사진=김노향 기자


신도시정책 흔들리는데… LH "개인의 일탈"이라고?


사태가 대한민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놓은 상황에서도 일부 직원들은 이번 사태를 ‘개인의 일탈’로 치부하거나 입사 6개월차 신입직원이 “해고돼도 땅 수익이 평생 월급보다 많다”고 발언한 사내 메신저 대화 내용이 공개돼 국민적인 분노를 샀다.
시흥 주민 A씨는 “일반 국민들은 적은 월급이라도 성실히 일해 열심히 모으고 수십년이 걸려 내집마련의 꿈을 이루는데 이런 꿈을 실현해주라고 만든 공공기관 직원들이 국민을 기만했다는 생각에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고 분개했다.
과림동 토지 일대 대출 광고. /사진=김노향 기자
보상금이 아닌 대토보상이나 신도시 개발 후 아파트 분양권을 받을 수 있는 ‘협의 양도인’ 제도를 노렸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변창흠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9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야당의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원주민만 대상으로 공급하고 외지인을 배제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잇단 대책과 강력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선 가운데 법적 허점으로 인해 결국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질 경우 또다시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을 것이란 우려와 지적이 나온다. 한 시민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상황에도 신도시 정책을 지속하는 건 안된다”며 “관련자들에 대해 특별법을 소급적용해 처벌하고 LH와 건설회사 일감만 늘려주는 신도시정책의 구조적 문제를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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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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