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차와 맞다이 가능한 국산차" 기아 로고가 유일한 단점
2020년에는 페이스리프트로 내실을 다진 '스팅어 마이스터'가 출시됐습니다. 서브네임 '마이스터'는 독일어로 한 분야의 장인, 전문가를 뜻하는 말로 완숙해진 실력으로 시장에서 스팅어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는 의미로 붙여졌어요. 기존의 디자인이 워낙에 좋은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겠죠. 큰 폭의 변화는 없었지만 램프 그래픽과 휠 디자인 등 내외관의 소소한 디테일만 변경해 세련미를 더했습니다. 찔릴 듯 날카로운 디자인의 알루미늄 휠이 시선을 사로잡았고 유려한 패스트백 바디라인은 여전히 근사했어요.
특히 변화는 뒷모습에서 두드러졌는데요. 수평으로 길게 이은 리어램프 하나만으로도 분위기가 상당히 달라졌습니다. 여기에 4조각으로 나뉜 LED 주간주행등까지 들어가 넓은 후면부가 더욱 강조되기도 하고 밤에 보면 그 존재감이 상당하더라고요.
실내 역시 구성은 동일했지만 곳곳에 디테일을 보강해 변화를 체감할 수 있게 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10.25인치 센터 디스플레이, 새롭게 다듬은 내부 그래픽과 단순히 가로로 긴 비율 하나만으로도 신선함을 줬고 화면을 분할해 더 많은 정보를 담았죠. 또 왠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박아놓은 퀼팅 무늬, 스웨이드 내장을 더하는 등 소재감을 업그레이드하고 더욱 개선된 주행 보조 장치를 아예 기본 사양으로 탑재했고 후측방 모니터 같은 안전 장비가 추가된 것도 눈여겨볼 만한 포인트였습니다.
무엇보다 파워트레인의 변화가 두드러졌습니다. 상대적으로 판매량이 저조했던 디젤은 빠졌지만 신형 제네시스 라인업에 쓰인 2.5L 가솔린 직분사 터보 엔진을 기본 사양으로 탑재해 300마력을 넘어서는 출력을 제공하면서 2.0L 터보 엔진을 유지한 '더 뉴 G70'보다 더 강력한 엔트리 라인업을 갖추게 됐어요. 일부 트림에 옵션으로 제공하던 기계식 LSD를 아예 전 트림 기본 적용해 코너 탈출에 더욱 도움을 주는 등 사양 면에서 여러모로 G70 보다 매력적인 상품성을 선사했죠.
직전 2.0 터보 모델의 성능에 아쉬움을 느낀 소비자들이 진정한 스팅어가 아니라는 농담 섞인 의미로 '짭팅어'라고 부르곤 했는데 2.0L는 어딘가 아쉽고 3.3L는 너무 부담스러워 구매를 망설이던 소비자들이 꽤 많았던 것을 떠올리면 그동안의 고민을 단박에 해소해 줄 적절한 파워트레인이었습니다. 실제로 이 마이스터에 와서는 '짭팅어'라는 말이 딱히 안 나오는 것만 봐도요.
상위 모델인 3.3L 터보 모델 역시 출력을 소폭 끌어올리고 더욱 커진 구경에 어울리는 전자식 가변 배기 머플러를 장착,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더욱 터프한 배기음을 즐길 수 있게 했습니다.
2021년 출시된 연식 변경 모델부터는 기존 'E' 로고 대신 새롭게 바뀐 기아 로고를 적용하면서 아예 수출형과 동일하게 구성했습니다. 기존 기아 로고보다 훨씬 세련되어지기는 했지만 모하비와 더불어 유일하게 독자 엠블럼을 갖고 있던 기아차였기에 일부 소비자들에게 반감을 사기도 했어요.
이 밖에 '아크로 에디션' 트림을 신설, 튜온 패키지로만 제공하던 전용 19인치 휠과 스웨이드 내장으로 꾸며 더욱 스포티한 분위기를 뽐냈는데 여기에 더해 새로 추가된 '에스코트 그린' 컬러도 독특하고 멋스러웠죠.
또 단종 직전인 2022년에는 3.3L 터보 모델을 기반으로 전용 매트 그레이 컬러와 에스코트 그린, 두 가지 외장 색상에 전용 소재로 인테리어를 더욱 고급스럽게 꾸민 한정판 '트리뷰트' 에디션을 선보였습니다. 이 모델은 글로벌 1,000대 한정으로 국내에는 200대가 배정됐고 상징성이 있는 만큼 금세 동이 났다고 하네요.
스팅어는 유일한 약점이 보닛에 붙은 '기아 마크' 하나라고 평가받을 만큼 디자인, 성능, 실용성까지 뭐 하나 빠지지 않는 상품성으로 보장해 폭스바겐 '아테온', 아우디 'A5 스포트백', BMW '4시리즈 그란 쿠페' 등 걸출한 독일 패스트백과 경쟁했습니다. 막연히 해외 브랜드에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만 느껴왔던 고성능 GT를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손에 넣을 수 있었고, 젊은 미혼남은 물론 자녀가 있는 유부남 할 것 없이 대한민국 남성 소비자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한 모델이었죠.
4개의 문짝과 온전한 뒷좌석을 갖추면서 뒷좌석에 몸을 구겨넣던 가족과 친구들의 불평을 들을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배우자의 허락을 얻어내기에도 한결 수월했어요.
작정하고 만든 만큼 해외 소비자들과 전문 매체 역시 '기아차라고는 믿기지 않는다'며 극찬했고, 2018년 북미 올해의 차 최종 후보에 랭크되는 등 '브랜드 가치 제고'라는 본래 목적을 충실하게 달성했습니다. 앞서 같은 목적을 가지고 출시했던 오피러스나 모하비, K9 같은 플래그십 라인업이 이루지 못한 성과를 이 스팅어가 해결해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죠.
다만 그들이 그러했듯 '기아'라는 태생적 한계까지는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성능 모델에 비해 분명 합리적인 가격표를 달았지만, 그럼에도 지갑을 열기에는 대중 브랜드 기아의 밸류는 여전히 부족했나 봅니다.
주력 시장인 북미에서는 2018년 출시 후 연평균 1만 대를 훌쩍 넘기며 나름 의미 있는 성적을 이어갔지만 기대했던 성과에는 턱없이 모자랐고, 연간 판매 목표 1만 2천 대를 야심차게 내세웠던 국내 판매량도 출시 첫해부터 반토막인 6,122대를 시작으로 꾸준히 하락, 2022년 한 해 동안 채 2,000대를 채우지 못하는 등 저조한 성과를 기록했어요.
결국 지난해인 2023년을 끝으로 출시 6년 만에 단종 절차를 밟게 됐습니다. 그 빈자리는 당분간 고성능 전기차 'EV6 GT'가 이어받게 됐죠. 상징성이 큰 차량인 만큼 브랜드를 대표하는 얼굴 마당으로 오랫동안 함께하길 바랬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차쟁이로서 매력적인 내연기관 차량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정리하는 걸 보고 있으니 참 씁쓸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G70처럼 고속도로 순찰대가 운 용하면 참 멋질 것 같았는데, 오래전 디젤 모델이 암행 순찰차로 활동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딱히 소식이 없습니다. 대신 그 아쉬움은 저멀리 호주와 영국 그리고 폴란드에서 대신 달래줬어요. 디자인이 원체 멋지니까 데칼을 덕지덕지 붙여놔도 멋있었습니다.
한편 여전히 현역 모델이라 심각한 고질병은 딱히 보고되지 않았지만 거의 모든 2.0L 세타 터보 엔진들이 공유하는 프론트 케이스 누유, 실린더 내벽 스크래치 등의 내구성 문제와 브렘보 브레이크 디스크의 빈번하게 열변형이 일어나 제동 시 스티어링 휠이 덜덜 떨리는 등 같은 부품을 쓰는 제네시스 G70과 동일한 문제를 공유하고 있고, 특히 4기통 모델의 냉간 시 진동까지 거의 모든 오너들이 고질적인 실내 잡소리를 겪는 등의 소소한 문제가 있으니 중고차 구매하실 분들은 관련 정보를 꼼꼼하게 살펴보시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기아의 후륜구동 GT 스팅어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국산차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능과 디자인으로 무장해 평소에는 데일리카로, 주말에는 펀카로 즐길 수 있는 매력적인 모델입니다. 앞서 몇몇 플래그십 모델을 소개하면서 플래그십은 브랜드의 성격과 그들이 추구하는 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적인 모델이라고 말씀드린 바 있죠.
뛰어난 디자인을 바탕으로 젊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추구하는 기아의 브랜드 이미지를 떠올리면 오히려 호화로운 플래그십 K9보다는 이 스팅어가 가장 '기아스러운' 브랜드를 대표하는 차로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랬기에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날 줄은 몰랐는데요. 정말 당황스럽습니다. 그래도 패스트팩 스타일의 전기차로 후속 모델을 준비한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조선 파나메라에 이은 '조선 타이칸'을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는데, 최근 그 GT의 양산 계획이 무산됐다는 이야기 때문에 아쉬움만 두 배로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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