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담배회사들이 국내 시장에서 판매하는 전자담배 기기가 일본보다 최대 3배 비싼 것으로 나타나 '가격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필립모리스, 브리티쉬아메리칸토바코(BAT), 재팬타바코인터내셔널(JTI) 등은 한국보다 일본 시장이 규모가 더 크고 경쟁도 치열해 가격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신제품뿐 아니라 일본에서 먼저 출시된 구형 제품의 가격대까지 한국 시장에서 더 높게 책정돼 유독 한국 소비자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필립모리스의 최신 제품인 ‘아이코스 일루마i 프라임’은 일본에서 약 9980엔(약 9만 4000원)에 판매되지만 한국 시장 정가는 12만 9000원으로 약 37.2% 더 비싸다. BAT의 ‘글로 하이퍼 프로’ 역시 일본 정가는 약 3980엔(3만 7000원)이지만 한국 출시 가격은 6만 9000원으로 뛰었다. JTI의 ‘플룸 X 어드밴스드’는 가격 차이가 더욱 크다. 일본에서는 1만9000원(1980엔)이지만, 한국에서는 6만 9000원으로 약 3.6배 비싸다.
특히 국내 소비자들은 구형 제품이 한국에서 더 비싸게 팔린다는 점에 더욱 분개하고 있다. 글로벌 담배회사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신제품을 내놓을 때 통상 일본에서 먼저 출시한 후 같은 제품을 1~2년 뒤 한국 시장에서 판매하지만 가격은 오히려 더 높기 때문이다.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A(38) 씨는 "최근 도쿄 여행 중 기기를 잃어버려 같은 제품을 일본에서 구입했는데 가격이 3분의1 수준으로 저렴해 충격을 받았다"면서 "한국에서는 왜 그렇게 비싸게 파는지 이해할 수 없으며, 업체들이 소비자들을 우롱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업체들은 일본 시장이 세계 최대 규모로 아시아 시장의 핵심 거점이기에 신제품의 빠른 안착을 위해 가격을 낮게 책정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교보증권에 따르면 일본 전자담배 시장 규모는 지난해 기준 약 12조원으로 한국 시장보다 3배 더 크다. 일본 시장 점유율은 필립모리스 70%, BAT 20%, JTI 10% 순이다. 담배 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전자담배 시장의 중심지로, 글로벌 기업들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한다"면서 "일본 시장에서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출시해 반응을 본 뒤 한국을 포함한 다른 아시아 국가로 확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글로벌 담배회사들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전자담배 시장 규모 역시 세계 4위 수준이고 업체 간 경쟁구도도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장 안착을 이유로 일본에서 저가정책을 펴는 것은 한국 시장에서 비싸게 팔아도 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꼬집었다. 결국 업체들은 한국을 기기 가격이 비싸도 구입하는 소비자들이 대부분이라 가격을 조정할 필요가 없는 시장으로 분류해 일본과 확연한 가격차이를 두는 전략으로 더 많은 수익을 거둬들이는 셈이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기업들은 가격을 책정할 때 소득수준, 수요, 가격탄력성 등을 고려한다"며 "한국 소비자는 일본보다 가격에 덜 민감하다고 분석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권재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