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대란 대책 없는 정부..전세가 상승이 저금리 때문?
[편집자주] 임대차2법 시행 석달여가 지났다. 신규 전세시장은 임대료 상승과 전세 매물 실종으로 '전세난'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는 일시 혼란으로 보지만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전세파동 가능성을 언급한다. 전세 물량 공급을 당장 확대할 수도 없고, 가격을 모두 통제할 수도 없어서다. 뾰족한 대책이 없다. 매매가격이 안정되면 전셋값이 오르는 사이클이 반복되고 있지만 누구도 '전세를 없애자'고 말 못하는게 근본 문제다.
임대차3법 통과 이후 전세시장 불안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책으로 내놓을 카드가 마땅치 않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발언을 종합해 보면 정부는 당초 전셋값 안정기를 임대차법 시행 후 2개월 후로 잡았다가 최근 4개월, 5개월로 늦추고 있다.
하지만 굳이 임대차법 '변수'가 아니더라도 금리, 공급, 세제 등 어떤 카드도 쓸 수 없는 전월세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내년에도 전세난이 계속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21일 정부 관계부처에 따르면 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 등 임대차2법이 지난 7월말 시행 된 이후 석 달 가까이 지났지만 전세불안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감정원 기준 서울 전셋값은 68주 연속 올라 역대 '최장기간 상승'을 기록 중이다.
전셋값 상승, 전세품귀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에 대한 정부와 시장의 시각차는 크다.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1989년 의무임대기간이 1년에서 2년으로 늘어났을 때 안정되기까지 5개월 정도 걸렸다"며 "똑같이 5개월이다 말할 수 없지만 일정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내년초까지는 전세난이 지속될 것이라고 사실상 시인한 셈이다.
1989년 말 임대차법이 개정될 당시 -0.7%(12월)의 변동률을 보였던 서울 전세값은 이듬해 1월 4.1% 뛰었다. 이어 2월에는 14.4%로 역대급으로 급등했고 3월과 4월 각각 2.3%, 2.0% 오름세를 보였다. 5월에는 2.7% 하락반전했다.
당시 개정 임대차법이 소급적용되지 않은 탓에 갱신계약은 임대의무 기간이 1년으로 유지되면서 전셋값이 폭등했다. 올해 개정된 임대차3법은 기존 계약에도 소급적용되기 때문에 31년 전에 비해 전세난이 빨리 진화될 것으로 정부 일각에선 전망한다. 국토부가 주도하면서 안착시켰던 2004년 버스중앙차로제나 2010년 우측보행을 떠올리는 사람도 있다. '오랜 관행'을 바꾸면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시적 혼란 정도로 보는 것이다.
반면 임대차법이 전세난을 촉발시켰으나 여타의 구조적인 문제까지 겹쳐 내년에도 내내 어려움이 계속될 것으로 보는 시장 전문가도 많다. 특히 '공급', '금리', '세제' 등 정부가 동원 가능한 대책을 모두 쓸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정부는 내년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을 3만6000가구로 올해 5만3000가구 대비 47.2% 감소할 것으로 본다. 민간의 '부동산 114'는 내년 공급량이 2만2977가구로 3만 가구가 채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 정부가 내년 하반기부터 3기 신도시 '사전청약'을 시작해 총 6만 가구를 사전분양하면 집을 사지 않고 전세살이 하려는 수요도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임재만 세종대 교수는 "1989년에는 공급이 늘어나는 시기와 겹쳐 조속한 안정화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물량이 많이 줄었다"며 "누군가는 집을 사서 전세를 줘야 하는데 다주택자를 억제하는 정책을 쓰고 있고 집값도 안정기라 실수요자마저 자기 집을 안 사려하니 전세난이 계속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전세는 가수요가 없는 실수요 시장이라 매매처럼 "나중에 구하세요" 할 수도 없다. '세제' 카드를 함부로 쓸 수도 없다. 만약 집주인의 임대소득에 과세하면 전세보증금으로 부담이 전가될 우려가 있어서다. 여기에다 유례없는 저금리도 문제다. '코로나' 시국에 일자리를 확대하고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저금리 기조는 유지할 수밖에 없다. 전세대출 금리가 떨어져 임대료 증액 유인이 되는 이유다.
가령 금리 연 4%였던 과거, 보증금 3억원의 대출이자가 월 100만원이었다면 현재는 금리 연 2%로 50만원 수준이다. 집주인도 임대료 수익률을 높이려면 전세금을 증액할 수밖에 없다. 전세대출 금리는 2017년 6월 연 3.08%에서 올해 6월 기준 연 2.26%로 떨어졌다. 전세대출은 연초이후 8월까지 21조9000억원 증가해 지난해 같은 기간 17조1000억원 대비 4조8000억원 늘었다.
권화순 기자
전월세상한제를 도입해도 가격 민감도가 크지 않은 월세가격은 변동폭이 미미할수 있다. 하지만 전세는 4년간 임대의무 기간을 지켜야 하는 계약갱신청구권과 맞물려 '4년치 임대료'를 한꺼번에 증액할 수밖에 없게 된다.
임대차2법을 시행한 시점도 애매했다. 정부는 6·17 대책과 7·10 대책, 8·4 공급대책까지 쏟아내며 매매가격을 잡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서울 집값 급등세는 꺾였지만 전세 불안은 가중됐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매매가격을 안정시키면 전셋값이 오르고 반대로 매매가격이 오를 것 같으면 전세보증금이 매매시장으로 간다"며 "매매와 전세는 '대체'관계가 아니라 '보완' 관계가 된다"고 지적했다.
전세는 서민 주거안정에 기여해 왔고 정부도 공적 보증을 통해 전세대출을 지원해 왔지만 부동산 시장 전체 이슈로 보면 집값을 끌어 올리는 지렛대(레버리지)로 활용되고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정부는 임대차법 개정 작업을 하면서 '월세시대'로 전환을 대비한 정책도 고민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임대료 증액을 제한하면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바꿔 임대료 수익을 올릴 것으로 본 것이다. "그럼 월세 살란 말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어 공론화를 못할 뿐이다.
31년만의 임대차법 개정과 유례없는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월세시대'에 대한 적극적인 준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세대책의 궁극적인 종착지는 결국 '월세대책'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송 부장은 "임대차법 개정 이후 보증부 월세(전세보증금+월세)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며 "정부가 보증부 월세시장으로 자연스럽게 이동할 수 있도록 집주인과 세입자에 적절한 인센티브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화순 기자
이러다 보니 전세 품귀, 미친 전셋값 등 임대차법의 부작용만 부각되고 있다. 내년 6월 시행되는 전월세 신고제와 함께 임대차법을 시행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부, 전세→월세 가속화 'NO' 전세비중 79.7%로 되레 늘어
21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7월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는 총 1만6994건으로 전년 동기 1만3826건보다 23% 많았지만 올해 8월과 9월에는 1만1730건, 7770건으로 21%, 38% 각각 줄었다. 확정일자를 신고한 기준으로 실제 8월, 9월 거래가 최종 집계된 것은 아니지만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으로 전월세 계약 갱신 건수가 늘어나며 신규 전월세 거래량은 감소한 것으로 분석된다.
전월세 거래에서 전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이달 들어 상승했다. 이달 18일 기준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 중 전세 비중은 79.7%였다. 지난해 10월 74.8%보다 4.9%p(포인트) 높다. 지난 7월 31일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전월세상한제)이 도입된 직후인 8월과 9월엔 전세 비중이 전년 대비 낮아졌지만 10월엔 오히려 상승했다.
이를 근거로 정부는 임대차법 시행 이후 전세가 줄고 월세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하지만 시장은 정부의 이같은 통계가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한다. 전세시장에선 줄서서 집을 보고 제비뽑기로 거래자를 정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가 상승 원인 '저금리'에서 찾는 정부
전세가 급등도 정부와 시장의 시각차가 크다. 정부는 전세가 상승의 원인을 저금리로 돌린다. 국토부 관계자는 "금리가 내려가면 전세 보증금 실부담이 줄어 선호지역 및 아파트 전세 수요가 증가하고, 집주인 입장에선 이자수익이 감소해 보증금을 높일 유인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으로 전세 수요와 공급이 함께 감소하며 시중 전세 매물이 줄고 체감 가격이 오를 수는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공급 감소를 야기해 전세난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일부 주장은 맞지 않다"고 반박했다. 대규모 택지 개발로 주택공급이 충분히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임대차법 시행으로 갱신계약은 임대료 상승폭이 5% 이내로 제한되지만 이런 긍정적 면은 통계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다. 현재의 전월세 통계는 확정일자 신고건을 기준으로 하지만 갱신계약은 대부분 확정일자 신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전월세 신고제가 도입됐더라면 해결될 문제다.
일각에서 전세 가격 안정화 방안으로 제시하는 표준임대료 도입도 전월세 신고제가 도입돼야 가능한 얘기다. 모든 전월세 가격을 토대로 표준임대료가 계산돼야 해서다.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내년 6월 전월세 신고제가 도입돼 모든 임대차 계약에 신고 의무가 부여되면 정확한 통계를 알 수 있다"며 "현재 통계로 임대차2법으로 인한 효과 혹은 부작용을 제대로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미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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