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상한제에도 9억 초과 속출..실수요자 위한 해법은?

진명선 2021. 3. 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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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시장 과열로 택지비 원가도 급등
반포 원베일리 입주 시점 15억원 초과 가능성
공공택지 강동구 제일풍경채도 고분양가 논란
"택지비 시세 상승 전 분양가 심사해야"
연합뉴스

분양가상한제(분상제)를 적용한 서울 서초구 재건축아파트 20평대 분양가가 대출이 불가한 15억원에 육박하고, 공공택지를 통해 공급한 강동구 민간아파트에서도 9억원대 분양가가 나오는 등 청약 대기자들을 허탈하게 하는 분양가상한제 무력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주택 명목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 시세가 반영되는 분양가상한제의 맹점 때문인데, 실수요자들의 부담 가능성을 고려한 제도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분상제에도 ‘9억’ 무너져

지난 1월 초 서초구청은 경남·신반포3차 통합 재건축아파트 래미안원베일리(원베일리) 분양가를 5668만원으로 통보했다. 지난해 7월29일부터 민간 택지 분상제가 본격 시행된 이후에는 기초지방자치단체의 분양가심사위원회(분심위)가 분양가를 책정한다. 특히 원베일리는 분상제 적용 직전 주택도시보증공사(HUG, 허그)의 고분양가 심사를 통해 평당 4892만원이라는 분양가를 책정받은 바 있어 ‘고분양가’ 논란이 더욱 커졌다. 2019년 11월 민간택지 분상제 도입 때 “분상제 분양가가 허그보다 5~10%가량 낮을 것”이라고 밝힌 국토교통부의 공언이 무색해진 상황이다.

청약 대기자들에게 9억원과 15억원은 부담 가능한 주택 가격을 결정하는 ‘심리적 마지노선’이다. 2016년 7월부터 분양가 9억원 초과 주택은 중도금 대출을 받을 수 없고, 지난해 6·17 대책으로 입주 시점에 시세 15억원을 넘으면 잔금 대출도 어렵기 때문이다. 원베일리는 20평대인 전용 59㎡가 평균 14억원에 이르고, 입주 시점에는 15억원을 초과할 수 있어 ‘현금부자’만 청약할 수 있는 ‘황제분양’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공공택지인 고덕강일지구의 민간아파트 제일풍경채도 분상제 적용을 받았는데도 강동구청이 평당 분양가를 2430만원으로 책정하면서 ‘고분양가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12월 분양한 힐스테이트 리슈빌(평당 2230만원)보다 200만원 높은 것으로, 전용 84㎡는 평균 8억5천만원대로 9억원 턱밑까지 올랐고, 대형 평수인 전용 101㎡ 분양가는 9억원을 초과했다.

청약 대기자들은 향후 강동구 둔촌주공 등에서도 9억 문턱을 넘는 ‘고가 청약’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분양가상한제로 분양가가 내린다는 정부의 말을 믿을 수 있는 것인가요?’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달 22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출석한 변창흠 국토부 장관은 “(분상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비싼 택지비 반영되는 분상제

원가를 기반으로 한 분상제 분양가가 높아진 이유는 ‘택지비’ 때문이다. 부동산 경기 과열로 최근 몇년 사이 서울 부동산 시세가 급등한 상태라 택지비 원가 역시 급등했다. 원베일리는 택지비(4204만원), 기본형 건축비(798만원), 가산비(666만원)로 분양가가 책정됐는데, 택지비 비중이 분양가의 74%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사업시행인가를 통해 재건축이 결정된 이후 2~3년이 지나 시세가 오를 대로 오른 뒤 분양가 심사가 이뤄지는 분상제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김정우 서울 서초구 의원(더불어민주당)을 통해 받은 자료를 보면, 원베일리 택지비 감정평가 시점은 지난해 8월로, 사업시행인가 시점인 2017년 7월로부터 3년이 경과한 때였다.

익명을 원한 한 감정평가사는 “사업시행인가 시점이 아니라 분양에 임박해서 감정을 하게 되면 그사이에 재건축에 따라 급등한 시세가 공시지가에 반영돼, 공시지가 기반으로 택지비 감정평가를 하는 이상 택지비가 높게 나올 수밖에 없다”며 “저렴한 주택 공급이라는 공익적 목적이 있다면, 일반 공익사업처럼 감정평가 시점을 사업시행인가 때로 앞당기는 것이 방법”이라고 말했다. 재개발이나 대규모 공공택지 개발 때 토지소유주에 대한 보상 기준이 되는 시점은 사업시행인가 시점이다.

한편 고덕강일 제일풍경채는 공공택지를 공급한 서울주택도시공사(SH)의 ‘고급화’ 전략이 분양가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 강동구청 관계자는 “에스에이치가 설계공모를 했기 때문에 복도나 공용부분이 많고 지하주차장 면적이 넓게 나오는 등 일반 아파트와는 형태가 다르다. 가산비가 좀 더 높고 택지비도 조금 더 비싸다”고 설명했다. 공공택지조차 실수요자 부담 가능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로또분양’ 문제 해결 위해?

시장 쪽에서는 ‘고분양가’라고는 하지만 인근 시세 대비 여전히 낮다는 점을 강조한다. 국토부도 원베일리 분양가가 주변 시세(9394만~1억1212만원)의 60~70% 수준이라는 자료를 냈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누구를 실수요자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분양가격의 적정성에 대한 평가는 달라질 수 있고, 반포라는 지역적 특성을 감안하면 무조건 비싸다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강정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위원장은 “공공요금처럼 원가에 바탕을 두고 적정 이윤만 가져가라는 게 분상제 도입 취지”라며 “수요·공급에 따른 시장 논리로 형성된 지역 시세를 기준으로 가격을 평가하는 것은 공공이 가격 규제를 하는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로또분양이나 청약 과열 문제를 분양가를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은 실수요자들의 주택 구매 능력을 간과한 시장주의적 접근”이라며 “구축 아파트 한두채가 비싸게 거래되는 것과 수백, 수천채 신규 아파트가 고가로 분양되는 것은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다르기 때문에 현행 분상제가 부담 가능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명선 기자 toran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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