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포럼] 경기회복을 위한 인프라 투자의 조건

2020. 4. 13.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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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초래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다시 인프라 투자가 부상했다.

영국은 ‘인프라 혁명’을 추진하겠다고 선언했고, 올해 2억5000만파운드(약 3783억원)를 주택 2만호와 도로, 학교, 교통시설 건설 등에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도 이번에야말로 수십년간 미뤄왔던 인프라 투자를 실행하겠다면서 2조달러(약 2422조원) 규모의 인프라 예산법안을 꺼내들었다. 중국은 7개 주요 지방정부가 밝힌 올해 인프라 투자 계획액만 해도 3조5000억위안(약 600조원)에 달한다.

우리도 올해 상반기에 계획된 국도·철도·항만 등 건설투자 예산 14조원에다 하반기에 배정된 예산 6000억원을 더해 총 14조6000억원을 집행하기로 했다. 공공기관의 건설·장비투자도 상반기에 계획된 30조 3000억원에 하반기 예산 6000억원을 합해 총 30조9000억원을 집행할 계획이다. 올해 상반기에 애초 계획보다 건설투자 규모를 1조2000억원 더 늘리겠다는 것이다.

경기침체기의 전통적인 부양 방안은 선진국과 신흥국을 막론하고 모두 인프라 투자였다. 특히 대규모 실업이 발생할 경우 인프라 투자만큼 고용과 소득에 직접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검증된 대책은 많지 않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정부는 예타면제사업(24조원), 생활 SOC사업(48조원), 노후 인프라 사업(32조원) 등과 관련해 무려 104조원에 달하는 투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4··15 총선이 다가오니 여야 정당은 물론, 후보자들도 하나같이 도로·철도 등 인프라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인프라 투자계획의 양(量)에 관한 한, 우리도 부족하지 않다. 이제부터는 인프라 투자가 경기회복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조건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최근 미국의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코로나19에 따른 대응책으로 ‘빠른’ 조치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고 생산적인’ 대규모 공공투자 프로그램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국가재정에서 사회 인프라 구축 등을 위해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을 계속 지출하는 ‘영구적인’ 경기부양책을 제안했다. 그래야 기업과 가계가 유동성 공급 효과를 빨리 체감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경제의 생산능력을 확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프라 투자 정책은 생산성 향상 정책과 병행해야 한다. 영국과 싱가포르는 두 가지 정책을 함께 추진해온 대표적인 나라다.

영국은 2013년부터 ‘건설2025’를 통해 생애주기비용 33% 절감, 공사 기간 50% 단축, 온실가스 배출 50% 감소 등을 추진해왔다. 싱가포르는 지난 2010년부터 해마다 건설 프로젝트의 생산성을 2~3%씩 높이겠다는 계획을 실천해오고 있다.

어떤 인프라에 투자할 것인가도 중요하다. 중국만 해도 5G, 초고압(UHV) 전송, 도시철도, 신에너지 자동차 충전기, 데이터 센터, 인공지능, 산업용 인터넷 등과 같은 ‘신(新)인프라’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고 한다. 당장 추진하기에는 도로, 철도와 같은 전통 인프라가 손쉽겠지만 미래를 생각한다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거나 뒷받침할 수 있는 인프라가 더 중요할 것이다.

인프라 투자가 언제나 경기 회복과 경제성장에 기여하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이다. 1990년대 초반에 부동산 버블이 붕괴한 직후 일본은 대대적인 인프라 투자를 통해 경기부양에 나섰다.

하지만 성과는 별로 없었다. 불필요한 과잉·중복 투자가 이뤄지다 보니 ‘차는 다니지 않고 곰만 다니는 도로’, ‘배는 없고 낚시꾼만 가득한 항만’도 많았다고 한다.

인프라 투자가 의도했던 정책성과를 거두고자 한다면 질(質)적인 측면에서 적절한 대상의 선정과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

총선 이후에는 기존의 인프라 투자정책을 다시 한번 차분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

이상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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