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하면 차갑고 입력된 명령만 수행하는 기계처럼 느껴진다. 실제 영화에서도 이런 냉철함 때문에 많은 사단이 일어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로봇이 인간의 따뜻한 마음을 배우고 변화되는 과정은 묘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오히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로봇 때문에 찡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괜히 <터미네이터 2>에서 용광로에 들어가기 전 T-800이 존 코너의 우는 모습을 보고 “네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를 알고 있다. 오직 인간만이 가능하지”라고 말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은 로봇 주제(?)에 사람을 울리는 영화들, 특히 애니메이션 위주로 살펴본다.
월 E – 낭만과 로맨스라는 스위치에 ON!
쓰레기장으로 변한 지구를 버리고 유토피아를 찾아 나선 인류, 하지만 로봇 하나만이 이 홀로 남아 허드렛일을 한다. 그의 모델명은 ‘월-E’. 매일 아침 비디오를 틀고 쓰레기를 치운다. 반복되는 패턴, 끝이 없는 쓰레기. 그럼에도 언젠가 비디오 속 로맨틱한 일이 내게 있을 것 같은 예감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치 애플 사에서 만든 듯한(?) 디자인의 로봇 ‘이브’가 지구에 착륙한다. 그의 목표는 지구가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는지 조사하는 것. 월 E는 그런 이브를 보고 첫눈에 반하며 로봇(?) 주제에 숨겨왔던 이 찌릿한 감정을 조금씩 키워간다.
2009년 개봉한 픽사 애니메이션 <월-E>는 인간에게 사랑에 대해 질문을 감히 던진다. 로봇 월-E의 이브를 향한 지고 지순한 로맨스 프로그램은 우리 마음속에 OFF 되어있던 낭만과 로맨스라는 스위치를 다시 ON으로 돌려놓는다. 혹자는 이 모든 것이 프로그램의 명령어를 잘 수행한 월 E의 행동일 뿐이라고 단정 짓지만, 로봇도 이렇게 상대를 위해 희생하고 사랑할 수 있는데, 우리 인간도 그러지 못한다면 너무 부끄럽지 않을까 반문하게 만든다. 누군가의 손을 꼭 잡아주고 싶은 마음과 함께 말이다.
아이언 자이언트 – 슈퍼맨이었던 로봇
시골 마을에 외롭게 자라던 소년 호가드에게 덩치 큰 친구가 찾아온다. 숲속에 불시착한 ‘자이언트’가 바로 주인공. 지구의 모든 것이 낯선 그에게 호가드는 길잡이가 되어주고, 자이언트가 하나둘씩 지구 생활에 적응하면서 서로에게 둘도 없는 찐친이 되어간다. 하지만 세상은 쉽사리 두 친구의 우정을 인정하지 않는다. 자이언트가 지구의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오만한 어른들의 생각은 총과 칼로 그들을 위협한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지구를,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 슈퍼맨이 되었던 자이언트의 마지막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뜨겁게 한다.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과 <인크레더블> 시리즈의 성공으로 실사와 애니메이션 모든 장르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여준 브래드 버드. 그럼에도 그의 진정한 최고작은 <아이언 자이언트>라고 꼽는 분이 상당히 많다(에디터 역시 그렇다). 종이 다른 두 캐릭터가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에게 빠진 무언가를 채워가며 우정을 쌓아가는 모습이 훈훈하고도 뭉클하다. 우정 그 이상의 벅찬 감정이다. 특히 자기 자신은 스스로 만들어간다는 격언 속에 친구, 아니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해 희생하는 자이언트의 모습은 우리를 울리기에 충분하다.
로봇 드림 – Do you remember?
반복되는 일상 속에 무기력하게 살아가던 도그. 티브이를 보고 오락을 해도 심심하고 공허한 기분만 가득하다. 내 옆의 빈자리가 유독 크게 느껴지던 그때 홈쇼핑에서 로봇 친구를 발견한다. 들뜬 마음에 주문하고 택배가 오고 조립을 한다. 오랜 시간 끝에 완성된 로봇. 평생의 짝이 있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도그. 로봇 역시 도그의 기쁜 모습을 보면서 자신 역시 즐겁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은 늘 오래가지 못한다. 뜻하지 않은 사고로 두 주인공은 이제 꿈속에서만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데….
사라 바론의 그래픽 노블을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 <로봇 드림>. 지난 3월 13일에 개봉해 많은 영화팬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한 이 작품이 얼마 전 다시 재개봉했다. 영화를 보신 분들은 그 이유를 알 것인데, 이 작품의 핵심 테마인 ‘September’ 때문이 가장 크다. 이 작품은 어떤 이에게 우정, 어떤 이에게 사랑으로 다가올 것이다. 함께 할 때 너무나도 행복했지만 뜻하지 않은 이유로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관계에 대한 추억과 회한의 시간을 제공한다. 그렇다고 슬픔에만 함몰되지 않는다. 비록 지금은 함께할 수 없지만 너와 나의 헤어짐은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운명의 엇갈림일 뿐이라고, 자책감에 빠진 이들을 다독여준다. 눈물보다 미소, 슬픔보다 고마움, 함께한 인연에 대한 사려 깊은 태도가 오히려 많은 이들의 마음 한구석을 찡하게 건드린다. ‘September’이란 노래에 자동 눈물 모드가 된다는 후유증과 함께 말이다.
와일드 로봇 – 엄마의 위대함을 알게 된 로봇
어느 외딴섬에 불시착한 로봇 ‘로즈’. 그를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동물들과 다르게, 한 새끼 기러기는 알에서 깨자마자 로즈를 엄마라고 인식한다. 이에 로즈에겐 새로운 미션이 부여된다. 새끼 기러기를 열심히 훈련시켜 추운 겨울이 오기 전, 다른 새들과 함께 멀리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 로즈는 프로그래밍 된 기계어 이상으로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다. 자식을 사랑하는 엄마의 마음을.
<와일드 로봇>은 동명 베스트셀러 동화를 원작으로 한 드림웍스의 신작이다. 실사와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CG로 구현된 자연 묘사력과 동물들의 움직임이 탄성을 절로 나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로봇 로즈와 새끼 기러기 브라이트빌의 교감이다. 입력된 명령만 수행하던 로즈가 브라이트빌을 돌보면서 소중한 가치를 깨닫는 모습은 아름답고 뭉클하다. 그 덕분에 영화를 보러 간 아이들보다 어른 관객들이 훨씬 더 목이 메지 않았을까 싶다. 자식을 사랑하고 희생하는 엄마의 마음은 종의 한계를 뛰어넘어 언제나 위대하니깐.
테일러콘텐츠 에디터 홍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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