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바람 정겨운 섬 산행 비진도 선유봉에 오르다 [독자산행기]
바람이 제법 불었다. 배가 조금 흔들렸지만 흔들림 없는 인생 또한 어디 있으랴.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자연의 이치 따라 어울리면 되는 거지. 20대로 보이는 남자가 자기 키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배에 탔다. 아마도 야영에 필요한 장비를 메고 온 듯했다. 배낭을 베개 삼아 바닥에 아주 편하게 누웠다. 표정까지 아주 밝았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인데 자연스럽게 눕는 걸 보니 내심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나는 계획만 하고 실천은 하지 못한 일이었다. 혼자서 가느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비진도에서 적당한 자리를 골라 야영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비진도 내향선착장에서 내렸다. 비진도는 보배와 비교될 만큼 아름다운 섬이라서 미인도라고도 부르는 섬이다. 해안을 끼고 있는 마을이 평화로워 보였다. 비진분교는 교적비만 외로이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1944년에 개교해서 2012년에 폐교했다고 적혀 있었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끊어진 지 오래다. 비진분교를 지나 대등산을 옆으로 끼고 느릿느릿 해변 길을 돌아 걸었다. 푸른 바다와 나란히 걸었다.
크지 않은 섬이다. 섬을 도는 데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쉬엄쉬엄 걷기로 했다. 해변가에 앉아 따끈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를 즐겼다. 몽돌해변은 햇빛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조용한 몽돌해변 뒤론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마을 곳곳에는 이름 모를 나무가 있었다. 주민에게 무슨 나무인지 물었다. "팔손이나무예요." 특이한 이름이었다. 붙잡고 물어보니 여덟 개의 잎이 손가락처럼 갈라져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팔손이나무만큼이나 민박집도 많았다. 여름이면 많은 여행객이 해수욕 겸 휴가를 온다고 한다. 짧은 대화를 뒤로하고 몽돌해수욕장으로 향했다.
해수욕장에 서서 물수제비 띄우기 놀이를 했다. 물과 돌의 각도가 잘 맞아야 물수제비가 잘 일어난다. 납작한 돌을 던지면 퐁〜퐁〜퐁 하고 물 위를 날아갔다. 바닷물이 물수제비 돌을 물 위로 밀어내더니만 결국 받아들였다. 어릴 때 많이 한 놀이다. 옛 생각을 하면서 한참 동안 물수제비 띄우기 놀이를 즐겼다.
비진도는 두 개의 섬이 연결된 형태였다. 선유봉으로 가기 위해서는 두 섬을 잇는 길을 지나야 했다. 모래와 자갈이 섞여 사각사각 소리가 났다. 방파제 돌에는 바닷물에 밀려온 미역도 걸려 있었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라 발걸음을 낭비하면서 올랐다. 길옆으로 대나무 같은 나무가 늘어져 있었다. 우거진 좁은 길을 지나 조금 오르니 큰 바위 하나가 나왔다. 밀면 곧 무너질 것 같은 흔들바위였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시달렸는지 바위가 갈라지고 부서져 내린 모습이다. 손만 갖다 대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아 안쓰러운 마음에 그냥 지나쳐 선유봉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니 이름 모를 섬들이 바다 위에 옹기종기 떠 있었다. 소매물도와 한산도도 이웃해 있다. 처음 오는 곳답지 않게 이질감이 들지 않았다. 정답고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앞서 도착한 사람들이 비진도의 멋진 풍광을 즐기고 있었다. 소금기 묻은 짭짤한 바닷바람이 땀을 식혀 주었다. 바닷바람만이 가진 짭짤한 내음이 정겨웠다. 명당을 찾아 앉았다. 시 한 수 읊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풍경이었다.
"비진도 맑은 바람 한 저놈이시니 힘든 세상도 이리도 아름다운 세상인 것을, 차 향기에 마음을 맡기면 몸은 절로 따라올 테니 차와 한 몸이 되어 본다."
중얼중얼 머릿속으로 지은 시를 읊었다. 구름 그림자가 바닷물 위로 천천히 지나고 있었다. 멋진 풍경은 부지런한 사람만이 누리는 특권이다. 한참동안 비진도의 모습을 눈으로 담고 머리에 새겼다. 화가가 왔더라면 멋진 그림 한 폭은 쉽게 그릴 수 있었으리라. 야영한다던 청년이 생각났다. 지금쯤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고 있을 것이다. 좋은 추억 만들고 가라고 허공에 대고 말했다.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고 산에서 내려왔다. 일찍 내려오면 배를 기다려야 하고 늦어지면 배는 떠나버리니 배 시간에 잘 맞추어 산행해야 한다. 잘 있거라, 비진도야. 언제 다시 볼 수 있으랴. 미련이 남아 발자국을 남겨두고 비진도 외향에서 배를 탔다. 빨갛게 녹슨 닻이 한쪽 발은 바닷물에 담그고 한쪽은 모래를 밟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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