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완 금호석유화학 전 상무가 올해는 주주제안을 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것으로 관측된다. 박 전 상무는 2021년부터 꾸준히 현 경영진을 향해 날 선 비판을 해와 이목을 끌었다.
박 전 상무의 두문불출은 △소액주주의 멀어진 관심 △석유화학 다운 사이클 △주요 안건 소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고있다. 재계에선 박 전 상무가 사면초가에 빠졌다고 입을 모은다. 경영 참여·지분 매도(엑시트) 모두 쉽지 않기 때문이다.
소액주주 관심 밖으로…"피로감 누적"
19일 재계에 따르면 금호석유화학은 늦어도 내달 초 이사회를 열고 3월 정기 주주총회에 올릴 안건을 확정할 방침이다.
작년 주총일 기준으로 6주를 역산한 지난 7일까지 박 전 상무·차파트너스 모두 주주제안을 하지 않았다. 금호석유화학은 이들의 움직임을 살폈으나 주주제안 가능 시일이 지나 올해는 이사회가 정한 안건만 상정될 전망이다.
박 전 상무는 2021년 1월 박찬구 회장과 특별관계자 지위를 해소하는 것으로 갈등이 있음을 시사했다. 같은 해 2월 개인 최대주주로서 몇 가지 주총 안건을 제시했다. 주주제안은 2021년부터 2024년까지 총 3차례 이뤄졌다.
코로나19에 따른 반사 이익으로 의료용 장갑 수요가 급증한 2021년·2022년 주당 1만원 이상의 배당 요구를 했다 2024년에는 화학산업이 어려운 것을 감안해 자기주식 전량 소각 등 주주환원 관련 전략으로 선회했다.
자기주식 소각은 경영진 우호지분 확보 목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거버넌스 개선 차원의 요구이기도 했다. 당초 내부거래위원회 설치·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 등 이사회 투명성에 초점을 맞춰 지적했으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분리 안건만 다수의 공감을 얻었다.
2021년 본인이 직접 이사회에 진입하려다 무산되자 사외이사 추천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과반 이상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세 차례 주주제안으로 소액주주 표심을 공략했지만 첫 주주제안 이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실제 박 전 상무가 차파트너스에 주주제안 권리를 위임한 작년 2월 16일부터 주총 당일 3월 22일까지 개인 주주는 335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같은 기간 기관 역시 229억원 규모 주식을 순매도했다. 지난 2021년 주주제안 첫날부터 주총 당일까지 개인 주주만 1268억원 규모 순매수한 것과 상반됐다. 소액주주를 겨냥했지만 갈 수록 관심도가 떨어져 이번 주주제안도 동력을 잃은 것으로 해석된다.
석유화학 산업의 불황이 길어진 것 역시 주주제안에 나서지 않은 결정적 이유로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와 관련된 리스크, 경영자의 오판에 따른 실적 부진 등 사유가 명확해야 주주제안도 힘을 받을텐데 화학사 전반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아 명분을 상실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금호석유화학은 2024년 매출 7조1550억원, 영업이익 2728억원을 기록했다. NB 라텍스 시장 가격 경쟁 심화 및 시장 수요 둔화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4% 감소했다.
경영 환경의 어려움이 지속됐지만 금호석유화학은 자진해서 주주가치 제고에 나섰다. 2026년까지 배당·자사주 소각 등 주주환원율 40% 이상을 목표로 하고 있다.
7월 이사회 빈자리 노릴 가능성도
2022년 정용선·정진호 이사 등 당시 사외이사 2인이 임기 종료를 앞둔 상태였다. 2024년에는 백종훈 사장을 비롯한 황이석·최도성·이정미 이사 등 이사회 구성원 대다수의 임기가 만료됐다.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박 전 상무 측과 금호석유화학 이사회는 각각 이사를 추천했다.
금호석유화학 정관에는 '이사회 이사 수는 10명을 초과할 수 없다'고 명시됐다. 현재 금호석유화학은 10명 꽉 채워 이사회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임기가 끝나는 사외이사 2명의 자리를 이번 정기 주총서 채운다면 다음 기회는 하반기에 있다. 올해 7월에도 박준경 사장을 비롯해 사외이사 2인의 임기가 만료된다.
특히 박 사장의 임기가 올해 하반기까지 라는 점이 주목된다. 박 회장 아들인 박 사장은 2022년 7월 임시 주총 당시 이사회에 진입했다. 당시 박 전 상무는 성명을 통해 "박준경 사장을 사내이사로 선임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처사"라고 비판했다. 금호석유화학이 임시 주총을 따로 연다면 박 전 상무 측이 움직일 개연성이 높다.
다만 금호석유화학이 7월 임기가 끝나는 이사까지 병합해 이번 정기 주총에서 처리한다면 박 전 상무 측이 이사회에 진입하려면 2년 뒤 주총을 노려야 한다.
매각하기 어려운 대량 지분
주주환원·거버넌스 개선 등의 명분을 세워 이사회 진입을 시도했으나 매번 실패했다.
특히 다음 주주제안은 지분 공동 보유를 약속한 차파트너스의 의견도 중요하다. 양 측이 모두 동의해야 주주제안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시장에서는 이사회 진입이 어렵다 판단되면 지분 매각을 시도할 가능성을 주시하고 있다. 최근 박 전 상무와 특수관계인 박은형·은경·은혜 씨가 금호석유화학 주식을 매각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다만 해당 지분은 소량이기 때문에 매각이 가능했다.
박 전 상무가 9.10%를 보유한 대주주라는 점에서 매각 규모가 크고 경영권이 없는 지분이라 매수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란 의견이 지배적이다. 장내에 소량씩 매각하려 해도 주가가 하락한 상태다. 실제 차파트너스가 주식을 매입한 당시 단가는 14만2500원이나 현재 주가는 12만원대다.
김수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