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들 빚내 집값 받쳐라?..MB정부 '반서민' 본색
[한겨레] 8·29대책 뜯어보니
수도권 유주택자 집 대출받아 사주라는 셈
'친서민' 보금자리 주택은 되레 물량 줄여
"집값 더 떨어질땐 가계파산 위험성 높아"
정부가 29일 내놓은 부동산대책은 예상을 뛰어넘은 '화끈한' 수준이다. 총부채상환비율(DTI) 같은 금융 규제에서부터 세금, 서민용 주택 공급 정책까지 건설업계와 집 부자 요구를 다 들어줬다. 특히 디티아이를 강남 3구를 제외하고 폐지한 것은 서민들에게 '무리하게라도 빚을 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집값 거품을 유지하려 한다는 비판을 피해가기 어려운 대목이다.
■ 풀 건 다 풀었다올해 들어 부동산시장의 거래 위축이 이어지자 정부는 지난 4월23일 디티아이를 일부 완화하는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큰 효과가 없자 지난 6월부터 추가 대책을 검토해 왔다. 애초 7월22일 내놓기로 했던 대책이 한달 늦춰져 '8·29 대책'이 됐지만, 건설업계와 다주택자들은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예외 대상을 확대하는 수준일 것으로 예상됐던 디티아이 완화안은 사실상 전면 폐지라는 형태로 바뀌었다. 정부는 '내년 3월까지 한시조처'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부동산시장 침체가 계속되거나 '기대만큼' 살아나지 않을 경우에는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친서민 정책의 상징이던 보금자리주택도 건설업계의 요구를 수용해 사전예약 물량을 축소하고 민영주택 공급비율을 늘려주었다. 이런 조처들은 애초 보금자리 목표였던 '서민주거 안정'과는 거꾸로 가는 것이다. 다주택자 양도세 감면도 '부자감세'라는 비판에 눈감은 채 2년 연장하기로 했다.
임종룡 기획재정부 1차관은 "지난 7월 대책 발표를 미룬 뒤 실태조사를 해보니, 거래 위축으로 인한 고통이 생각했던 수준보다 훨씬 컸다"며 파격적인 대책의 이유를 설명했다.
■ 디티아이 없애주는 게 친서민?정부는 '친서민'과 배치된다는 비판을 의식한 듯 "이번 조처는 서민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신규 아파트 입주나 이사를 해야 하는 국민들뿐 아니라 건설근로자, 인테리어업자, 부동산중개업 등 서민경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디티아이를 폐지하는 것은 더 큰 '고통'을 불러올 수 있다는 점이다.
디티아이는 원래 부동산 정책이 아니라 은행과 가계의 건전성을 유지하려는 금융정책이다. 특히 저소득층이 상환능력을 뛰어넘는 과도한 대출을 받았다가 결국 빚을 갚지 못해 집도 잃고 파산하는 사태를 막으려는 조처다. 금융위원회는 이날 자료에서 "디티아이가 폐지되면 연소득 3000만원인 가구가 5억짜리 아파트를 살 때 대출한도가 1억7000만원에서 2억5000만원으로 크게 늘어나지만, 연소득 1억원 이상인 가구는 변화가 없다"며 저소득층이 받는 '수혜'를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위 예시처럼 연소득 3000만원(월급 250만원)인 가구가 2억5000만원을 빌릴 경우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연 5%, 20년 원리금 균등분할상환 조건)은 165만원에 이른다. 집값이 올라 집을 팔지 않는 한 이 가계가 자력으로 대출을 갚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더구나 지금은 집값의 추가 하락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이 예상하고 있고, 금리 인상까지 예고된 상황이다. 이번 대책으로 일부 가계가 무리한 대출로 주택 구입에 나서면서, 시장이 '반짝 활황'을 보일 수는 있지만, 다시 집값이 꺾일 경우 가계부채 부실만 더 늘어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에서 "부동산 거래는 구매자들 소득수준에 맞게 집값이 하락해 실수요자들이 거래에 뛰어들 때 정상화하는 것이지, 소득보다 더 많은 빚을 내서 집을 사라는 것은 정부가 할 정책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안선희 기자 shan@hani.co.k
세상을 보는 정직한 눈 <한겨레> [ 한겨레신문 구독| 한겨레21 구독]
공식 SNS 계정: 트위터 www.twitter.com/hanitweet/ 미투데이 http://me2day.net/hankyoreh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