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인간이 되는 두 가지 방법
더위가 한풀 꺾인 9월에도 공포영화의 재미는 유효하다. 물리학자인 필자는 귀신이 등장하는 공포영화를 즐기지 않는다. 오히려 과학적으로 있을 법한 공포가 더 오싹하게 느껴진다. 그런 영화 중 하나가 바로 2020년에 개봉한 SF 스릴러 '인비저블 맨'이다.
영화는 주인공 세실리아 카스가 억압적이고 폭력적인 남자친구 에이드리언 그리핀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해방됐다는 생각에 안도하던 세실리아는 어느 순간부터 그리핀의 존재를 느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실제로 그리핀은 광학기술을 사용해 눈에 안보이게 세실리아를 감시하고 있었다. 소름 끼치는 이 이야기 속에는 물체를 투명하게 만드는 과학이 등장한다.
SF 영화에 등장하는 투명인간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첫 번째는 세포와 뼈, 장기 등 모든 신체 조직이 투명하게 변하는 '투명화'다. 영화 '할로우 맨'의 주인공처럼 약물 주입 후 온몸이 투명해진 경우가 이 경우다.
두 번째는 영화 '인비저블 맨'이나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것처럼 투명 망토를 두르거나 투명슈트를 입으면 모습이 가려지는 '클로킹(은폐)' 방법이다. 현대의 과학 기술로 설명하자면 전자는 불가능에 가깝고 후자는 꽤 실현 가능성이 있다.
● '투명하다'는 것을 정의해보자
투명인간이 되기 위한 과학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투명하다'라는 말을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우리는 물이나 유리같은 물질을 투명하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물과 유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주 특수한 조건, 물과 유리가 편평하고 움직임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눈에 잘 안 보일 수는 있지만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유리와 물을 눈으로 볼 수 있다.
반면 공기는 눈에 전혀 보이지 않는 투명한 상태이다. 즉 '투명하다'라는 말과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서로 바꿔 쓸 수 있는 동일한 의미의 단어가 아니다. 영화 속 투명인간은 공기와 같은 투명함,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를 가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상태란 무엇일까. 우리가 물체를 눈으로 '본다'는 것은 그 물체에서 반사 또는 굴절된 빛이 눈의 시신경에 도달하는 것이다. 인간의 시신경이 어떠한 빛의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지 그리고 물체가 빛의 경로를 어떻게 바꾸는지 이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우리 눈에 물체가 보이거나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먼저 빛의 스펙트럼에 따라 물체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예로는 '열 적외선 카메라'가 있다. 어두운 밤, 가시광선이 없는 상황에서 인간은 맨 눈으로 동물이나 사람을 보기 어렵다. 인간의 눈은 가시광선 파장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적외선 파장을 관측할 수 있는 열 적외선 카메라를 사용하면 주위 환경과 온도가 다른 물체를 볼 수 있다. 이는 적외선의 파장이 700nm(나노미터・1nm는 10억 분의 1m)에서 1mm로 우리 눈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 파장 범위인 380nm~780nm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열을 방출하는 물체는 적외선을 방사하기 때문에 열 적외선 카메라를 사용하면 낮이나 밤에 관계없이 동물이나 인간 같은 열을 내는 물체를 관찰할 수 있다. 약 100nm~400nm의 파장 범위인 자외선을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도 이와 같은 원리다.
두 번째로 물체가 빛의 진행 방향을 변경하지 않는 경우이다. 즉 표면에서 반사가 일어나지 않거나 물질을 지나면서 빛이 크게 꺾이지 않아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이 바로 물질의 '굴절률'이다. 굴절률은 빛이 한 매질에서 다른 매질로 이동할 때 속도가 변화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값이다. 만약 물체의 굴절률이 그 물체를 둘러싼 물질의 굴절률과 차이가 크면 빛은 크게 굴절되고 반사되는 빛의 양도 많아진다.
반면에 빛이 지나가는 두 물체의 굴절률 차이가 작으면 빛이 거의 굴절되지 않고 통과하듯 지나가게 된다. 따라서 우리 눈에 반사된 혹은 굴절된 빛이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물체와 물체 주위 물질 사이 굴절률의 차이가 거의 없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접시에 물을 붓고 물 위에 작은 투명 플라스틱 조각을 올려놓았을 때 플라스틱 조각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는 물과 플라스틱의 굴절률이 비슷해 빛이 거의 굴절되지 않고 통과하기 때문이다. 즉 영화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인간이 존재한다면 그 투명인간의 굴절률은 공기의 굴절률인 1.0003과 거의 같아야 한다. 자연상에 존재하는 물질 중에서는 그나마 물(1.33)이나 유리(1.5)가 굴절률이 매우 작은 편에 속한다. 그외 다른 물질들은 대체로 이보다 큰 값을 가진다.
● 투명인간이 되는 첫 번째 방법, 투명화
자연에는 투명한 생명체들이 이미 여럿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해파리는 물 속에서는 투명해서 잘 보이지 않지만 공기 중으로 나오면 하얀 젤리 같은 모습으로 눈에 띈다. 이는 해파리의 굴절률이 물의 굴절률과 비슷하고 공기의 굴절률과는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온몸이 투명해 내장이 그대로 보이는 유리 문어는 굴절률이 바닷물과 유사해 해파리보다도 더 투명하게 보인다.
공기 중에도 투명한 생명체가 있다. 바로 유리날개나비(Greta oto)다. 유리날개나비는 몸 전체가 투명하지는 않지만 날개의 일부가 마치 유리처럼 투명하다. 2021년 아론 포머란츠 당시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연구원은 유리날개나비의 날개를 전자현미경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날개의 투명한 부분에는 서로 다른 길이의 미세한 돌기 구조가 무작위적으로 분포하고 있었다. 연구팀은 이 나노미터 크기의 구조가 빛의 반사를 최소화하고 빛이 통과하도록 한다고 분석했다. (doi: 10.1242/jeb.237917)
그렇다면 투명화 방식으로 투명인간을 만들기 위한 다음 질문은 이것이다. 투명하지 않던 생명체를 유리 문어처럼 투명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기술은 꽤 예전부터 연구돼왔다. 2013년 미국 스탠포드대 연구팀이 콜레스테롤을 제거해 조직의 투명성을 높힐 수 있는 액체를 개발했다. 마치 우유를 물로 바꾸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2023년에는 독일 헬름홀츠 뮌헨 연구소 연구팀이 이 기술을 활용해 쥐를 용액에 넣어 완전히 투명하게 만들었다. 이 용액은 체내의 수분과 지방을 제거해 피부조직은 물론 뼈와 신경까지 모두 투명하게 만든다. 세포를 투명하게 만들면 내부 조직을 더욱 쉽게 관찰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 질병을 연구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기술을 살아있는 생명체에 적용한 연구는 없었다. 현재까지의 기술로 투명한 살, 투명한 뼈, 투명한 장기를 가진 살아있는 투명인간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아주 만약에 그런 기술이 개발되더라도 우리가 먹은 음식은 여전히 투명하지 않을 테니 이땐 완벽한 투명인간이 되기 위해 공복을 유지하는 게 중요해질 것이다.
● 투명인간이 되는 두 번째 방법, 클로킹
영화 '인비저블 맨'에 나오는 투명 슈트는 어떨까? 물체 위에 다른 물체를 덮어 존재를 숨기는 이 방법을 '클로킹'이라 부른다. 클로킹 기술은 지난 수년간 매우 빠르게 발전해서 지금은 노트북보다 싼 가격에 클로킹 도구를 살 수 있다. 영국의 인비지빌리티 실드(Invisibility Shield Co.)사가 개발한 투명 방패가 대표적인 예다. 이 투명 방패는 바로 뒤에 있는 물체를 가려주면서 더먼 배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방패의 표면은 여러 개의 볼록렌즈를 일렬로 배열한 렌즈 어레이로 구성돼 있다. 물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간단한 기하 광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볼록렌즈는 평행으로 입사하는 빛을 초점거리에서 모이게 하고 따라서 초점거리를 지난 빛은 다시 퍼져 나간다. 볼록렌즈 배열로 형성한 방패의 뒤편에 관찰자가 있으면 방패에 가까이 위치한 물체에서 반사 후 굴절되는 빛을보지 못한다. 반면 멀리 위치한 배경에서 오는 빛은 관찰자쪽으로 굴절돼 들어온다.
이런 간단한 원리로 방패 뒤의 물체는 보이지 않고 배경은 잘 보인다. 이렇게 렌즈를 이용한 방식은 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었지만 아직은 기술적으로 보완할 부분들이 있다. 이 방패는 세로 무늬 패턴을 뭉개버리는 경향이 있어서 왼쪽 사진을 자세히 보면 자세한 파도의 모습까지 보이지는 않는다.
렌즈로 만든 방패 말고도 클로킹의 개념을 간단히 실험실에서 구현해 볼 수 있다. '로체스터 클로킹'이라고도 불리는 이 실험은 렌즈 4개만으로 구현 가능하고 렌즈의 크기만큼 큰 물체를 완벽히 가릴 수가 있다. 2014년에 처음 논문으로 발표됐다.(doi: 10.1364/OE.22.029465)
필자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이 실험을 해보게 하는데 방법은 이렇다. 먼저 초점거리가 200mm인 렌즈 2개(f₁)와 초점거리가 75mm인 렌즈 2개(f₂)를 준비한다. 그다음 네 개의 렌즈를 f₁, f₂, f₂, f₁ 순으로 일자로 배치한다.
이때 렌즈 사이 간격은 275mm(f₁-f₂), 330mm(f₂ -f₂), 275mm(f₂ -f₁)이다. 이렇게 배치한 렌즈 사이로 물체가 지나가면 물체만 감쪽같이 사라지고 뒷 배경은 여전히 볼 수 있다. 이 또한 기하광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먼 배경에서 렌즈로 들어오는 빛을 평행 광선으로 표현하고 렌즈에 의해 빛이 모이고 퍼지는 것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 이때 첫 번째 렌즈와 네 번째 렌즈 사이에 광선이 지나가지 않는 공간이 생기는데 이 영역에 물체를 집어넣게 되면 물체는 사라진 것처럼 보이고 여전히 배경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여러 연구실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는 클로킹 기술로는 '메타물질'이 있다. '메타(meta)'는 그리스어로 '넘어서다'는 뜻이다. 이 물질은 빛이나 전자기파가 자연계에서는 불가능한 방식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됐다. 예를 들어 자연계의 물질들은 양의 굴절률을 가지지만 메타물질은 음의 굴절률 또는 거의 0에 가까운 굴절률을 가질 수 있다. 이를 통해 빛이 물체 주위를 돌아 지나가도록 해서 눈에 보이지 않게 만들 수 있다.
다만 메타물질은 제작이 어렵다는 큰 한계가 있다. 메타물질은 메타 아톰 또는 메타 셀이라 불리는 인공 구조체로 구성된다. 이들 구조체는 일반적으로 매우 작아서 정밀한 팹 공정이 필요하고 이는 제조 비용을 증가시킨다. 또한 메타물질 클로킹 기술은 특정 파장 예를 들어 마이크로파나 적외선에서만 효과적이다. 때문에 가시광선 전 영역을 포함하는 클로킹 기술은 여전히 연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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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동아 9월호, 투명인간이 되는 두 가지 방법
[김세정 호주 맬버른대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 n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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