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리치]"죽어도 죄는 안 죽었다" 용서받지 못한 '사면부자들'

2016. 8. 14.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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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슈퍼리치팀 윤현종 기자] 미국과 호주의 억만장자 2명이 있었습니다. 같은 해 태어난 둘 모두 업계를 주름잡으며 잘 나갔습니다. 그러나 모두 위법행위로 추문에 휩싸여 안 좋은 말년을 맞습니다. 수십 년 간 쌓은 명성도 한 순간 휴지 조각이 됐죠. 


현재 모두 사망한 둘은 물론 생전에 사면받긴 했습니다. 그러나 논란은 이어졌습니다. 죽은 뒤에도 죄는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사례 1. 사면 뒤에도 고국 땅 못 밟고 죽은 미국의 ‘무역왕’

한때 미국 ‘석유왕’ 또는 ‘상품자재(Commodity)왕’으로 불렸던 인물이 있었습니다. 바로 마크 리치입니다.

그는 1934년 벨기에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1941년 미국으로 이민한 프랫은 대학 자퇴 후 ‘피브로’란 무역회사에서 장사를 배웠습니다. 국제 원자재 시장 흐름을 익힌 리치는 1974년 자신의 이름을 따 무역회사 ‘마크 리치 앤드 코’를 세웠습니다. 지금의 글로벌 원자재 거래업체 ‘글렌코어’입니다.
리치가 석유왕이란 또 다른 별명을 얻은 것도 이 무렵이었습니다. 

그는 1973∼1974년 석유파동 당시 이란과 이라크에서 원유를 사 미국 석유회사에 갑절 가격으로 팔며 명성을 날렸죠. 1980년대엔 부동산으로도 사업영역을 넓혔습니다. 

마크 리치와 그가 창립해 훗날 성장한 글렌코어 로고

그러나 1983년, 이름(Rich)처럼 부호가 된 그는 법을 어겨 당국의 기소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 국제무역은 ‘위험한 거래’일수록 수익이 큰데요. 큰돈을 벌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이란ㆍ쿠바 등 당시 미국의 적성국가와 끊임없이 석유를 거래해 온 리치는 사기ㆍ조세포탈 등 60여 가지 혐의로 법 심판대에 올랐습니다. 그는 민사상 벌금 수 억 달러를 내고 스위스로 달아났습니다. 형사기소를 피하기 위해서였죠. 이후 그는 17년 간 국제수배자가 됐습니다.

결국 그는 2001년 1월 20일, 미국 정부의 사면대상자에 포함됐습니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이 퇴임 몇 시간을 앞두고 내린 결정이었죠. 

이는 큰 논란을 낳았습니다. 당시 리치의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 루이스 리비(후에 2001∼2005년 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인물) 조차 “그가 미국인질을 잡고 있던 적성국가와 무역거래를 한 것 잘못”이라고 비판했습니다.

2010년 출간된 마크리치 관련 서적 ‘석유왕, 그 비밀스런 삶’ 표지

논란은 스캔들로 번졌습니다. 잡지 못한 범법자를 풀어준 것도 모자라 리치 전 부인의 ‘사면로비’사실까지 공개돼서입니다. 리치 전 부인은 클린턴 대통령의 정치후원금 모금 책임자로 알려졌습니다.

게다가 리치의 정신적 고향이나 마찬가지였던 이스라엘도 리치의 사면을 촉구해 일은 더 복잡해졌습니다. 

뉴욕타임스(NYT)를 비롯한 여러 주류언론도 그의 사면에 얽힌 의혹을 끈질기게 추궁하며 사태는 사실상 그가 2013년 사망할 때까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명목상으로나마 죄인 신세를 벗은 뒤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12년 간 스위스에 살던 리치는 뇌졸중으로 79세의 생을 마쳤습니다. 사망 당시 그는 개인재산 1조1700억원(10억달러)을 쥐고 있었습니다.

사례 2. 잘 나가던 호주 ‘포장재 왕’의 가격담합, 죽기 하루 전 날 사면, 그러나…

호주 억만장자 고 리처드 프랫 또한 1934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대인입니다. 프랫 가족은 1938년 호주로 이민해 농산물 포장재 생산공장을 차렸는데요. 지금의 비시(Visy)그룹입니다. 

프랫은 1969년 비시 창업주 레온 프랫이 사망하자 회사를 물려받아 1970년대부터 기업 확장에 나섰습니다. 뉴질랜드ㆍ미국 등으로 거점을 넓혔습니다. 호주에만 있던 공장 2개는 55개로 늘었습니다. 사업 영역도 폐지 재활용 박스 등 관련 업종으로 넓혔습니다. 일찍부터 친환경제품 시장에 눈을 뜬 프랫은 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갖게 됐습니다.

그는 각종 기부 행보로 ‘좋은 사업가’ 이미지도 굳혔습니다. 1978년 세운 ‘프랫재단’은 매년 1000만 호주달러 이상을 난민ㆍ예술가단체 지원, 의학연구 등에 썼다. 재단의 기부규모는 지난해 현재 2억 호주달러(1720억원) 이상으로 집계됐습니다.

그는 정파를 가리지 않은 정치인 후원으로도 유명했습니다. 호주선거관리위원회(AEC)에 따르면 2000년 이후 프랫 측의 정치기부금 193만 호주달러 가운데 70%가 자유당, 30%가 노동당으로 배분됐습니다.

리처드 프랫 비시그룹 회장과 비시그룹 로고

잘 나가던 프랫과 그의 비시그룹은 그러나 철퇴를 맞습니다. 2005년 12월 호주 경쟁 및 소비자위원회(ACCC)가 비시의 포장재 가격담합 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발표한 것입니다. 2007년 10월엔 같은 혐의로 ACCC에 고소당했습니다. 당시 가격 담합 규모는 7억 호주달러(6040억원)로 호주 사상 최대 규모였습니다. 이에 대한 각종 폭로도 꼬리를 물었습니다. 

시장질서와 법을 어긴 프랫의 위기는 당시 최고액을 찍은 벌금(3600만호주달러) 납부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09년 그는 ACCC의 담합 조사 당시 거짓증언을 한 혐의로 현지 검찰에 의해 기소까지 당했습니다. 프랫은 총 4가지 죄목으로 징역 1∼4년까지 처해질 수 있었습니다. 수사망은 좁혀졌고 여론도 악화일로였습니다. 

공판 당시 법원으로 들어가고 있는 리처드 프랫 회장 [출처=디 에이지 닷컴]

당시 프랫은 척수암 수술을 했지만 암세포가 퍼져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결국 호주 연방법원은 프랫이 죽어가고 있단 병원 소견을 접수한 2009년 4월 27일, 검찰이 기소한 위증 사건을 기각했습니다. 

철창 신세를 겨우 벗어난 프랫은 하루를 더 살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호주 검찰은 당시 “이 사안은 (그의 생명과 관계없이) 계속 수사할 수도 있다. 죄는 남아있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사실상 서류상으로만 ‘범법자’ 신세를 면한 프랫의 사망 당시 개인재산은 1조7600억원(15억달러), 호주 4위 수준이었습니다.

사례 3. 한국의 ‘범죄기업인’ 44명, 그들의 죗값은

한국에도 광복절 등 특별한 시기마다 정부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대기업 총수 또는 경영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명목상 죗값조차 다 치르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된 이들이 상당한데요. 정의당 서기호 전 의원실이 낸 ’재벌범죄백서‘와 해당 법원 판결문 등 관련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54명이 해당됩니다. 선고 형량이 확인된 인물은 44명입니다.

그들의 범죄혐의는 다양합니다. 배임ㆍ횡령ㆍ불법정치자금ㆍ사기ㆍ리베이트ㆍ보복폭행ㆍ비자금 조성ㆍ탈세ㆍ분식회계ㆍ사기대출ㆍ외화 밀반출 등으로 확인됐습니다.

이 가운데 1가지 혐의만으로 법정에 선 이들은 평균 2년 6개월의 징역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물론 평균 4년 1개월 정도의 집행유예 형을 같이 선고받았죠. 그리고 평균 1년 반 가량 있다 사면받았습니다.

이번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는 이재현 CJ 회장

2가지 이상 혐의를 받아 죗값을 받은 이는 그래도 형량이 더 무거웠던 편입니다. 평균 4년 4개월 가량의 징역형을 받았습니다. 집행유예 기간은 4년 6개월로 징역 기간보다 더 길었습니다. 이들이 풀려나는데 걸린 시간은 1년 10개월 가량 됩니다.

44명 중 3명은 사면 조치를 두 차례나 받았습니다. 3명 모두 분식회계와 횡령 등 2개 이상 혐의로 법정에 섰죠. 이들이 평균적으로 받은 형량은 징역 5년 7개월에 집행유예 6년 8개월입니다. 그리고 선고 후 평균 1년 1개월여를 지내다 석방됐습니다.

그러나, 풀려났다 해서 그들이 저지른 행위의 ‘흔적’까지 사라졌을까요.
저희가 조사한 54명이 위에 언급한 혐의로 자신들 회사에 끼친 손실금액은 최소 7조 3348억원입니다. 웬만한 국내 대기업집단 1년 매출과 비슷하군요.

factis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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