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11∙3 대책은 믿을 수 있을까?
최근 대학 후배가 집 문제로 고민 상담을 해왔다. 후배 사정은 이랬다. 직장과 가까운 서울 마포에 전세를 살고 있는데, 아이가 곧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다 보니 그동안 모은 목돈으로 교통과 학군이 좋은 곳으로 집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한데 집값이 생각보다 많이 올라 집을 사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사려면 빚을 많이 내야 하는데, 집값이 폭락할 가능성은 없는지 등을 꼬치꼬치 물었다.
이른바 ‘강남 3구’ 재건축 아파트값은 3.3㎡당 4000만원을 넘어섰다. 서울의 경우 최근 1년간 1억원 넘게 오른 아파트도 수두룩하다. 너도나도 부동산 투기에 뛰어든 결과다. 최근 부동산 시장의 모습은 지난 2001년 이후 연간 아파트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았던 2006년을 떠오르게 한다. 그해 수도권 재건축 아파트 가격 연간 상승률은 40%에 달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의 투기과열은 2년 전 정부의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에서 시작됐다. 정부는 내수 진작을 내세워 금리를 크게 낮춰 돈을 풀었고, 부동산 관련 금융규제도 완화했다. 인위적으로 주택 구매를 자극하는 정책이었다. 그 덕분인지 국내 주택시장 호황으로 건설경기는 살아났고 건설 투자가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뒷받침했다.
문제는 가계부채가 급격히 늘었고 일부 지역은 부동산이 과열되는 부작용이 커졌다는 점이다. 가계 빚에 의존한 부동산 부양책이 한계점을 드러냈다. 부동산 경기만 온기가 있을 뿐, 경제는 살아나지 않았고, 그 사이에 가계부채만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부동산 투기과열로 경고음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 8월과 9월 잇따라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에 오히려 역효과만 가져왔다. 주택공급 축소를 내용으로 하는 8·25 대책은 오히려 주택 공급량 감소로 기존 아파트값이 꺾이지 않을 것이란 기대로 이어져 대책 취지와는 달리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
정책 ‘약발’이 제대로 듣지 않자 정부는 다시 간접적으로 중도금 대출 규제에 나섰고 주택금융공사의 ‘보금자리론’의 심사요건과 대출 규제도 강화했다. 8·25 대책이 효과를 보지 못하자 정부가 또다시 대책을 들고 나왔다. 지난 3일 정부는 부동산 투기과열을 잡기 위해 전매제한기간 강화와 1순위 제한, 재당첨 제한 등의 내용을 담은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부동산 투기 수요를 억제하고 실수요자가 혜택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정부는 설명했다.
불똥은 엉뚱하게 투기 목적이 아닌 내 집 마련을 꿈꾸던 무주택자들에게 튀었다. 분양했거나 분양할 예정인 일부 단지의 중도금 대출이 막히면서 개인 신용대출 등을 통해 중도금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일부에서는 “무주택자의 돈줄까지 묶으면 결국 돈 있는 사람만 청약 기회를 얻는 정책”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은행권 가계대출 금리도 연 3%를 넘어가며 실수요자들의 부담은 커지고 있다.
2년 전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부추겼던 정부가 이제 부동산 안정대책을 얘기하고 있다. 그 사이 서울 강남지역에는 3.3㎡당 4000만원이 넘는 아파트가 속출하고, 전·월세 가격 상승 속도는 이미 일반 서민들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정부의 오락가락하는 정책에 내 집 마련의 부푼 꿈을 안고 차근차근 목돈 마련을 해온 서민들은 허탈해질 수밖에 없다.
서민들의 ‘부채’를 담보로 부동산 시장을 살려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실패했다. 13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와 부동산 투기 블랙홀의 부작용만을 낳았다. 부동산 호황을 바탕으로 지탱해 온 경기는 시장 과열을 막겠다는 11∙3 부동산 대책 이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상황이 됐다.
빚 내서 집을 사라며 권하던 정부가 이젠 살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만 집을 사라고 말을 바꿨다. 후배가 그 후 집을 샀는지는 확인해보지 않아 모르겠다. 하지만 빚을 내 집을 샀든 제 돈 주고 샀든 ‘내가 이러려고 집을 샀나’하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워낙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뀌는 주택 정책이기에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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