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섬, 월미도] 4. “75년 지났어도…고향 땅 가고 싶다”
진창세씨와 이웃들, 대통령실 앞 기자회견
“90세 이상 다 돌아가셔…마음 너무 아파”
“공무원·정치인은 어렵다는 말뿐” 하소연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달 7일 진창세(85)씨는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섰다. 인천 연수구 연수동에서 시작한 그의 발걸음이 닿은 곳은 서울 용산구, 현수막이 거리에 다닥다닥 내걸린 전쟁기념관 앞 인도였다. 길 건너편으로 대통령실 청사가 보였다.
"잘 지냈어?"라며 월미도에 함께 살았던 이웃 몇몇이 인사를 건넸다. "월미도에선 이렇게 더울 때면 집 앞 바닷가로 나가서 놀았는데 말이야."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 창세씨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열기로 달궈진 도로 위로 10여명이 옹기종기 모였다. "(오전) 11시에 저기서 기자회견 할게요."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땡볕 인도를 가리켰다. 시선들은 자연스레 손가락 끝을 향했다. "어휴, 해가 쨍쨍하네. 이번에는 누가 얘길 좀 들어주려나." 한 뼘의 그늘도 허락되지 않은 길 위에서 창세씨가 읊조렸다.
오전 11시, 기온은 이미 30도를 웃돌고 있었다. 창세씨는 '월미도 원주민 귀향 인천시·국방부 떠넘기기 그만하라'고 적힌 노란 팻말을 들었다. 인사를 주고받던 이웃이 든 팻말에는 '대규모 전쟁 기념 말고 귀향 대책 마련하라'는 문구가 쓰였다. "75년 됐다. 월미도 원주민 고향 땅에 돌아가고 싶다."라는 참석자들 외침에는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이날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월미도 원주민 귀향 문제 해결 요구 기자회견'에 나온 실향민과 가족은 17명. 어느덧 80대 중반에 접어든 창세씨와 함께 인천상륙작전 당시 월미도에 살았던 6명도 거리로 나섰다. 한인덕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장은 "90세 이상 실향민들은 2~3년 전에 다 돌아가셨다.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모른다"고 했다.
인천일보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귀향대책위원회 회원 17명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했다. 75년이 지났지만 귀향을 바라는 마음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들 가운데 16명은 귀향, 월미도로 돌아가는 것이 "꼭 실현돼야 한다"고 응답했다. 나머지 1명도 "가능하다면 좋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가능하다면'이라는 전제에는 현실적 장벽이 놓여 있다. 귀향대책위원회 총무 전영숙(75)씨는 "시간이 흐를수록 고향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희미해져 가는 것만 같다. 공무원·정치인들은 그 어떤 대안도 내놓지 않고 어렵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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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이순민·이아진·변성원·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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