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사적지 멋대로 파헤친 광산구 무책임 행정

조회 122025. 2. 20.
광주 신창동 유적지 배수로 공사, 문화유산 전문가 입회 없이 무단 굴착
구청은 업체 공사 이뤄진 것도 모르고 뒤늦게 확인… 문화유산 훼손 우려
20일 광주시 광산구 신창동 유적지 내에 배수로가 파이고 콘크리트 배수관이 설치돼 있다.

광주시 광산구의 광주 신창동 유적지(사적)에서 문화유산 전문가 입회 없이 무단으로 굴착 공사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 전문가들은 문화유산을 보호·관리해야할 지자체가 발주한 공사과정에서 광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 파괴행위가 이뤄졌다며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20일 광주일보 취재진이 찾은 광주시 광산구 신창동 513-2(신창동 유적) 반월마을 입구 인근 비탈면에는 20여m 길이의 콘크리트 배수관이 설치돼 있었다. 배수관 뒤쪽 30여m는 사각형으로 흙이 굴착돼 물이 고여 있었다.

이 배수관은 지난 12일 설치된 것으로, 공사 업체는 전문가 입회 없이 임의로 굴착 및 배수관 설치를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곳에서는 지난해 12월부터 광산구가 ‘광주 신창동 유적 배수로 정비공사’를 해 왔다. 유적지에 있던 자연 배수로에 잡초, 폐기물 등이 누적돼 고인 빗물이 인근 도로로 넘친다는 민원이 잇따른 데 따라 추진되는 사업이다.

기존 배수로의 배수시설을 개선하는 사업으로, 플륨관(폭 40㎝, 콘크리트 수로관)과 스틸그레이팅(격자형 배수로 뚜껑)을 300m 길이로 설치하는 것이 골자다. 반월마을 입구 지하도와 가까운 100m 길이 구간은 ‘긴급 임시조치 구역’으로 정해 배수관을 우선 설치하도록 했는데, 고인 물이 인근 지하도까지 넘쳐 겨울이면 빙판길을 만들기 때문이다.

총 예산은 국비 9800만원, 시비 4200만원으로 총 1억 4000만원을 투입했으며, 당초 예정 준공일은 오는 23일이었다.

광산구는 사업 부지가 신창동 선사유적지에 포함돼 있는 만큼 사전에 국가유산청으로부터 국가유산수리 설계승인을 받았다. 승인 조건으로는 설계설명서 및 도면 사업지침에 ‘관계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배수로 정비를 시행한다’는 내용을 넣고, 국가유산수리공사 추진 시 준수사항에 따라 사업을 추진할 것 등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이곳에서 굴착 등 공사 행위를 할 때는 반드시 자치구에서 위촉한 외부 전문가가 입회해야 한다.

하지만 공사 업체는 광산구에 고지를 하지 않고 ‘긴급 임시조치 구역’에서 배수로 공사를 진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광산구는 한술 더 떠 공사가 이뤄진 사실도 모르고 있다가 최근에서야 뒤늦게 현장을 확인했다. 공사 업체에 “굴착을 시작하면 전문가가 입회해야 하니 미리 알려달라”고 전달했는데, 업체 측에서 아무런 통지를 해 오지 않아 상황 파악이 늦어졌다는 것이 광산구 설명이다.

더구나 공사가 이뤄진 당일 광산구는 공사 현장에 ‘공사 일시 중지’ 처분을 내렸던 것으로 확인됐다. 공사 구역 내에서 설계 당시 확인되지 않았던 지장물인 물웅덩이가 발견된 데 따라 국가유산청에 설계 변경을 요청하고 공사를 중지시킨 것이다.

광산구 관계자는 “자체 조사 결과 공사 업체는 기존 자연배수로를 다듬고 배수로를 얹는 수준이니, 개발 행위의 기준인 50㎝ 성토가 이뤄지지 않았으므로 굴착 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며 “또한 긴급 임시조치 구역은 물웅덩이와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공사를 해도 상관 없다고 여긴 것으로 보이며, 공사를 다 하고 난 뒤에야 일시중지 명령이 전달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공사 현장을 확인한 전문가가 없다 보니 공사 과정에서 문화유산이 유실됐을지 모른다고 지적한다. 신창동 유적은 저습지와 토층에서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광주 지역의 한 문화유산 전문가는 “아무리 주민 민원 해결 차원이라고 하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사시대 유적지에서 이토록 무책임한 공사를 하고 있는데다 관할구청에서도 공사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그간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유물이나 집 터 등이 남아있었는지도 알 수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광산구는 공사 업체에 행정 처분 등 제재 조치는 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입장이다.

광산구 관계자는 “모든 공사 행위에 전문가가 입회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경미한 수준의 공사만 이뤄진 만큼 지금까지는 위법한 상황까지 이뤄지지는 않았다고 판단했다”며 “앞으로는 경미한 공사 행위라도 하게 된다면 반드시 전문가를 입회할 것을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신창동 유적지는 기원전 1세기 형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에 걸친 유적으로 1992년 국가사적 제375호로 지정됐고 현재 사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공방지 흔적, 목제유물, 탄화미(그을린 쌀) 등 유물 2만여점이 출토돼 마한 시대 생활상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적지로 꼽힌다.

/글·사진=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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