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이 불질렀다…미국 작가 16년 만의 파업 [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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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환의 세상만사 경제학] 콘텐트 무역과 요소가격 균등화
2024년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작은 넷플릭스의 ‘전, 란’이었다. ‘충무로’로 통칭하던 전통적인 영화제작사가 아닌 다국적 스트리밍 플랫폼 회사의 작품이 개막작으로 채택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영화산업도 넷플릭스 등 OTT에 점령당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다국적 기업의 막강한 자금동원력이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콘텐트 수준을 한 단계 높일 수 있다는 긍정적인 분석도 나온다.
리카도 이후 학자들은 이런 비교우위 자체가 왜 발생하는가에 관심을 가졌는데, 헥셔와 올린은 나라들 사이에 생산요소의 부존량이 다르다는 데 주목했다. 프랑스 남부 지역은 포도나무를 기르기에 좋은 넓은 토지가 있고, 따라서 와인 생산에 비교우위가 생긴다. 아르헨티나나 오스트레일리아는 초지가 아주 넓어서 목장이 많고, 싸고 맛있는 소고기를 많이 수출한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가장 먼저 시작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석탄 매장량이 많아서 증기기관을 돌릴 연료를 값싸게 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라마다 어떤 생산요소가 풍부한가에 따라 좀 더 적은 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상품이 달라지고, 이것이 비교우위 발생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 헥셔-올린 이론이다. 핵심은 “나라마다 상대적으로 싼 생산요소가 있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예나 지금이나, 무엇인가를 값싸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경쟁력의 원천이다.
그러면 이렇게 만들어진 비교우위는 영원할까? 물론 미국이나 러시아만큼 땅덩이가 크다면 한동안은 다른 나라가 토지라는 생산요소에서 우위를 갖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이나 자본같은 생산요소 시장에서는 무역이 계속 진행되면 비교우위가 점점 사라지는 방향으로 요소가격이 조정된다는 것도, 여러 경제학자들이 밝혀낸 사실이다. 즉, 영원한 비교우위란 존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가장 간단히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생산요소 자체가 이동하는 경우다. 국가 A가 있는데, 이웃 나라 B에서는 노동력이 부족해서 임금이 상대적으로 높고, 그래서 인건비 때문에 노동집약적 상품에는 비교우위가 없다. 어떻게 될까? A국 사람들이 B국으로 일자리를 구하러 이민을 가면서 B국의 임금이 낮아질 것이다. 요즘 필리핀 가사도우미가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 아이디어의 출발점도 한국과 필리핀 사이의 엄청난 임금 격차다. 하지만 생산요소가 국경 너머로 이동하지 못하는 경우에도, 무역만으로도 생산요소 가격의 격차는 줄어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국제무역에 의한 ‘요소가격 균등화’ 현상이다. 이것을 밝혀낸 대표적 경제학자들 이름을 따서 스톨퍼-새뮤엘슨 정리라고도 한다.
두 나라가 각각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에 특화하는 방식으로 교역을 하게 되면, 각자 수출하는 상품을 그 전보다 더 많이 만들게 된다. A국에서 인건비가 싸서 노동집약적인 섬유산업에 비교우위가 있다면, 그래서 옷을 만들어서 계속 수출을 한다면, 국내수요만 충족시킬 때보다는 훨씬 많이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생산량이 늘어나면 노동수요가 늘어나고, 이 과정에서 인건비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옷 생산에 비교우위가 없던 수입국 B에서는 반대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외국에서 옷을 수입하면 국내에서 만들어진 옷에 대한 수요는 예전보다 줄어든다. 수요가 줄고 생산량이 줄면 고용도 같이 줄어들고, 임금이 낮아지게 된다. 애초에 인건비가 낮아서 비교우위가 있던 나라에서는 인건비가 오르고, 인건비가 비싸서 비교우위가 없던 나라에서는 인건비가 낮아지는 것이다. 이렇게 국제무역은 서로 다른 나라 사이에서 임금 차이를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자본에 대한 이자나 임대료 등 다른 생산비용에 대해서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작가들, 배우들, 스태프들의 임금이나 작업환경의 격차는 콘텐트 교역이 증가하면서 앞으로도 계속 줄어들 것이 예상된다. 영화 ‘전, 란’은 10월 11일에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서비스가 시작된다. 올해 상반기에는 ‘오징어 게임’ 시즌 2 주연배우의 회당 출연료가 급격히 높아진 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톨퍼-새뮤엘슨 정리는 지금도 우리 눈앞에서 끊임없이 작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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