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사서 자연에 돌려준다?…국내 첫 '리와일딩' 시도
○ 땅을 사서 땅에 돌려준다?
7월 25일 생명과 환경을 연구하는 공익 단체 생명다양성재단이 토지를 사기 위한 모금을 시작했습니다. 시민들이 함께 돈을 모아 자연에 돌려줄 땅을 산다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요.
● 모든 생물의 보금자리, 땅
8월 11일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에 있는 한 밭을 찾았습니다. 고추, 가지 등 여러 채소가 자라는 평범한 농경지의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이 밭은 아주 특별한 장소입니다. 바로 '야생 신탁'의 첫 번째 대상지이기 때문입니다.
야생 신탁은 우리나라 최초의 야생 영장류학자인 생명다양성재단 김산하 대표를 중심으로 시작된 연구 기획입니다. 부동산으로 사람에게 이용되는 땅을 식물, 동물, 균류 등 모든 생명체를 위한 공간으로 돌려주는 게 야생 신탁의 목표지요. 이는 새로운 생태 보전 활동인 '리와일딩'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리와일딩이란 '다시'라는 뜻의 영어 단어 're'와 '야생의'라는 뜻의 영어 단어 'wilding'이 합쳐진 신조어로 다시 야생으로 돌린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에서는 이미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개념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생소하고 학계에서 정식으로 정해진 우리말도 없습니다. 리와일딩을 직역해서 '재야생화'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정확한 표현은 아닙니다.
전통적인 생태 복원이 자연을 과거의 어느 시점으로 온전히 돌려놓고자 하는 거라면 리와일딩은 자연이 힘을 회복하고 스스로 미래로 움직일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리와일딩에서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원래 그곳에 살지않던 식물이나 동물이 오더라도 괜찮다고 여깁니다.
외래종을 최대한 멀리하려는 기존의 보전법과 사뭇 다른 부분입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아시아권에는 아직 리와일딩 성공 사례가 없습니다. 만약 야생 신탁에 성공한다면 조리읍의 땅은 우리나라 최초의 '새로운 야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 야생을 찾아라
● 점점 사라져가는 세계의 야생
위의 사진들은 모두 '야생'이라고 검색어를 넣었을 때 나온 사진들입니다. 하지만 어떤사진은 별로 야생 같지 않아 보이기도 해요. 국어사전에서 야생은 '산이나 들에서 저절로 나서 자람. 또는 그런 생물'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리와일딩에서 야생을 뜻하는 영어 단어 'wilderness'를 사전에서 찾으면 '인공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환경'이라고 나오죠.
야생을 우리말과 영어 둘 다 충족하는 뜻으로 '인공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 환경에서 저절로 나고 자란 생물'이라고 한다면 사진 속에서 야생을 고르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리고 지금 세계에서는 이러한 의미의 야생이 많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2018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지구 전체에서 땅의 77%, 바다의 87%가 인간 산업에 의해 변형되었다고 추정됩니다. 인간이 쓰지 않은 나머지 23%의 땅은 러시아, 캐나다, 호주, 미국, 브라질 5개 나라에 대부분 몰려 있어요.
모든 나라가 골고루 야생 지역을 갖고 있지는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연구를 이끈 제임스 왓슨 호주 퀸즐랜드대 교수는 "야생이 사라지면 생태계를 유지하는 물질 순환, 에너지 흐름, 종 간 상호작용 등의 생태학적 과정도 사라진다"고 우려했습니다.
야생동물은 '가축화되지 않고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을 의미합니다. 세계자연기금에 따르면 1970~2022년까지 전 세계 야생 척추동물 개체군의 약 70%가 사라졌어요. 우리나라에서도 호랑이, 표범 같은 대형 포식자는 20세기 중반에 멸종했고 남아있는 야생동물은 대부분 새입니다.
국립생물자원관에 따르면 2023년 조사 기간 중 확인된 야생동물 중 226종이 조류, 25종은 포유류였습니다. 새들은 날 수 있어 다른 육상 동물 보다 서식지 파괴의 영향을 적게 받기 때문이에요.
○ 다시 돌아온 야생동물들
떠나간 야생동물들이 돌아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 너무 작은 땅이란 없다
지난 2002년 스위스 바젤시는 세계 최초로 모든 신축 건물의 평평한 지붕에 녹지를 조성해야 한다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녹색 지붕'이라 불리는 이 생태계는 사람을 위한 공간인 일반적인 옥상 정원과는 조금 달라요.
2015년 개정안 기준 최소 12cm 두께의 토착 지역 흙을 깔아야 하고 스위스 토종 식물종이 포함되어야 하며 지렁이 같은 무척추동물이 살 수 있도록 높이 30cm, 너비 3m 의 둔덕도 만들어야 합니다.
생물다양성을 확대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시작된 녹색 지붕 프로젝트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 바젤시에 100만m²가 넘는 거대한 녹색 생태계를 만들었습니다. 녹색 지붕의 생태계를 조사한 논문에 따르면 녹색 지붕에는 80종의 딱정벌레, 40종의 거미, 175종의 식물 등 도시에서 보기 힘든 생물이 살고 있어요.
도심에서도 리와일딩을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입니다. 김산하 대표는 "리와일딩은 가기 힘든 곳이나 아주 넓은 땅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어요. 이어 "집에 있는 화분에 서부터 모든 곳으로 퍼져갈 수 있다"며 개개인의리와일딩 노력이 필요하다고 설명했습니다.
미국의 생태학자 알도 레오폴드는 그의 책 '모래군의 열두 달'에서 '야생의 관점에서 너무 작은 땅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 야생으로 바꿀 수 있는 나만의 땅이 있다면 리와일딩에 도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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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과학동아 9월 15일, 가자! 새로운 야생의 세계로
[박현선 기자 hs21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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