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불패' 되레 키운 정부.."보유세 올려라"
[경향신문]
6·17대책에도 ‘가격 상승’ 여전
“다주택자 규제 실패 등 인정하고
땜질 대신 ‘강력한 규제’ 나서야”
정 총리, 다주택 공직자에 경고
“일단 거래만 틀어막았다고 봐야죠.”
30일 서울 잠실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 ㄱ씨는 정부의 ‘6·17 부동산대책’ 발표 이후 시장 상황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잠실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추가 지정되면서 일시적인 ‘매물 잠김’ 현상이 나타나고 있지만 시장에선 가격 상승 기대감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지정 전날인 22일 리센츠 84.99㎡가 23억원에 거래되며 최고가를 경신했고, 이튿날인 24일에는 거래허가 대상이 아닌 이곳 소형 평수(27.68㎡)가 11억1000만원의 신고가를 썼다. ㄱ씨는 “보통 대책이 발표되면 거래가 끊겨야 하는데, 이번에는 허가구역 지정일 직전까지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겠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며 “예전과는 명확하게 다른 이상 반응”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용산의 한 공인중개사는 “이제는 정부 대책이 임박했다는 소식을 곧 ‘집값이 더 오를 것’으로 시장이 받아들인다”며 “현재로선 집값 하락 신호를 시장에서 찾아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발표된 지 보름도 지나지 않은 6·17대책은 이미 시장에서 패색이 완연하다. 정부가 추가규제 엄포를 놔도 시장은 꿈쩍하지 않는다. 만성화된 ‘땜질 처방’은 효과를 잃었다. 어느 지역이 규제가 없고 집값이 더 오를 것인지, 투기수요의 적응력은 대책보다 빠르다. 이날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월간주택가격동향자료를 보면 6월15일 기준 서울 집값은 전월 대비 0.53%, 수도권은 0.64%, 전국은 0.48%씩 각각 올랐다. 서울은 5월의 전월 대비 상승률(0.02%)의 25배에 달하는 상승폭이고, 수도권도 3배 이상, 전국 3.4배 이상 상승폭이 커졌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다주택자를 대상으로 강도 높은 보유세 개편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집값 하락의 ‘열쇠’를 쥔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 실패, 투기꾼들의 ‘피난처’로 변질된 임대등록사업에 대한 오판, 각종 토건개발 주도 등 부동산정책 실패를 인정하고 ‘땜질’ 대신 강력 규제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다주택자를 압박할 수 있는 초강력 규제로는 ‘종합부동산세 인상’이 꼽힌다. 2018년 9·13대책 당시 종부세 인상이 시행되며 잠깐이나마 ‘거래 절벽’ 효과를 끌어냈다. 2019년 12·16대책 때도 종부세 인상안이 포함됐으나 20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며 유야무야됐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보유세 인상이 집값을 잡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아니지만 반드시 필요한 대책임은 틀림없다”며 “정부가 보유세 인상에 섣불리 나서지 못할 것이라는 믿음이 시장에 너무 강하기 때문에 집값이 계속 오르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 교수는 “현 정부에 다주택 보유 고위공직자가 유독 많은 점을 볼 때 현 정부가 보유세 인상을 못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것 아닌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다주택 참모들에게 1채 빼고 처분하라고 지난해 대통령비서실이 권고했으나 거의 무시되고 있다. 이날 정세균 국무총리는 “공직자들이 솔선하는 게 좋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다주택자 규제 실패는 고스란히 실수요자들에게 피해로 돌아오고 있다. 경기 김포시에 아파트를 구입하려던 ㄴ씨의 경우, 지난 15일 가계약금까지 건넸지만 집주인이 “집값이 오를 것 같아 못 팔겠다”며 2배의 위약금을 내밀며 계약을 파기했다. 집값을 대기 위해 8년 넘게 붓던 청약통장까지 이미 해지했다는 ㄴ씨는 “너무 황당했지만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며 “부동산대책이 과연 누굴 위한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각종 주거대책 등을 포함해 정부가 출범 후 21개의 대책을 쏟아내고도 이처럼 집값을 잡지 못한 결정적인 이유로는 ‘다주택자들에 대한 규제 실패’가 꼽힌다. 주택 관련 기관의 한 관계자는 “2011~2013년 사이 주택 가격 하락은 ‘집값이 더 이상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실망감에 다주택자들이 매물을 많이 던지면서 발생한 현상”이라며 “가격이 오를 것이란 믿음이 팽배한 현 상황에서는 다주택자들이 당연히 집을 내놓지 않는다”고 말했다.
6·17대책 발표 이후 실수요자 규제 논란, 규제지역 지정 관련 지역주민들의 반발 등이 이어지는 배경에도 대책에 대한 ‘불신’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태경 토지+자유연구소 부소장은 “지금 시장을 보면 30대가 대거 대출을 받아서 들어와 있는데, 전례가 없는 현상으로 사실상 전 국민이 부동산을 자산증식의 수단으로 여기고 있다는 뜻”이라며 “대책으로 집값이 내릴 것 같지도 않은데 규제를 받으니 기회가 사라졌다는 박탈감에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부쩍 늘어난 부동산 관련 유튜브,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이 같은 소식들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부동산 시장에 대한 ‘맹신’과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이 증폭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정부가 2017년 12월 단행한 ‘등록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은 민간 임대시장 투명성 강화 및 안정화라는 당초 목표와는 달리 다주택자들이 재산세·종부세 등 각종 보유세 중과를 피하기 위한 ‘조세회피처’로 변질됐다.현재 임대등록사업자로 등록할 경우 취·등록세 등 지방세 감면, 소득·양도세 감면 등 다양한 세제혜택을 받을 수 있다. 방안 시행 당시 79만가구였던 등록임대주택은 올 1분기 156만9000가구로 급증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급증한 임대등록사업자(주택) 대부분을 세금 감면을 목적으로 진입한 다주택자들로 보고 있다.
정부의 보유세 강화 의지에 ‘물음표’가 달린 사이 올해 국토부의 용산 정비창 기지 개발 등을 포함한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 발표(5월6일), 서울시의 ‘잠실 스포츠·마이스(MICE) 민간투자사업’ 본격 추진 발표(6월5일) 등 시장에서 반기는 ‘개발 호재’가 잇따랐고 내리 9주 동안 하락세를 보이던 서울 아파트값은 수직 상승했다.
김성달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건설개혁본부 국장은 “결론은 다주택자들에 대한 보유세를 강화해야 집값이 떨어진다는 것”이라며 “기존 임대등록사업자에 대한 혜택 폐지를 비롯한 보다 강력한 다주택자 규제정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송진식 기자 truej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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