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는 섬, 월미도] 4. 국가 외면에 막힌 귀향…불신·상처만 안겼다
인천일보, 실향민·가족 면접 조사
94% '귀향 문제 반드시 해결' 굳건
다수 '정부·시 책임 명확화' 지목도
2011년 대한민국 상대 손배소 제기
토지 소유권 문서로 증명 못해 패소
귀속재산 국유화…우선매수권도 무효
국회서 특별법 발의…임기 만료로 폐기
진실화해위 권고에도 제정 번번이 무산
변호사 “소유권 증명 난제…법 제정을”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몇 년 동안 아무런 활동도 하지 못하고, 사람도 만날 수 없었으니까 흐름이 다 끊긴 거죠. 연세가 많은 귀향대책위원회 회원들은 이미 돌아가시고 …"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회에서 총무를 맡은 전영숙(75)씨는 월미도 실향민 2세에 해당한다. 스물다섯 살이던 1975년 월미도 원주민 자녀와 결혼하면서 실향민 가족이 됐다. 인천상륙작전 당시 미군 폭격으로 마을이 사라진 지 25년이 지난 때였다.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고향길을 가로막은 군부대는 떠났고, 월미산은 개방됐지만 귀향만은 허락되지 않았다.
"2013년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지고도 인천시청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1인 시위도, 농성도 멈추지 않았어요. 귀향대책위 활동이 뜸해지면서 이제는 우리 얘기를 들어주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이대로 멈출 순 없잖아요."
지난달 7일 월미도 실향민들은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을 다시 불러 모은 건 '귀향', 두 글자였다.
인천일보가 기자회견 현장에서 실향민과 가족 등 17명 전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일대일 면접 조사 결과, 16명(94%)은 "귀향 문제가 반드시 해결될 것이라 믿는다"고 답했다.

▲실향민 대부분 "귀향 문제 해결될 것"
유예된 귀향은 생계 문제 말고도 '불신'과 '상처'를 안겼다. 실향민 면접 조사에서 17명 가운데 8명은 귀향이 지연되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어려움으로 '국가와 사회에 대한 불신'을 꼽았다. 그 다음으로는 '생계 및 경제적 어려움'(6명)과 함께 '정체성 상실이나 심리적 상처'(3명)를 지목했다.
"귀향만 시켜주면 좋을 텐데. 군인들이 철수한다는 얘기가 나온 뒤 어느 순간 국방부가 인천시에 땅을 팔았잖아요. 진실화해위원회 권고가 나왔는데도 권고는 권고일 뿐이고 안 따라도 된다는 식이지."
월미도 원주민 마을 터에 주둔하던 해군 제2함대사령부가 1999년 평택으로 이전한 뒤 해당 부지는 월미공원으로 조성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8년 '월미도 미군 폭격 사건'을 규명하며 정부와 지자체에 "원주민의 귀향 지원"을 권고했다. 권고를 둘러싼 엇갈린 해석은 김달순(79)씨에게도 불신을 남겼다.
원주민들이 인천시에 처음 귀향 진정을 낸 시점은 195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미도 실향민이 체감하는 행정기관의 귀향 접근법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고 입을 모은다.
일대일 면접 조사에서 17명 가운데 12명은 귀향 문제 대응에 대한 평가에서 "정부 또는 인천시가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조치를 했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답변은 5명이었고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평가한 실향민은 아무도 없었다.
"나이가 들어서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데, 우리는 전쟁에서 희생되고 부당하게 터전까지 빼앗겼잖아요."
실향민에게 무관심한 현실은 아홉살 때 월미도 폭격에서 살아남은 이애자(84)씨에게 '응어리'가 됐다. "하루라도 빨리 억울함을 보상받고 싶다"는 이씨 바람은 어디에도 닿지 않고 있다.
실향민들은 귀향 실현을 위해 가장 시급하다고 생각하는 조치를 묻는 말에 '국방부와 인천시의 책임 명확화'(8명)라는 항목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인천상륙작전에 앞선 폭격으로 원주민 마을이 초토화됐고, 진실화해위원회 추산 민간인 100여명이 희생됐지만 이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도 없었다.
▲법정 공방, 쟁점은 '소유권' 증명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11년 2월 월미도 원주민들은 대한민국과 인천시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진실화해위원회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주민들 요구에 부응하는 합당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한 지 3년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한인덕 월미도 원주민 귀향대책위원장은 "관련 특별법이 제정되지 않는 상황에서 공무원들은 특별법 없이는 귀향을 지원할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며 "결국 급한 마음에 인천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40여가구가 함께하기로 했는데 수수료 때문에 실제로는 35가구 정도만 참여했다"고 떠올렸다.
이듬해 1월 첫 재판을 시작으로 1년간 법정 공방이 오갔다. 쟁점은 '토지 소유권'이었다. 원고인 월미도 원주민들은 일제강점기에 토지가 수용된 채 두 차례 강제 이주를 겪었다. 광복 이후 귀속재산 처리 과정에서 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원고는 "미군의 월미도 점령 및 군사시설 설치 이후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게 됐다"며 "피고 대한민국은 1971년쯤 미군으로부터 토지를 반환받았음에도 연고자로서 우선매수권이 있는 원고들에게 매수 기회를 주지 않고, 국유 재산으로 귀속한 뒤 2001년 인천시에 매각했다"고 청구 취지를 밝혔다.
1심 재판부는 원고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월미도 토지 소유권을 문서로 증명할 길이 없었던 탓이다. 항소심은 2013년 2월부터 진행됐고 그해 11월 서울고등법원 역시 기각 판결을 내렸다.
"1964년 12월 말일까지 매매 계약이 체결되지 않은 귀속재산은 무상으로 국유화한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원고들에게는 구 귀속재산처리법에서 정한 우선매수권이 인정될 수 없다. 고향으로 돌아갈 권리가 피고들 행위에 의해 위법하게 침해됐다고도 할 수 없다."
우선매수권이 사라지고 귀속재산이 법적으로 국유화한 1965년 월미도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피고 대한민국'은 1971년 미군이 철수하자 '징발 민유 재산'으로 분류된 토지를 포함해 소유권 보존 등기를 마쳤다.
인천시 인권보호관을 지낸 이준형 변호사는 "토지 소유권 증명이 어렵다 보니 현행법상 해결이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비록 원주민들이 패소했지만 진실화해위원회 권고를 고려하면 특별법을 만드는 게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언했다.

▲특별법안 모두 '임기 만료 폐기'
월미도 원주민 귀향 대책을 담은 특별법 제정 시도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2006년 인천 중구를 지역구로 둔 한광원 전 국회의원은 '월미도 사건 진상 규명 및 피해 주민 보상에 관한 특별법' 제정안을 처음으로 발의했지만 2008년 17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원주민들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한창이던 2012년에도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병행됐다. 문병호 전 국회의원은 소송 과정이 순탄치 않자 "월미도 사건은 전쟁 과정에서 국가 폭력에 의해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점에선 다른 과거사 사건과 유사하지만, 국가가 적합한 절차도 거치지 않은 채 민간인 토지 등을 빼앗고, 해당 토지를 매각해 금전적 이익까지 편취했다는 점에서 큰 차별성을 가진다"며 특별법안을 다시 발의했다.
월미도 사건 진상 규명과 보상 근거를 담은 이 법안 역시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방위원회 심의 단계에서 폐기 수순을 밟았다. 2017년 안상수 당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이 '월미도 군부대 설치에 따른 월미도 이주자 보상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지만 이 또한 빛을 보진 못했다.
특별법 제정이 번번이 무산된 건 한국전쟁 당시 다른 지역에서도 일어난 피해들과의 형평성 문제 때문이다. 2013년 국회 국방위원회 검토보고서에는 "전쟁 중 국가 행위에 대한 배상·보상 범위 및 수준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있어야 한다"며 "민간인 집단 희생 사건은 전국적으로 광범위하게 발생했으나 유사한 유형 피해에 대해 보상 내용이 다른 법률을 적용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제시된 바 있다.
변호사 출신 문병호 전 의원은 인천일보와 통화에서 "월미도 사건의 경우 진실화해위원회 조사를 통해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그에 따른 권고가 있는 상황이라 다른 전쟁 피해와 성격이 다르다"며 "결국 정부와 지자체, 정치권의 무관심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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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팀
특별취재팀=이순민·이아진·변성원·정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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