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단지는 2억 껑충, 저쪽 단지는 매물 0..전쟁같은 전세살이

진중언 기자 2020. 10. 15.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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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대란] 대단지 아파트도 전세 씨말라 - 전셋값도 2억~3억씩 급등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 전용면적 84㎡는 최근 전세 호가가 12억5000만원에 달한다. 2년 전 6억~7억원 정도에서 2배 수준으로 오른 것이다. 세입자 이모(40)씨는 “집주인이 6억5000만원인 전세 보증금을 10억원 이상으로 올려주지 않으면 실거주할 테니 집을 빼라고 한다”며 “돈을 마련할 방법도, 주변에 갈 수 있는 전셋집도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

본격적인 이사철을 맞아 서울에서 유례없는 전세 대란이 벌어지고 있다. 7월 말 계약갱신청구권, 전·월세상한제를 전격 시행하면서 예고된 재앙이다. 전세 물건은 자취를 감췄고 전셋값은 무섭게 오르고 있다. ‘귀한 전세’ 구경하려고 아파트 대문 앞에 긴 줄이 생기고 ‘제비뽑기’로 계약자를 정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지난 13일 강서구 가양동에서 매물로 나온 한 전셋집에 10여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진을 본 사람들은 “여기가 그 유명한 ‘전세 맛집’인가요?” “정말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라고 비꼬았다.

가양동 한 아파트 전세 줄서기/온라인 커뮤니티

◇'전세 품귀, 가격 급등' 우려 현실로

정부·여당이 임대차법 개정을 밀어붙일 때 부동산 전문가들은 전셋집 급감, 수급 불균형에 따른 가격 급등을 우려했다. 그러나 홍남기 부총리는 8월 “임대차법이 안착하면서 시장이 안정화될 것”이라고 했고,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임대인과 임차인이 함께 마음을 모아서 극복하면 전세 가격도 점차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의 기대와 달리 전셋집 품귀 현상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14일 부동산 정보 업체 ‘아실’에 따르면, 전체 4424가구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에 전세 매물은 단 3개뿐이다. 전세 거래가 빈번한 이 단지는 6월 중순만 해도 전세 매물이 360개가 넘었다. 송파구 잠실동 ‘레이크팰리스’(2678가구) 전세 매물은 단 1개, 동대문구 전농동 ‘전농SK’(1830가구)는 2개만 남아 있다. 노원구 중계동의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가 씨가 마르니 시세보다 훨씬 비싼 전셋집도 하루면 계약이 끝난다”고 말했다.

전셋값은 하루가 다르게 뛰고 있다. 강동구 명일동 ‘삼익 그린 2차’(107㎡)는 임대차법 개정 전 6억5000만원이던 전세 실거래가가 최근 8억9500만원으로 올랐다. 홍남기 부총리가 곧 전셋집을 빼줘야 하는 마포구 염리동 ‘마포자이3차’(84㎡) 인근 C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8억5000만원에 나온 매물이 오늘 가계약돼 이제 9억원짜리 매물 하나만 남았다”고 했다. 홍 부총리는 이 집을 작년 초 6억3000만원에 계약했다.

◇"전세 난민 될까" 불안한 무주택자

무주택자들의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있다. 자칫 현재 거주하는 전셋집에서 쫓겨날 경우 ‘전세 난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 5월 전세 계약이 만료되는 정모(36)씨는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할 계획인데 집주인이 실거주하겠다고 할까 걱정”이라며 “최근 전세 시세가 1억원 이상 올라서 만약 쫓겨나면 서울을 벗어나 경기도에 집을 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주요 대단지 아파트 전세 매물 현황 및 증감, 임대차법 개정 전후 전세 실거래가 변화

시장에서는 임대차법 개정 후 두 달여 만에 서울 아파트 전세물건이 80% 가까이 급감한 것으로 본다. 어렵게 전셋집을 구해도 비용이 문제다. 대출을 받으려 해도 보증기관이 보증하는 전세 대출은 최대 5억원이 한도다. 신용대출마저 최근 정부가 규제를 시작해 문턱이 높아지고 있다.

전세난에 지친 무주택자들의 최종 선택은 ‘패닉 바잉(공황 구매)’이다. 정부 말처럼 집값이 내리지는 않고, 전셋값은 감당이 안 되니 더 늦기 전에 눈높이를 낮춰서라도 집을 사는 것이다. 이런 수요는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의 집값 상승을 부추긴다. 중저가 아파트가 몰려 있는 노원구의 아파트 값은 최근 한 달 사이 3.41% 올랐다. 서울 평균(2%)의 1.5배가 넘는다. 은평구(2.94%), 도봉구(2.68%), 구로구(2.45%)도 비슷하다. 이상우 인베이드투자자문 대표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던 지역의 최근 집값 급등은 전세난에 지친 세입자들의 매수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뾰족한 대책이 없다. 홍남기 부총리는 14일 ‘제8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새로 전세를 구하시는 분들의 어려움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면서도 전세난 해결책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권대중 명지대 교수는 “정부 정책으로 임대차 시장이 복잡하게 꼬여 정부도 이제 방법이 없을 것”이라며 “대책 없이 밀어붙인 정책이 결국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를 힘들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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