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울시 뉴타운 본격 정리..강북 재개발 '혼돈'속으로
"이 상태로 재개발을 계속 진행할 바에야 구역해제를 하는 편이 차라리 낫다니까요. 조합장 해임이 힘들다면, 구역 해제를 추진해야지 방법이 없잖아요. 관리처분 총회부터 막고 시청에 도움을 구할 생각입니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홍제2구역 주민 김모씨)
"23구역은 취소됐지만, 우리 구역은 사업시행인가가 났기 때문에 해제가 안 된다니까요. 사업이 무산되기라도 하면, 찬성 반대구분 없이 설계비와 용역비로 사용한 60억원 되는 사업비를 조합원들이 고스란히 물어내야 해요. 이게 1인당 1000만원이 넘어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홍은제13구역 조합 관계자)
서울시가 우선 해제구역을 발표하면서 재개발·재건축을 추진하던 서울시내 전역이 혼란에 휩싸였다. 현행 재개발·재건축 조합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들이 기존 조합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구역해제' 추진을 들고 나오며 재개발·재건축 구역해제 신청이 확산될 조짐이다. 기존 조합들도 자칫 구역해제 논란에 휩싸일까봐 조합원 입단속에 나선 상황이다. 재개발·재건축 시작 전에 설계용역비로 수십억원을 썼던 터라 구역해제가 될 경우 이 돈을 조합원들이 갚아야할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흔들리는 강북 뉴타운, "안되면 구역 해제"
서울시가 뉴타운 재개발 재건축 사업 정리 우선 해제구역 18곳을 발표한 다음 날인 15일. 18곳 가운데 3곳이 해제구역으로 지정된 서대문구 홍제동과 홍은동 일대는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반대하는 벽보와 시공사 선정, 현장설명회 장소를 알리는 벽보가 여기저기 혼재돼 있다.
구역 해제를 앞둔 유진상가 맞은편 홍제4구역 일대는 조용한 반면 인근 홍제2구역은 22일로 예정된 관리처분총회를 막기 위한 비대위의 움직임이 분주하다. 홍제4구역은 당초 전체 30~40%에 달하는 상가 건물 소유자들의 반대가 심하고 추가분담금에 대한 우려가 커서 사업이 지지부진했던 곳이다.
홍제2구역 비대위의 김모씨는 "조합장 해임을 위해 개최한 12일 임시총회에서 정족수의 6%인 28명이 부족해 무산됐다"면서 "구역해제를 하든 시민감사를 추진하든 사업 추진을 반드시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관리처분은 기존의 건축물을 철거하고 새 건물을 착공하기 전 바로 마지막 단계. 김씨는 조합원장 해임을 위해 현재까지 전체 조합원 448명의 약 45%에 해당하는 197명의 서면결의서를 받았다고 했다. 조합장을 해임하려면 225명의 서면결의서가 필요하다.
홍은동 일대도 마찬가지다. 우선 해제구역으로 지정된 홍은23구역은 조용한 반면 맞은편 13구역 골목에는 붉은 글씨, 검은색 글씨의 찢어진 벽보가 널려 있다. 홍은제13구역 비상대책위원장 송모씨는 사업에 반대하는 조합원 서명을 받은 A4서류를 흔들어 보이면서 "여기 서명한 사람들이 다 구역 해제를 원하고 있다"면서 "동부건설에 이어 현대건설도 사업성이 없다고 한 사업을 왜 계속 추진하려는지 모르겠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 분위기 휩쓸린 구역 지정 '후폭풍'
홍은동과 홍제동 일대는 2008년 가재울 뉴타운 등의 영향으로 재건축·재개발 구역 지정이 활발했다. 우선 해제구역 바로 맞은편 일대는 철거작업을 마친 후 착공에 앞서 터파기 작업이 한창이다.
홍은동 신라공인의 한 관계자는 "(재개발이 필요하지 않은데) 주변이 모두 재개발 재건축을 하니 분위기에 휩쓸려서 구역지정을 추진한 곳이 몇 군데 된다"면서 "막상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대하는 사람이 늘어나자 추진위원회도 없어지고, 구역도 해제되는 곳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이 지역 재개발 지분 가격은 하락세다. 5월 현재 이 일대 지분 값은 3.3㎡당 1000만~1100만원 수준이다. 지난 2008년 서대문구 가재울 뉴타운이 이주를 시작할 시점에는 남가좌·북가좌 일대는 물론, 홍은동, 홍제동의 지분 값이 3.3㎡당 최고 2000만~2100만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풍림아이원 아파트 바로 아래 편 공인중개사 사무실 관계자는 "대출을 받아 막판에 지분을 매입했던 사람이라면 속이 좀 탈것"이라면서도 "2~3년 전부터 점진적으로 가격이 내려갔기 때문에 (이번 발표로)지분 값이 폭락하는 그런 일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 구역별 100억~200억원 대여금 "누가 내나 논란"
문제는 구역 해제가 확산되는 데 따른 파생되는 문제들이다. 현재 시공사에서 추정하는 서울·경기의 구역별 평균 대여금, 즉 사업비는 150억~200억원 가량이다. 실태조사 대상인 265개 구역을 제외하고, 시공사가 선정되거나 가계약을 맺은 구역이 해제되면 시공사가 조합에 빌려준 최소 4조원의 자금을 사실상 받기 어렵게 된다.
홍은제13구역 조합 사무실 관계자는 "조합원 분양신청을 받은 게 77%가 넘는 상황인데, 구역을 해제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사업이 무산되면 60억원이 넘는 사업비를 조합원들이 내야 하는데 이 과정 또한 만만찮다"고 말했다.
홍제2구역 조합원인 강모씨는 "분양신청을 했더니 같은 면적으로 옮기는 데 드는 추가분담금이 2억원으로 나왔다"면서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얼마 안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60~70대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그 돈은 남은 평생을 책임질 돈"이라고 말했다.
홍은동 13구역 조합원 박모씨(68)는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단독주택에 4가구에 임대를 주고 있다"면서 "이주비를 받는다고 해도, 보증금 빼주고 이것저것 계산해보면 공사기간 동안 나와 있을 전셋집 찾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1300개 뉴타운·재개발 구역 중 사업시행인가를 받지 않은 사업장은 610구역. 추진위를 구성하지 못한 구역은 317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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