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되는 전세난에 "표준임대료 도입 명분 쌓인다" 전전긍긍

허지윤 기자 2020. 11. 2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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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발표한 전세대책에도 불구하고 전세난이 계속되면서 내년 6월에 도입될 전·월세 신고제로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전·월세 신고제가 도입된 이후에야 표준 임대료 도입을 논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표준 임대료 도입은 전·월세 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출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이다.

28일 한국감정원 발표에 따르면 11월 넷째 주(23일 기준)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전주 보다 0.3% 올라 63주 연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같은 기간 0.15% 올라 73주째 상승세다.

서울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전경. /조선DB

전세난이 계속되면서 부동산 관계자들은 내년 6월에 도입될 전월세 신고제와 이를 근간으로 마련될 가능성이 있는 표준임대료제도에 대한 논의를 주의 깊게 봐야한다고 강조한다. 우선 6월에 도입될 전·월세 신고제는 주택 임대차 계약을 하면 30일 이내 임대료와 임대 기간, 계약 당사자 등을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는 제도다. 세입자가 전입 신고만 하더라도 자동으로 처리된다. 정부는 전·월세 신고제 도입을 임대차 3법 중 마지막 남은 단추를 꿰는 것으로 보고 있다.

전·월세 신고제가 도입되면 그동안 임대 소득세를 내지 않았던 미신고 임대인들의 각종 세금 부담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 그간 정부가 놓친 세원이 고스란히 노출될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 교수는 "미신고 전·월세 수입에 과세가 가능해진다는 점에서 2006년 매매 실거래가 신고제 도입 못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국감정원이 전·월세 거래 미신고 임대주택을 분석한 결과 작년 8월 기준 전국 임대 목적 개인 보유 주택 673만가구 중 확정일자나 세입자 월세 세액공제 등을 통해 임대 현황을 파악할 수 있는 주택은 153만가구(22.8%)에 그치는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전·월세 신고제가 도입되는 것은 통계적으로도 의미가 있다. 주택 유형과 주택 노후도에 따른 가격을 정부가 취합하게 되는 셈이라 표준임대료 도입의 근간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렇게 전·월세 시장 불안이 이어지면, 결국 당정이 후속 법안과 대책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카드가 ‘주택 표준임대료’가 될 것이란 관측이 잇따르는 이유다.

주택 표준임대료는 정부가 부동산 가격 공시와 같이 임대주택의 적정한 임대료 수준을 정해주는 제도다. 가격이 정해진다는 점에서 거론되는 임대차 시장 안정화 대안 중 파급력이 강력한 카드로 여겨진다.

앞서 홍남기 경제 부총리는 지난달 23일 추가 전세대책과 관련해 "표준임대료 도입과 전월세 상한제를 신규 계약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지만,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내년 6월 전·월세신고제 시행 이후 검토하겠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김 장관은 지난 9월 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주택 표준임대료 도입은 내년 임대차 신고제가 시행되고 우리나라 전체적인 임대차 시장 정보가 쌓이면 그때 가서 생각해볼 문제"라고 했다.

표준임대료에 대한 법안도 이미 나온 상태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인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표준임대료 도입 방안을 담은 주거기본법 개정안 등 후속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지자체가 매년 용도·면적·구조 등을 고려해 표준주택을 선정하고 임대료 기준을 제시하고, 시행령을 통해 증감할 수 있게 하는 게 주요 골자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결국 표준임대료 도입 수순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며 "앞으로 임대차 시장 불안이 불가피한데 이 불안이 쉽사리 안잡힐수록 정부와 여당의 표준임대료 도입 명분은 견고해진다"고 말했다.

서울 성동구 한 공인중개사무소장은 "임대차 2법을 시행하면서 신규 계약을 하는 집주인들이 전·월셋값을 올려 받으려 하는 심리가 강해졌는데, 표준임대료를 도입하면 이를 강제로 막는 것이라 반발이 지금보다 더 거셀 것"이라면서 "표준임대료 때문에 자칫 집주인이 신규 계약 시 지금보다 낮은 가격으로 전·월세를 놓아야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집값 하락론을 펼치는 유명 유튜버 등 시장 일각에선 전월세신고제와 표준임대료 도입이 시작되면 갭투자자와 다주택자의 보유 매물이 시장으로 나오게 되고, 이에 따른 주택 가격 및 임대료 하향이 시작될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전월세 신고제와 표준임대료 도입 등 강력한 추가 규제는 ‘양날의 검’이라는 게 부동산 학계의 지적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월세 신고제와 표준임대료를 도입하게 되면 일시적으로 시장 가격이 안정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민간 임대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어 더 큰 불안과 왜곡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현재 주택 가격 상승 및 임대차 시장 불안의 원인 자체가 ‘공급 부족’이기 때문에 공급을 늘리지 않고서 시장만 규제하는 것은 효과가 없다"고 비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새 대안들 역시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과세 강화 정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는데, 이런 과세 강화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민간의 임대주택 공급 및 투자 감소, 이에 따른 임차인에 세금 전가, 민간 임대주택 질적 하락 등으로 이어져 서민이 더 피해를 보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했던 유럽 국가들의 경우 임대 공급 및 투자가 줄어들었다"고 덧붙였다.

고준석 동국대 법무대학원 겸임교수는 "임대차3법이나 표준임대료 제도 등이 부작용보다 시장 안정 효과가 크려면 민간 임대 공급 감소에 대한 대비책이 분명히 있어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외국처럼 공공임대로 임대 수요를 흡수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에 공공주택 공급이 이를 뒷받침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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