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다주택자 요즘 속내 들여다봤더니..
[아시아경제 조철현 기자] [아시아경제 조철현 기자] "팔까? 아니면 좀 더 기다려볼까?"
서울 강남권(강남·서초·송파구)에 살면서 시세 10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를 두채 이상 가진 다주택자들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주택 매매시장이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 있지만 강남 집 부자들은 대체로 무덤덤한 모습이다. 더욱이 최근 금리가 오르면서 대출 이자 부담을 느끼는 다주택자의 경우 급매물을 쏟아낼 법도 한데 극히 일부를 빼고는 손절매 현상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속 마음을 들여다보면 요즘 시장에 대한 반응은 크게 몇 가지로 나눠지는 것 같다. "좀 더 시장 상황을 지켜보자"는 '관망파'가 대부분이지만, "버티는 게 상책"이라는 '배짱파'도 적지 않다. 한편에선 "이제 팔아야 할 때 아닌가"하며 불안해 하는 '초조파'도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강남지역 부동산 중개업자와 시중은행 프라이빗뱅킹(PB) 관계자들의 전언을 통해 강남 집부자들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 "일단 기다려보자"…관망세 짙어"별 뾰족한 대책이 있겠어요?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요…". 서울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공인 이병호 사장은 "잇단 부동산시장 활성화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 약세가 이어지고 있다"며 "그런데도 이곳 다주택자 대부분은 앞으로는 집값이 어떻게 움직일지 몰라 관망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들어 강남권 일부 지역 아파트 매매시장에서는 급매물을 중심으로 매수세가 붙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인 집값 반등을 이끌기에는 턱없이 거래가 뜸한 실정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강남3구 아파트 거래량(계약일 기준)은 지난 6월 654건으로 지난 1월(1489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달 들어서도 거래량은 295건에 머물고 있다. 아파트값도 하락 장세가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지난 주 강남·서초구는 각각 0.01%, 송파구는 0.03% 내렸다.
그런데도 당장 집 한 채를 팔려고 하는 강남 다주택자들은 많지 않다는 게 현지 부동산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가끔 나오는 매물도 '이 가격에 사려면 사고 아니면 말라'는 식의 배짱 매물이라고 한다. 대치동 우방공인 신용수 대표는 "시장 장기 침체와 금리 인상 등 매물이 늘어날 상황인 데도 실제 매물은 많지 않다"며 "이는 '당분간 두고보자'는 관망파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예 올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까지 매도 여부 결정을 미루겠다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한상언 신한은행 PB고객부 팀장은 "강남권 다주택 보유자 가운데 '내년 총선 때까지는 아파트를 팔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꽤 된다"고 전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전후해 각종 지역 개발 계획으로 집값이 상승세를 탈 것이라는 기대감에 보유 쪽으로 가닥을 잡은 고객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잠실동 송파공인 관계자도 "늦어도 내년 상반기부터는 집값이 바닥을 칠 것이기 때문에 아파트를 서둘러 팔거나 투매하지는 않겠다는 분위기가 강하다"며 "따라서 지금과 같은 관망세는 꽤 오래 지속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관망파 가운데는 가을 이사철 이후 시장 상황 변화에 따라 매도 시기를 결정하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안명숙 우리은행 PB사업단 부동산팀장은 "지금은 관망세가 짙지만, 가을 이사철 이후에 매도 여부를 결정하려는 고객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가을 이사철 이후 집값이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약세 장세가 지속될 경우 보유 주택 한 채를 팔고, 반대로 가격이 상승할 조짐이 나타나면 계속 보유하는 쪽을 택하겠다는 전략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집값 오를 건데, 왜 팔아?"…배짱파도 적지 않아
집값이 아무리 떨어져도 갖고 있는 집을 처분할 마음이 전혀 없다고 말하는 이른바 '배짱' 다주택자들도 많다는 게 은행 PB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강남권 집 소유자 중 상당수가 보유세와 양도세를 낼 때 내더라도 그냥 집을 안고 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증권 PB팀 관계자는 "향후 집값 오름 폭이 지금 당장 팔지 않더라도 나중에 되팔 때 낼 양도세 증가분을 뛰어 넘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분위기가 강하고, 증여라는 대안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집값이 오르면 양도세도 늘어나겠지만 시세 차익으로 이를 만회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이러다보니 강남 다주택 보유자들은 집값의 미세한 움직임에 무신경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개포동 G공인 관계자는 "다주택자 중 상당수는 자산 소유욕이 강하고 아직까지 '부동산 불패 신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굳이 조급하게 팔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백만 원이 넘는 재산세와 종부세 부담은 충분히 감당할 수 있고, 전세금 인상을 통해 세입자에게 전가할 수도 있다고 판단하는 집 부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또 배짱파 중에서는 여윳돈으로 아파트를 매입한 경우가 많아 대출 이자 부담도 크게 못느낀다고 한다. 박상준 우리은행 삼성역지점장은 "고액 자산가의 경우 10억원 넘는 아파트를 사더라도 대출은 2억원 정도 밖에 끼지 않기 때문에 대출 규제와 금리 상승 등에 특별히 부담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양도세 부담도 부자들이 버티기 전략을 구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락동 윤정희 공인중개사는 "양도세 부담 때문에 팔고 싶어도 못파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전했다. 다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중과가 내년 말까지 유예된 데다 나아가 정부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아예 폐지할 방침이지만, 그래도 시세 차익에서 최고 35%까지 부과되는 양도세는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팔아야 하나?"…초조파 늘어
다른 한편에선 '초조파'도 늘고 있다. "각종 규제 완화 대책에도 집값이 오르지 않으니 이제 진짜 집 가지고 돈 버는 시대는 지났다"는 인식과 함께 "지금이라도 서둘러 집을 팔아야 하나"고 고민하는 부류가 많아진 것이다. 잠원동 H공인 관계자는 "잇단 규제 완화에도 집값이 눈에 띌 정도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보니 불안해 하는 손님도 늘고 있다"며 "'매수자가 나타나면 어떻게든 팔아달라'고 부탁하지만 사려는 사람이 없어 민망한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반포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초조파 가운데 상당수는 2006년과 2007년 집값이 상투일 때 강남권 집을 산 경우"라며 "추가 상승에 따른 투자 매력을 경험하지 못하다보니 현재의 집값 약세에 불안감을 떨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파트 한 채를 처분하고 상가와 작은 빌딩 등 수익형 부동산상품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큰 손들도 있다. 이남수 신한은행 부동산팀장은 "주택에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해 집 한 두채를 처분하고 '돈되는' 상가와 소형 오피스 빌딩을 알라봐 달라고 주문하는 고객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일부 다주택자 가운데는 상가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당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선종필 상가뉴스레이다 대표는 "강남권 상가빌딩이라고 하더라도 수익률이 연 5~6%를 넘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값만 비싸고 실속이 없는 상가를 잡았다가 후회하는 투자자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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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현 기자 choch@<ⓒ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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