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어렵게 구한 전세, 쫓겨날까 겁나요".. '거주 불안' 호소한 세입자

박상길 2020. 6. 2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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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때문에 이사했는데 어쩌나"
의무거주 2년·토지거래허가 파장
수도권 100여 단지 8만가구 타격
중개업소에 세입자들 문의 빗발
"전세값 천정부지 치솟을 수도"
6·17 대책 발표 직후 은마 아파트에는 대책 관련 문의가 쏟아졌다. 사진은 은마아파트 일대 부동산공인중개업소 전경. <이상현 기자>

규제 직격탄 맞은 '은마아파트' 가보니…

"갑자기 이런 식의 규제가 나와버리면 집에서 쫓겨날 수도 있을 것 같아 겁이 납니다."

지난 19일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에서 만난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지역 주민은 말을 꺼내기 전에 한숨부터 쉬었다. 정부의 21번째 규제인 '6·17 부동산 대책'에 다시 이사를 해야 할 듯 해 고민이 깊어졌다는 것이다.

"2년 거주 조건이 생겼는데 집주인이 들어와 살아야지, 전세계약을 연장을 해주려 하겠습니까? 먼저 물어보기도 애매하고…"

이 주민은 이렇게 말하며 고개를 돌렸다. 고등학생 자녀의 교육 문제 때문에 어렵게 전세를 얻었는데, 이제 어디로 또 이사를 해야할 지 막막하다는 게 이 주민의 고민이었다.

6·17 대책이 발표되자 강남권 세입자들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있다.

2년 거주 요건을 채우지 못한 조합원은 분양신청 자격을 박탈하겠다는 강력한 조치에 화들짝 놀란 집주인들이 다시 돌아오면서 기존에 살던 세입자들이 대책을 마련할 새도 없이 쫓겨날 위기에 처해서다. 은마아파트 외에도 개포주공5·6·7단지 등 재건축 초기 단계에 있는 수도권 100여 개 단지, 8만여 가구가 영향권에 들어간다.

이날 찾은 은마아파트 단지 내 상가동 부동산중개업소들에는 이 같은 고민을 나누는 지역 주민들의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이번 정부 대책으로 은마아파트는 '토지거래 허가구역'에 포함됐다. 집을 거래할 때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또 이번 대책에서 정부는 부동산 거래 규제구역내의 재건축 아파트를 분양 받는 경우 2년간의 실거주자로 분양 자격을 제한했다.

은마아파트와 인근의 잠실주공 5단지의 경우 이미 재건축 연한 30년을 10년이상 넘긴 상황이다. 즉 이번 정부 규제의 타격을 정통으로 맞은 곳이라 할 수 있다.

화들짝 놀란 아파트 주인들과 전세 입주 주민들이 문의도 그만큼 많았다.

한 부동산 업자는 "이번 대책이 워낙 강력한데 그 강력한 규제를 정통으로 맞은 곳이 이 곳이다 보니 소유자는 소유자대로 전세 입주민은 입주민대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실제 은마아파트는 현재 조합설립인가 바로 전 단계인 추진위원회 승인단계에 있다. 은마아파트는 강남 거래 허가제에 재건축 규제까지 겹겹의 규제망에 갇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규제로 긴장된 현장의 분위기 속에는 정부의 이번 대책으로 오히려 전셋값이 더 오를 것이라는 우려 섞여 있다. 집주인들이 저렴하게 세를 내놓을 이유가 없어지면서 매물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는 "조합원 분양권을 받기 위해 현재 살고 있는 세입자를 내보내고 집주인들이 들어가면 전셋값이 오를 수 있다"며 "교육을 위해 전셋집을 구하던 세입자들도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실제 5월 기준 은마아파트의 매매 실거래가는 19억4000만∼21억5500만원이지만, 같은 평형의 전세 실거래가는 이달 기준 5억∼6억4000만원으로, 4분의 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전세가율이 25% 수준인 셈이다.

서울 아파트의 전세가율이 50∼60% 선인 것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전세가가 형성돼 있다. 이런 낮은 전세가의 원인이 실거주하고 있지 않은 집주인들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 소장도 "전입 의무를 부과한 것은 일부 갭투자자들을 투기를 차단할 수는 있다"며 "현재 대출을 끼고 사는 매입하는 사람들은 집값 상승에 대한 불안감으로 거주의 목적으로 매입하는 준 실수요자들이 많기 때문에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투자수요를 차단하는데 큰 도움은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오히려 전입 의무로 인해 전세 물량이 감소하여 전세시장 불안을 더 부추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 은마아파트는 이달까지만 하더라도 올해 초 코로나19 여파를 딛고 가격회복을 하고 있었지만 6·17 대책으로 분위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을 전망이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 발표로 전세를 준 일부 집주인들의 혼란스러운 모습도 관측됐다.

또 다른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단지가 워낙 낡고 노후하다 보니 세만 놓고 다른 곳에 거주하는 집주인들이 많다"고 전했다. 그는 "어제 부동산대책이 발표되고 전세거래를 했던 집주인들의 문의전화가 많았다"며 "당장 전세를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주인들은 많이 당황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실거주 조건을 채울 수 없는 매물의 경우 급매물이 나올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그는 "2년 거주 조건을 못 채우는 사람들의 급매물이 나오면 가격조정도 불가피할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급매물이 거래될 경우 실거래가의 하락도 점쳐진다. 은마아파트 전용 84㎡ 평형은 올해 부동산 대책과 코로나19 등의 여파로 최저 17억4500만원에 실거래되기도 했다. 해당평형의 지난해 최고 실거래가는 21억5000만원(12월)으로, 불과 넉 달 새 실거래가가 4억원 가까이 하락한 바 있다.

'혼돈의 은마아파트'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2년 뒤 재건축이 되고 나면 정말 로또가 될 겁니다." 취재를 마치고 현장을 떠나며 한 중개업자의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았다.

글·사진=이상현기자 ishsy@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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