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진의 무맥] (38) 무예가 박무웅씨의 꿈, 무술사관학교
'國術'전통계승… 진취·긍정적인 한국인 기상 드높인다
무술은 본능이다. 만약 지금 예부터 전승되는 무술이 없다고 하더라고 무술은 누군가에 의해서 새롭게 복원되고 정립될 것임에 틀림없다. 단지 무예의 사제지간이 있고, 무술에 관한 책이 있다는 것은 좀 더 쉽게, 체계적으로 검증된 기술을 습득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우리의 무술은 일제 식민시대로 인한 단절과 왜곡의 여파로 지리멸렬하다시피 했다가 1960년대 민족 정체성의 부흥과 함께 몇몇 선구자에 의해 겨우 복원, 개발되거나 창시되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장봉으로 상대의 약점을 강타하고 있다. 무인의 눈빛이 날카롭다. |
그래서 어느 무술에 종사하건 어려운 생활을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무술인의 삶이었다. 합기술, 혹은 합기도 계통이 창시무술의 바탕이 된 것은 많지만 그 가운데 '국술(國術)'도 빼놓을 수 없다. 국술은 1960년대 한국무술을 이끌어왔으며 태권도나 합기도에 못지않게 일반에 알려진 무술이었다. 1970년대까지 한국무술을 해외에 알릴 때는 언제나 국술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무술은 우리의 고도성장과 관계없는 사각지대에 있다. 무술은 또 시대적 요구와도 먼 거리에 있다. 그러나 무술도 문화인 한, 자신이 평생 바친 무술을 후세에 전하고 싶고, 동시에 최고의 무술로 키우고 싶은 게 무예인들의 한결같은 소망이다.
무예가 박무웅(朴武雄·68)은 70을 바라보는 나이임에도 '무술사관학교'의 꿈에 부풀어 있다. 그의 이름에 호반 무(武)자, 수컷 웅(雄)자가 들어 있는 값을 하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무예 진흥에 대한 그의 열성은 대단하다.
그가 '무술사관학교'를 생각하고 특허청에 등록출원을 한 것은 2004년(8월17일)이다. 무술의 '민족사관학교'에 대한 꿈은 2006년에 등록신고(1월3일)가 완료되면서 무르익는 것 같았다. 그는 무예를 부흥시키기 위해서는 체계화와 대량화가 필요한데 이는 개별 도장에서의 교육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판단, 대학을 생각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유도대학, 태권도대학 같은 것을 무예의 전 분야에서 실현하는 종합무술대학교이다. 당시 문교부에 8개 학과를 신청했다. 그러나 그것이 재정난으로 무산되면서 꿈은 좌절되었다.
◇박무웅 선생이 국술의 고수들이 시연하는 운학형에 들어가기 전에 기본자세를 취하고 있다. |
박무웅은 어릴 적 울산에서 자랐다. 중학교 2학년 때 '국술원 울산체육관 분관'에서 국술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 후 1967년 군에서 제대한 뒤 서울 답십리 국술원 도장을 찾아 훈련을 재개하면서 국술과의 인연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국술을 창시한 서인혁씨가 대구에서 부산 현대극장 옆으로 본부를 옮긴 뒤, 다시 국술의 세계화를 이룬다는 명목으로 1974년 미국으로 갔다. 이에 동생인 서인선씨가 그 후 국술원(총관장)을 맡게 되었다.
박무웅씨는 서울에서 유단회 회장으로 국술원의 대외업무(유단회 회장)를 맡았다. 당시 대전 이북에 있던 유일한 국술원 도장이었던 서울도장은 서울에서 벌어지는 국제행사는 거의 주도하는 처지가 되었다.
국술은 합기도를 바탕으로 여러 전통무술을 융합한 퓨전 창시무술이다. 그래서 합기도와는 친교가 남달랐다. 그 때문에 우리나라 무술의 문교부 법인 1호인 '대한기도회'에 통합세력으로 참가하였고, 서인선씨는 대한기도회의 운영에 깊이 관계한다. 서인선씨는 그 뒤 대한기도회와 결별한 뒤 따로 '한민족합기도협회'를 설립하면서 국술원과 갈라진다. 당시 국술원 출신으로 다른 단체나 법인을 설립한 사람은 무려 십수명에 달했다.
무술계의 분가 혹은 분파는 실질적으로 살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보는 편이 옳다. 나누어지지 않으면 도장 경영의 타산을 맞출 수가 없었던 까닭이다. 또 무술의 이름도 새 이름으로 하지 않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없었다.
'대한기도회'에 이어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통합의 깃발을 들어 잠시 합기도 통합이 성공한 적(대한민국합기도협회, 1979년)도 있고, 그 후 전경환씨가 무술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새마을합기도'란 이름으로 합기도계를 통합하려고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 합기도는 태권도와 같은 대동을 이루지 못하고 각자의 살림살이로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창시무술은 합기도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통합을 이루지 못한 대신 여러 분가를 한 셈이다.
이런 와중에 국술은 1970년대까지 우리나라 무술 시범의 단골메뉴가 되었다. 이때 박무웅씨는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된다. 1975년 5월에 있었던 '세계국술시범 및 선수권대회'(5월1∼2일 문화체육관)는 세계 각지에서 무려 140여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루었다. 이 중 70여명이 외국인이었을 정도로 세계화를 이루었다. 대구 K2공군부대, 군산 팬텀기 부대, 부산 하야리아부대(보급창), 동두천 2사단 장병들에게 국술의 인기가 높았던 때문이다.
국술은 1975년 '호국무예'로 뽑혀 당시 부산 구덕체육관에서 벌어진 시범은 국립영화제작소에 의해 문화영화로 제작되었으며, 이듬해 4개 국어로 번역되어 해외에 소개되는 등 한국을 대표하는 무예로서 각광을 받았다. 이 문화영화는 제16회 파나마영화제 최우수상, 제1회 아말피영화제 민족문화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발차기 시범을 보이는 박무웅 선생. 상대방을 제압하는 기운이 묻어난다. |
1994년에는 '호국무예의 맥을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다시 9분이 추가 된 29분 분량으로 제작되어 방영되기도 했다. 당시 국술은 합기도, 태권도와 함께 방영되었는데 가장 오랜 시간 방영되었을 정도이다.
박무웅씨는 1980년 '대한국술원' 연수원장을 맡기도 했다. 1990년에는 국술세계대회 한국대표로 캐나다와 미국을 들렀다. 2000년에 접어들어 대한봉술협회를 설립하면서 각종 무술협회를 조직하고, 독자적인 길을 가기 시작했다. 이는 무술사관학교 설립의 기초를 닦기 위한 것이었다. 2002년에는 (사)한국호국무예국술협회를 설립한다. 그가 무술사관학교의 설립을 생각한 것도 실은 당시 여러 국제행사를 치르면서 얻은 경험의 소산이었다.
그간 그는 경찰서·대학교·관공서 등 무술을 필요로 하는 곳에 외래강사, 실기교수로 나가면서 수십년간 무술 보급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가 흰머리를 휘날리면서도 기회가 닿으면 어느 곳이든 가서 무술시험을 보이는 까닭은 무술이야말로 한국인의 기질을 진취적이고 긍정적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그가 현재 가지고 있는 교육프로그램은 국술과정을 비롯하여 검술과정, 경호과정, 봉술과정, 무기술과정, 호신물과정, 합기술과정, 태권술과정 등 모두 8개 과정이다. 각 과정은 초급·중급·고급·대급으로 나뉘고, 각 수련과정은 다시 여러 종류, 여러 단계로 훈련이 실시된다.
예컨대 호신술초급의 경우 기본술, 손목술, 의복술, 악수술, 맥치기술, 맥차기술 등으로 나뉘고 이들은 다시 여러 기술로 세분화된다. 그의 프로그램은 무술의 연결동작을 세분화하여 여러 단계로 습득할 수 있게 하였다는 데 특징이 있다. 마치 슬로비디오를 보듯이 세분화하였다. 그래서 무술에 재능이 없는 사람도 소화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는 "무술사관학교를 설립해야만 세상에 태어나서 할 일을 다하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무술사관학교의 교가도 직접 만들었다. "호국정신 깃발을 높이 들어라/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자/ 호국무예 이어갈 대한의 자손들아/ 민족의 주체성을 잊지 말아라…."
◇박정진 문화평론가 |
그는 '무술사관학교'(2권)라는 책자를 만들기도 했다. 현재 대한기도회(합기도협회) 공인 9단 지도관장, 대한봉술협회 공인 9단 연수원장, 무기술 아카데미 원장이기도 하다. 무술의 달인으로 통하는 박무웅씨. 백발이 된 신선 같은 외모로 한복을 입고 시연을 하는 그를 보면 한 마리 학이 춤을 추는 것 같다. 좌중은 숙연해진다.
그는 최근 무술사관학교의 꿈을 현실로 잡을 뻔했다. 2008년 충주시 이루면 만정리 일대 6만2000여평 부지에 '무술사관학교'를 건립하기 위해 현지 (주)국제유스호스텔 측과 당시 그가 대표로 있던 (사)국술협회 사이에 약정서(2008년 7월10일)를 교환하기도 했다.
당시 임시 교육장과 기숙사 건립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지금도 그는 당시 홍보관에 마련되었던 도장과 무술사관학교 로고를 생각하면 감회에 젖곤 한다. 잘 진행되다가 문교부 당국과 대학 설립자 간에 상당한 견해 차이가 있었고, 교수요원의 확보도 여의치 않아 결국 문을 열어보지도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다.
한국과 같이 무예를 천시하는 나라에서, 진로가 막연한 나라에서 무예를 교과목으로 해서 대학 신입생을 뽑는 것도 쉽지 않다. 그래서 장학금 등 최대한 좋은 조건으로 신입생을 모집할 예정이었다. 그 꿈은 잠시 접지 않으면 안 되었고, 지금까지 무술사관학교는 꿈에 머물고 있다.
45년 무술 경력의 그는 합기도에서 새롭게 태어난 국술을 접한 뒤, 오랜 수련 끝에 이제 무술사관학교의 여러 무술을 개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무술의 형이 없던 것이 형을 얻게 되고, 무기술을 더하게 되고, 다시 세분화된 기술로 정규 교육과정에서 가르칠 수 있도록 커리큘럼화하였다.
"제가 구태여 무술학교를 사관학교로 명명한 것은 사관학교와 같이 철저하게 군인정신으로 무장된 무예인을 기르기 위한 것입니다. 현대에 들어 무예는 현실적으로 요구와 필요가 많이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도리어 전문요원들은 전문교육기관에서 양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유도와 태권도인만 양성할 것이 아니라 다른 무술도 함께 육성함으로써 민족문화의 보존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선생님은 여러 무술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는 과정에서 여러 무술을 관통하는 무예의 정신 같은 것이 있었습니까.
▲그렇습니다. 모든 무술은 기술을 습득하는 과정이 있긴 하지만 결국 정신입니다. 정신을 통일해야 제대로 술기를 쓸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를 제어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상대를 제압하기 이전에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모든 수련이 쓸모가 없어집니다. 그런 점에서 무술은 단순히 몸을 움직여서 상대를 제압하는 기술이 아니라 우선 수신(修身)하는 기술입니다.
-많은 무술과 여러 동작이 있는데 결국 자신이 즐겨 쓰는 술기를 사용하게 되는 것 아닙니까.
▲수련을 할 때는 여러 무술과 기술을 배웁니다만 결국 그 가운데 자신에게 맞는 무술과 기술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마다 체형과 체질이 다르고, 무술의 목적 또한 다릅니다. 그래서 결국 적재적소에 쓰지 못하면 여러 무술을 습득하였다고 하더라도 효과적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서는 남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사용해야 합니다. 자신의 신체적 조건이나 상황에 따른 무기를 사용하여야 하며, 특히 필요할 때는 생활 속의 어떤 도구도 무기로의 변형이 가능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임기응변 같은 것도 필요합니다. 결국, 무예도 생활과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인이 문을 숭상하고 무를 멸시하는 전통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무를 멸시하는 전통은 문화의 운영에서 은연 중에 실질과 실천을 소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일본에서는 무인을 크게 존경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본이 문화적으로 뒤떨어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도리어 현실에서는 예의 바르고, 절도가 있는 국민으로 세계적으로 칭송받고 있지 않습니까. 어릴 때부터 어떤 종류의 무술이라도 수련한 경험이 있는 학생이 장래 공부도 잘하고, 사회적으로 교우관계도 좋고, 진취적인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송원영 기자
바로잡습니다.
지난 4월7일 게재된 '무맥 (27)한국 현대무예의 지형도1'에서 일본 체술원 출신 반기하 선생을 소개하면서 "집안 내력이 친일 귀족이었다는 점에서 자숙하는 의미에서 현실 참여에 회의적이었고"라고 표현한 구절은 본인에게 직접 들은 사실이 아니고, 반 선생은 고인이 되었기에 본의 아니게 누가 될 수 있음을 사과드립니다. 이 구절은 특히 해법 김광석 선생과 함께 찍은 사진을 게재하면서 다루었기에, 해법 선생의 전언으로 오해될 수 있기에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밝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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