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우스 푸어의 엄살? 그냥 집 팔고 나오면 안 되냐고?
[당인리 칼럼] 다시 오를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 부동산엔 왜 손절매가 없을까
[미디어오늘 한형식·당인리정책발전소 부소장] 하우스 푸어 문제가 다시 관심을 받고 있다. 보수 언론과 경제지들이 하우스 푸어 문제가 심각하다며 대응책을 촉구하자 여야 대선 주자들이 발빠르게 대책을 내놓았다. 초안 수준이지만 나올 수 있는 대책은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 하지만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 거래 활성화로 하우스 푸어들이 집을 팔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DTI규제 완화는 물론 세제지원까지 요구한다.
이런 논의의 문제는 우선 하우스 푸어들이 모두 같은 처지가 아님을 간과한다, 내 집이 있지만 투자목적으로 다른 주택을 산 사람들과 실거주 목적으로 한 채의 집만을 산 사람들은 다르다. 그리고 그 대책이 인위적인 거래 활성화여서는 곤란하다. 경제 전반이 되살아나면서 부동산 시장도 살아난다면 별도의 대책은 필요 없을 것이다. 반대로 경제는 여전히 어려운데 부동산 경기만 진작시켜서는 효과도 없고 거품을 유지시키는 부작용만 가져올 것이다. 지금은 하우스 푸어들이 집을 팔아 자산을 합리적으로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왜 하우스 푸어들은 집을 팔아 부채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는 것일까? 이들은 팔고 싶지만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주택 거래가 대폭 줄긴 했지만 거래가 전혀 없지는 않다. 비정상적인 폭등기였던 2006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 이하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사고 파는 사람들이 있다. 매수자들이 움직일 만큼 충분히 싼값에 손해를 보면서 팔려하지 않기 때문에 팔리지 않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이 정도 상황이라면 손절매가 속출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식과 주택 시장은 다르다. 주택은 자본이득을 얻기 위한 수단인 동시에 주거라는 기본적 생활의 수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하우스 푸어들이 손절매를 해서 자산구조조정을 하게 하려면 대신 안정적인 주거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헐값에 집을 팔고 대출을 다 갚고 나면 살 곳이 없어져서는 팔래야 팔수가 없다. 빚을 갚고 남은 돈으로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주거 형태가 있어야 한다.
또 다른 이유이자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직도 집값이 다시 오를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기대는 곧 불안이 된다. 내가 팔고 난 다음에 집값이 오르면 다시는 집을 살 수 없지 않을까? 남들은 다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데 나만 그 대열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하우스 푸어를 사로잡고 있다. 아니 온 국민을 지배하고 있다.
이런 기대 혹은 불안은 주기적인 부동산값 폭등이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국민에게 주입해 온 것이라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불안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집을 이윤 추구의 수단이 아니라 삶의 수단으로 보는 사례가 사회 전체에서 상당히 늘어나야 한다. 내 집을 소유하지 않더라도 안정적으로 쾌적한 생활을 누릴 주거공간이 전체 주택 중에 의미 있는 비율이 될 때 그래서 부동산으로 돈을 불린 사람들 보다 만족스러운 주거 환경에서 삶의 만족도를 높인 사람들이 내 주변에 더 많아질 때만 하우스 푸어들의 불안은 극복될 수 있다.
전용면적 75.9㎥(23평)이 10억원에 육박하는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이들은 왜 더 넓고 싼 곳으로 옮겨가지 않는 것일까.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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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 푸어들이 집을 팔지 못하는 두 이유 모두에 대한 해결책은 공공임대 주택의 확충이다. 내 집이 아니어도 장기간 큰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집이 있고 그 집이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런 집에 사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면 하우스 푸어들이 빚에서 벗어날 탈출구가 열릴 것이다. 또 공공이 보유하는 주택이 많아지면 정부의 시장개입이 가능해져 부동산가격 급등락도 막을 수 있다는 것은 주거 복지 수준이 높은 여러 나라들의 교훈이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와 그 기대에서 오는 불안도 줄어들 것이다.
결국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주택의 공공성을 높이는 것만이 장기적으로 실효성 있는 하우스 푸어 대책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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