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퇴시대, 힘이 될 3계명 .. 믿지마 버텨라 찾아라

김동호 2015. 2. 18.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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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마 자녀 투자가 성공 보장 못해버텨라현업서 최대한 오래 일하고찾아라 하던 일 관련 이모작 준비를

지난해 9월 명예퇴직을 하게 됐다. 남의 일이라 여겼는데 실적 부진으로 조직이 정비되는 과정에서 내가 할 일이 없어지면서다. 1960년에 태어난 나는 베이비부머 세대여서 경제성장의 과실을 많이 따먹었다. 군에 다녀와서는 87년 취업 때 학과 사무실에 수북하게 쌓인 입사원서를 골라 취직했다. 아파트도 사고 장녀는 유학도 보냈다. 그런데 막막하다. 둘째가 대학생이다. 당장 생활비가 월 200만원이 넘는데 소득이 없다. 이번 설에 가족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대책을 세워야겠다.

 세계에서 유례없는 초고속 고령화로 한국인은 퇴직 후 30년에 이르는 노후빈곤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 위기는 1차 베이비부머(55~63년생)가 회사를 떠나기 시작했던 2010년부터 한국 사회에 경고음을 울렸다. 정년을 맞아 퇴직했지만 과거 세대와 달리 건강하고 노후가 길어 단단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주의보였다. 이제 주의보는 끝나고 본격적인 퇴직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 1차 베이비부머 가운데 60년대생이 경기침체와 경영실적 악화의 직격탄을 맞고 조기퇴직의 집중포화를 맞으면서다.

 길어진 노후는 인생 자체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본지가 지난해 12월 만 40~59세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도 이런 변화가 감지된다. 이미 상당수 퇴직한 1차 베이비부머의 절반가량은 퇴직 준비를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노후에도 30년을 살게 되면서 정년까지 다녀도 체감정년이 짧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베이비부머 다섯 중 넷은 여전히 현업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직장에서 연장근무를 하고 있든, 번듯한 재취업을 하거나 파트타임으로 한 달에 100만원도 안 되는 돈을 벌든 상당수가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같이 퇴직을 해도 은퇴를 미룬 채 기회만 오면 재취업이나 창업을 통해 일터로 나가는 ‘반퇴(半退)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퇴직이 거의 완료된 55~59년생 가운데 상당수는 생활이 빠듯하거나 어렵다고 응답했다. 재취업이나 창업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마저 바늘구멍이기 때문이다. 과거 세대보다 돈을 많이 벌었는데도 이렇게 된 건 상상하지 못했던 고령화와 퇴직 쓰나미가 한꺼번에 몰려오고 있는 여파다. 한국인의 수명은 반세기도 안 되는 사이에 무려 20년 늘어났다. 이 여파로 2013년 생명표 기준으로 한국인의 기대여명은 평균 81.9세에 이른다. 남자는 78.5세, 여자는 85.1세다. 전광우 연세대 석좌교수는 “사고나 중대 질병을 겪지 않으면 90세까지 살 수 있다는 의미”라고 진단했다. 이러다 보니 장수는 ‘두 얼굴의 축복(mixed blessing)’이라고 불린다. 준비 안 된 노후는 오히려 불행해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의미다. 한국은 65세 이상 인구의 노인 빈곤율이 48%에 달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다.
 높은 빈곤율은 퇴직자의 발목을 계속 노동시장에 묶어놓고 있다. 30년을 버티기 위해 퇴직해도 은퇴하지 못하는 반퇴시대가 본격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5년 후 덮칠 ‘퇴직 쓰나미’에 비하면 예고편에 불과하다. 1차 베이비부머 세대(710만 명·14.3%)의 퇴직 쇼크가 가시기도 전에 2차 베이비붐 세대인 68~74년생(604만 명·12.1%) 퇴직이 바로 이어진다. 그 뒤엔 1차 베이비부머의 자녀인 에코 베이비붐 세대(79~85년생 540만 명·10.8%)가 기다리고 있다. 55~85년생 퇴직이 30년 동안 숨 돌릴 틈 없이 이어진다는 얘기다. 특히 인구 비중이 높은 ‘386세대’(60년대에 태어나 80년대 대학을 다녔고 30대였던 90년대 진보정권 탄생을 주도한 세대)의 선두주자인 60년생이 만 60세가 되는 2020년 전후엔 법정 정년으로 퇴직할 인구가 한 해 80만 명이 넘는다.

 반퇴시대에는 퇴직 전까지 노후의 기반을 만들지 못하면 고단한 삶을 피하기 어렵다. 베이비부머는 부모를 어떤 형태로든 모셨지만 자식에게는 부양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노후를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저성장·저금리 시대에는 대비가 어렵다.

전문가들은 우선 현업에서 오래 버티라고 조언한다. 자신이 하던 일과 관련해 자격증을 따거나 취미 삼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이모작 준비도 고려해볼 만하다. 자식에 대한 과잉투자도 금물이다. 학력보다 실력이 중시되는 사회로 가고 있어 교육투자가 반드시 성공을 보장하는 시대가 지났기 때문이다. 부동산에 대한 집착도 금물이다. 오히려 노후에는 서울처럼 집값이 비싼 대도시를 벗어나면 길이 보일 수 있다. 최재산 신한은행 은퇴설계팀장은 “요즘엔 금융회사마다 은퇴설계를 해준다”며 “노후 설계는 빠를수록 좋다”고 말했다. 과거 10년 안팎에 불과했던 노후 설계도 이젠 30년 이상 내다봐야 하기 때문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좋다.

 반퇴시대에는 퇴직 후 100만원만 벌어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고용시장 유연화도 불가피하다. 정상적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이라면 회사에 오래 다닐 수 있게 하면서 회사의 인건비 부담도 덜어주면 상생이 된다. 정년 60세가 내년부터 300인 이상 상시종사자 사업장부터 의무화하지만 현재와 같은 임금체계가 바뀌지 않는다면 조기퇴직만 촉발시킬 뿐이다. 임금피크제와 시간선택제 도입이 필요한 이유다. 유럽 선진국이 고용률을 크게 높이고 삶의 질을 높인 것도 이런 노동시장 개혁이 뒷받침된 데 힘입은 바가 크다. 고용시장 유연화의 부담을 노동자에게만 요구해서도 안 된다. 시간제·기간제·파견근로자를 비롯해 어떤 형태의 비정규직이라도 4대 보험료 혜택을 볼 수 있게 사회적 인프라를 함께 갖춰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다.

김동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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