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 만난 사람] 4년째 年 1만가구 이상 공급하는 주택업계 새 강자, 중흥건설 정창선 회장
신분당선 광교중앙역에서 광교중앙로 사거리 방향으로 10여 분을 걸으면 푸른 원천저수지(호수공원)를 감싼 광활한 땅(8만4479㎡)이 눈에 들어온다. 예정가(5644억원)의 132.8% 수준인 7500억원을 베팅해 중흥건설이 따낸 '금싸라기' 땅이다. 최고가 입찰제에서 중흥건설은 500억원을 더 쓰고 대형 건설사 컨소시엄을 꺾었다. 광주를 기반으로 성장한 중흥건설이 서울·수도권에서 존재감을 드러낸 '일대 사건'이었다.
입찰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정 회장이다. 그는 "(입지상) 창사 이래 최고 건축물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며 호방하게 웃었다. 입찰 과정은 007첩보 영화를 방불케 했다. 정 회장은 "이 땅을 반드시 따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시장에 소문이 돌면 가격이 오를 수 있어 핵심 임원 한두 명만 알 정도로 극비리에 준비했다"고 전했다.
'입지에 대한 안목에 있어 대한민국에서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정 회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아파트와 오피스텔 청약에는 광교가 분양을 시작한 이래 가장 많은 사람이 몰려 '대박'이 터졌다. 중흥건설은 최고 49층짜리 아파트 2231가구, 오피스텔 230실, 4만399㎡ 상업시설인 어뮤즈스퀘어 등으로 구성된 대규모 주상복합단지를 짓고 있다. 2019년 준공 예정이다. 정 회장은 "전체 매출 규모가 2조원이 넘는 초대형 사업지"라며 "광교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로 지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 아파트 용지 30곳 확보…세종시는 'S-클래스 타운'
정부가 2014년부터 3년간 신규 택지개발 중단에 이어 8·25 가계부채 대책의 하나로 공공택지 공급을 제한하면서 대다수 건설사는 땅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하지만 정 회장은 여유롭다. 그는 "가까운 미래에 건설사들은 택지 의존도를 줄일 상황에 직면할 것이라고 일찌감치 예상해 3~4년 전부터 토지 매입에 매진했다"며 "아파트를 팔아 이윤이 생기면 주저 없이 땅에 투자했다"고 말했다. 당장 사업을 하지 않더라도 땅값이 오를 테니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란 얘기다.
정 회장의 혜안은 세종시 개발에서 빛났다. 대형사들이 사업성이 없다며 수백억 원씩 위약금을 물고 포기한 땅을 중흥건설이 선봉에 서서 사들였다.
그는 "세종시가 '강남'처럼 될 것이란 믿음에 전체 주택 용지의 3분의 1가량을 매입해 단일 브랜드로는 가장 많은 1만3000여 가구를 공급했다"고 말했다.
세종시는 2011년만 해도 수의계약을 할 정도로 땅이 안 팔렸던 곳이다. 정 회장은 "첫마을에 가보고 웃돈이 2000만원가량 붙은 걸 확인한 뒤 확신이 들었다"며 "당시 대전 집값이 3.3㎡당 1100만원대였는데 세종시 땅을 사면 3.3㎡당 750만원 정도에 분양할 수 있어 승산이 충분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예측대로 세종시 분양시장은 완판 행진을 이어 미분양 물량이 '제로'다. 이후 건설사 토지 매입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중흥이 가는 곳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따라가라"는 말까지 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정 회장은 한국토지주택공사(LH)처럼 택지개발에도 뛰어들었다. 순천시 신대지구를 개발해 성공적으로 분양했고 목포·당진·서산·청주 등지에서도 진행 중이다. 목포는 택지 규모가 60만평에 달한다. 택지개발은 상당한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내에 이 분야 실적을 갖춘 건설사는 그리 많지 않다. 정 회장은 "전국에 보유한 땅이 30곳에 달해 3~4년 안정적으로 사업을 펼칠 수 있는 먹거리"라며 "기반 시설이 잘 갖춰진 택지지구라 사업성이 좋다"고 설명했다.
◆ 광주 시골에서 '맨주먹'으로 사업 일궈 전국구 도약
정 회장은 열아홉에 집 짓는 기술자로 처음 건설업에 뛰어들었다. 전문건설업으로 시작해 '집장사'로 바꾼 뒤 주로 연립주택을 지었다. 1983년 법인을 세우고 아파트를 선보였다. 그는 "1980년대엔 정부가 택지를 공급하지 않아 지주들 땅을 일일이 사들여 집을 지어야 했다"며 "다른 건설사가 포기한 땅 지분 70개(1만5000평)를 악착같이 모아 600가구를 분양했는데 200가구가 큰 사업일 때니 굉장히 큰 규모였다"고 설명했다.
세종시에서 사업의 날개를 단 정 회장은 여세를 몰아 수도권에 진출하며 급성장했다. 청약 열풍까지 더해져 2013년부터 매년 1만가구 넘게 분양했다. 지난해엔 사상 최대 규모인 1만6200여 가구를 공급했다. 2010년 100위권 밖이었던 도급 순위는 올해 33위로 뛰었고, 총매출액은 작년 4조5610억원으로 2010년(5414억원)보다 8배나 커졌다. 올해도 전국에 약 1만5000가구를 쏟아낸다.
정 회장은 사업 다각화에도 적극적이다. 올해 초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 사업에 새로 진출해 광주효천 A-2블록을 따냈다. 광주와 부산을 중심으로 수주에 나서 재개발·재건축 수주액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대기업 반열인 1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그는 "주택 공급과잉을 우려하는 이가 많지만 반대로 본다"며 "젊은 직장인, 신혼부부 등 실수요자가 아직 많고, 광주시만 봐도 매년 2만가구씩 더 지어도 된다"고 말했다. 전세금이 계속 오르는 원인 중 하나가 공급 부족이란 지론이다. 정 회장은 "품질이 뛰어난 살기 좋은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는 것을 누누이 강조했다. 시간이 돈인 만큼 공사기간을 최대한 줄이라고 독촉하는 건설사가 다수지만 그는 거꾸로 공기를 두 달 더 늘리는 파격적인 실험을 감행하고 있다.
'암행어사'처럼 전국 사업지를 돌아다니며 품질과 공정만 엄격하게 관리하는 전문가도 최근 영입했다. 그는 "공기가 빠듯하면 일이 거칠어지고 나중에 하자가 발견되면 비용이 서너 배 더 들어가니 처음부터 잘 지어야 한다"며 "양질의 시공을 하려다 돈이 더 들었다면 아무 말 안 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칠순이 훨씬 넘은 지금도 주택사업 열정이 청년 때 못지않게 뜨겁다. 매일 아침 7시에 출근해 회의를 주재하고 주요 프로젝트를 직접 챙긴다. 회사 재무 상황을 매일 체크하며 사업별 자금흐름을 '알파고'처럼 꿰뚫고 있다. 그가 사는 곳도 중흥건설이 지은 아파트일 정도로 'S-클래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 악착같이 살아온 집짓기 달인, 이젠 사회에 공헌하며 한풀이
지역민 돕고 후학양성 팔 걷어붙여
평생 가사도우미 한번 안 쓰고 내조한 부인을 살뜰히 챙기는 애처가로도 유명하다. 주말에 부부가 함께 나주호 인근 골드레이크CC에서 골프를 치는 게 유일한 호사다. 정 회장은 본인이 많이 못 배운 한 때문에 장학재단을 통해 사회공헌에도 적극적이다. 중흥장학회를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중고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문화·장애단체 기부는 물론 수년째 견본주택 개관 때 화환 대신 쌀을 기부받아 지역 소외계층에 전달해왔다. 지난달에는 '광주 친환경 차부품 클러스터'에 5억원을 쾌척해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발 벗고 나섰다.
정 회장은 첫째 아들 정원주 사장에게 2013년부터 중흥건설 대표를 맡겼고, 둘째 정원철 사장은 2006년부터 중흥종합건설을 책임지고 있다. 올해 초부터는 중흥건설이 'S-클래스', 중흥종합건설이 '시티 프라디움'으로 브랜드도 분리해 독자 경영에 들어갔다.
▶ 정창선 회장은…
△1942년 광주광역시 출생 △1983년 중흥건설 전신 금남주택 설립 △1992~2013년 중흥건설 대표 △1996년 전남대 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 수료 △2001~2010년 대한주택건설협회 중앙회 부회장 △2003~2009년 대한건설협회 광주광역시회 회장 △2009년 대통령 표창 △2011년~ 재단법인 광주한마음장학재단 이사장
[이한나 기자 / 임영신 기자 / 사진 = 한주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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