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전자계약' 거래자가 할 일은 인증 뿐.. 확정일자까지 '척척'

박세환 기자 2016. 10. 22.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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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경기도 수원의 한 공인중개사가 구속됐다. 임차인에게는 전세로, 임대인에게는 월세로 속여 이중계약서를 작성하는 수법으로 20억여원의 전세보증금을 받아 챙겼다. 믿을 수 없는 건 사람뿐만이 아니다. 한국소비자원은 직방·다방·방콜 등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앱)에 등록된 매물 정보 60%가량이 실제와 다르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올 상반기 부동산 실거래 허위신고 적발 건수는 1973건에 달했다.

두 달 전 서울에 적용된 ‘부동산 자동계약 시스템’은 이러한 부동산 시장의 폐해를 줄이고자 도입됐다. 정부가 추진 중인 부동산 거래 통합지원 시스템의 첫 단계다. 현재까지 총 28억원이 들어갔고, 전자계약서는 공인중개사만 작성할 수 있다. 지난해 주택매매 가운데 70%가 중개소를 거치는 등 거래 비중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부동산 전자계약 어떻게 하나?

과정은 간단하다. 전자계약서 작성은 중개사가 하기 때문에 거래당사자는 딱히 할 게 없다. 매매를 예로 들면 우선 매수자가 좋은 물건을 발견한 뒤 주인과 전자계약 여부를 합의한다. 다음으로 국토교통부 전자계약 시스템 홈페이지에 접속, 전자계약이 가능한 중개업소를 찾는다. 인적사항과 특약(수리) 여부 등을 미리 공인중개사에게 알린 뒤 임차·임대인이나 매수·매도자가 함께 업소를 방문한다. 중개사가 미리 작성해둔 거래 내용을 확인하고 본인인증 서명을 하면 된다. 계약 완료까지 거래자는 한 차례만 휴대전화로 인증을 받는다. 공인중개사는 휴대전화와 공인인증서를 통해 두 번의 신원확인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전자계약서는 국가공인 전자문서보관서에 5년간 보관된다. 계약이 끝나면 실거래가나 확정일자(전월세)도 자동으로 부여된다. 현재는 서울 주택의 매매·전월세만 가능하며,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는 직거래나 대리계약은 지원되지 않는다. 국토부는 전자계약을 통해 종이 계약서를 인쇄하는 비용 등을 합쳐 한 해 4억5000여만원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마다 전체 공인중개사의 17%가 휴·폐업하는 상황에서 계약서를 분실할 우려가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계약 후 본인인증을 거치면 언제든 계약 내용을 볼 수 있고, 출력도 가능하다.

사업 초반이라 혜택도 적지 않다.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부동산 전자계약을 한 고객에 대해 주택담보·전세자금 대출금리를 0.2% 포인트 인하해준다. 신한카드와 우리카드도 5000만원 내에서 대출금리를 최대 30%까지 할인해준다. 등기수수료를 30% 할인해주기도 한다. 전자계약으로 임대차 계약을 맺는 대학생 등 선착순 100명은 20만원 상당의 바우처도 받을 수 있다.

좋은데 안 쓰는 이유?

야심차게 시작한 시스템이지만 실적은 좋지 않다. 서울시내 2만여 공인중개업소 중 전자중계 시스템에 등록한 업소는 1125곳에 불과하다. 실제로 서울 마포구·종로구·강남구의 공인중개업소 30여곳을 돌아본 결과 전자중계 등록 업소는 한 곳도 없었다.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작동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았다. 강남의 A부동산 대표는 “주거래층이 노인인데, 익숙지 않은 방식보다 지금의 종이 계약서가 좋다는 손님이 많다”며 “굳이 번거로운 걸 배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지난 5월부터 6개월간 서울 전역의 전자계약 체결 건수는 28건에 그치고 있다. 정부가 계약서를 쓸 수 있는 인원을 공인중개사로 한정하면서 법무사와의 갈등도 커지는 형국이다.

중개업소의 모든 거래와 소득이 드러난다며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거래액이 크지 않은 월세 중개 등은 현금영수증 대신 중개수수료를 깎아주는 관행 탓에 공인중개사는 전자계약보다는 기존 계약을 선호한다. 정지욱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부동산정책연구원 연구실장은 “정부가 거래정보 일체를 들어다보면 거래가 침체될 수 있다”며 “굳이 새로운 시스템이 아니어도 현재의 거래 과정을 보완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자계약으로 가는 방향은 맞지만 시장 반응이 저조한 이유는 실행 전략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전자계약 실적 등에 따라 중개사에게 세금 혜택을 부여하는 등의 유인책 확대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개발 총괄한 김상석 국토부 부동산산업과장
“전자계약 성공 땐 시스템 수출도 가능”

부동산 전자계약 시스템 개발을 총괄한 김상석(52·사진) 국토교통부 부동산산업과장은 전자계약이 부동산과 파생된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한국의 뛰어난 IT 인프라를 바탕으로 제도가 성공을 거두면 선점 효과를 통해 다른 나라에 시스템 수출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과장은 전자계약이 향후 공인중개업의 설 곳을 없앤다는 우려에 대해 ‘오히려 전문성을 갖춘 공인중개사의 역할이 더 커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시행 두 달째인데 참여율이 저조하다. 혜택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나.

“처음 도입되는 제도라 막연한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지난 5월 서초구 시범사업 이후 8월에 서울 전역으로 대상을 확대하면서 참여율이 조금씩 늘고 있다. 참여자에게 등기수수료와 주택담보대출 금리 인하, 바우처 제공 등 다양한 특전을 진행 중이다. 금리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은행을 늘리는 등 내부에서 검토하고 있는 정책들도 있다. 다만 유인책은 한계가 있고, 시스템 자체의 안전성과 경제성을 통해 자연스럽게 정착될 수 있다고 본다.”

-불편한 인터페이스와 끊이지 않는 보안 우려는 어떻게 해결할 건지.

“현재 PC의 경우 전자계약서 작성은 되지만 서명은 불가하다. 태블릿PC와 휴대전화로는 서명은 되지만 작성은 안 된다. 매도자와 매수자의 본인 인증을 위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기기가 나뉘어 불편한 점은 내년 중 관련 IT 업체의 센서 기술 개발로 보완할 전망이다. 계약 완료 후 수정을 위해서는 계약을 파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불편함도 손볼 계획이다. 다만 기존 종이 계약서보다 훨씬 안전한 건 분명하다. 분실 우려도 확 줄고, 해킹을 당하더라도 암호화가 끝난 상태라 써먹을 수도 없다. 다만 주기적인 보안 시스템 점검 등은 병행할 것이다.”

-전자계약이 거래 내역 공개와 공인중개업 밥그릇 뺏기로 변질될 거라는 우려에 대해서는.

“이미 실거래 신고 의무를 통해 거래 내역 등이 정부로 보고되고 있다. 정부가 마음먹고 세무조사를 한다면 이 자료를 토대로 이미 했을 거다. 그러나 제도상 불가능하다. 지나친 우려다. 현재도 총 부동산 거래 중 공인중개사를 통하는 경우가 반, 직거래가 반이다. 다만 일반인의 경우 전문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부동산 전문가인 공인중개사를 계속 찾게 된다. 구조는 똑같은데 방법이 달라질 뿐이다. 결국 공인중개업의 전문성이 더 강화될 거라고 본다.”

-향후 시스템 운영 계획은.

“한국의 정보통신 인프라는 세계 최고다. 노하우가 축적되면 전자계약을 해외에 수출할 수 있을 것이다. 융합을 통한 새로운 영역 개척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과 IT가 결합한 핀테크처럼 말이다. 향후 주택을 넘어 상가, 오피스텔까지 전자계약이 적용되면 제도를 더 연구해 단순한 중개 역할을 넘는 새로운 부동산 시장 개척도 계획하고 있다.”

글=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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