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일 러닝은 장거리 운전, 휴게소가 중요해요 [독자산행기]

한대희 서울 성동구 연무장길 2025. 4. 23.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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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트레일레이스 38K 팔공산 코스를 달리는 필자.

지난 4월 4일부터 6일까지 전라북도 장수에서 제5회 장수트레일레이스가 진행되었습니다. 저는 이 대회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일반적으로 러너들에게 대회가 좋고, 안 좋고의 기준은 코스 설계, CP에서 보급 상황 등으로 갈리는 편이잖아요? 제 기준은 살짝 다릅니다. 저에게 좋은 대회는 멀리서 진행하는 대회, 즉 가는 길에 휴게소를 많이 거쳐 가는 지역의 대회입니다. 이상하죠? 하하하.

운전을 하기 전에는 멀리 이동하는 걸 싫어했습니다. 지루하고, 가도 가도 똑같은 풍경만 보이는 것 같고, 이동하는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이동반경이 자연스럽게 넓어지면서 멀리 이동하는 것이 즐거움이 되었습니다. 장거리 운전 시에는 중간에 틈틈이 쉬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휴게소입니다. 각 휴게소는 특색 있는 상징물, 건축디자인, 특별한 메뉴 등이 가득 있습니다. 그걸 즐기는 재미에 빠져버렸습니다.

4월 4일 금요일 오전, 장수종합경기장을 도착지로 설정하고 출발합니다. 35번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길입니다. 거리는 대략 260km, 약 3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네요. 길을 따라 붙어 있는 휴게소들을 찾아보니 6곳이나 됩니다. 자주 들르던 휴게소도 있고, 처음 방문하게 될 곳도 있습니다. 가는 길이 벌써부터 즐겁습니다. 짧게는 10분에서 길게는 30분까지 휴게소에서 쉬어가며 장수로 향했습니다.

장수종합경기장에 도착하니 오후 1시입니다. 장수트레일레이스를 지원하는 여러 브랜드들이 러너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매년 규모가 점점 더 커지다 보니 참여하는 브랜드의 수가 많아져 볼거리, 즐길거리가 풍성합니다. 지역 대회의 부스에서는 로컬 브랜드의 제품들을 선보이기도 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온 러너들이 장수 로컬 브랜드를 체험할 수 있는 귀한 시간입니다.

오후 3시 이후부터는 장비검사를 받은 후 배번표를 찾을 수 있습니다. 장비검사는 꼼꼼하게 진행됩니다. 필수 장비 목록에 있는 건 반드시 챙겨야 합니다. 이 부분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러너 분들이 있습니다. 기다리는 줄 뒤에서 바라보고 있으면 느끼는 게 많아집니다.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트레일러닝은 종목 특성상 산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다쳤을 경우 관계자가 돕기 힘듭니다. 스스로 응급치료를 해야 합니다. 필수 장비를 제대로 챙기지 않으면 큰 사고로 번질 수 있습니다. 필수 장비는 꼭 챙기도록 합시다.

숙소로 돌아와 내일 있을 레이스를 준비합니다. 38K 팔공산 코스를 뜁니다. 비 예보가 있어 방수재킷을 챙깁니다. 날씨 변수에 대한 대비로 의류를 2세트 챙겼습니다. 긴팔 베이스레이어와 얇은 긴바지 한 세트, 반팔 베이스레이어와 숏팬츠 1세트. 대회 당일 날씨를 보고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대회 전날에는 좀더 일찍 자려고 합니다만 평소에 잠자는 시간이 아니다 보니 잠이 잘 안 옵니다. 꾸역꾸역 눈을 감고 잠을 청해 봅니다.

대회 당일에는 경기 시작 2~3시간 전에는 일어나는 것이 좋습니다. 에너지를 채워 줄 음식을 먹고 스트레칭으로 몸에 열을 내줍니다. 오전 6시, 다행히 비는 거의 안 옵니다. 다만 기온이 4~5℃ 정도에 바람이 불어 쌀쌀하게 느껴집니다. 추위에 약한 저는 좀 더 춥게 느껴집니다. 오전 7시, 드디어 출발입니다. 초반에는 여기저기서 대화하는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10km 지점을 넘어가니 조용해졌습니다. 숨소리, 발소리, 스틱이 바닥에 찍히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CP1 와룡자연휴양림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업힐 구간이 시작됩니다. 팔공산을 향해 뛰어 갑니다. 10km, 이어지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쉼 없이 걷고 뜁니다. 무리하지 않으려 신경 쓰며 움직입니다.

CP2 자고개에 도착했습니다. 비가 쏟아져 내립니다. 분명 강우량은 적다고 했는데 굉장히 많은 양의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바람도 매섭게 붑니다. 급격히 추워진 날씨 때문인지 몸이 굳습니다. 열을 내려고 에너지를 많이 쓰는 것이 느껴집니다. 자고개에서 다음 CP인 뜬봉샘방문자센터까지는 5km입니다. 하강 고도가 큰 구간이라 조심조심 내려갑니다.

대회장 내 스카르파 부스에는 둥그렇게 앉아 쉬어갈 수 있는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CP3 뜬봉샘방문자센터에 도착하니 여긴 특별한 메뉴가 있습니다. 자원봉사분들의 손으로 만든 따뜻한 미니 주먹밥입니다. 인기 폭발, 테이블에 놓일 시간이 없습니다. 자원봉사자 손에서 러너 손으로 전달되어 바로 입 속으로 사라집니다. 꿀맛입니다. 따끈한 온기에 몸이 조금 녹습니다. 현재 26km 지점, 이제 12km만 더 가면 결승점입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두봉으로 향합니다. 오르막을 오르는 중에 왼쪽 장경인대에서 신호가 왔습니다.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참이라 CP마다 파스를 뿌리고 있었는데 심하게 고통이 찾아온 것입니다. 참고 올라가다 도저히 완주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가만히 서서 고민했습니다. 완주를 포기하려면 CP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미 올라온 길을 다시 내려가는 게 너무 싫습니다. '이 상태로 남은 12km를 갈 수 있는가?'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했습니다. 결론은 'No!'. 저는 다시 CP3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올라오는 선수들에게 길을 비켜주면서 내려갔습니다.

CP3으로 돌아가 버스가 오길 기다렸습니다. 저를 포함해 DNFDid Not Finish한 선수들이 함께 대기하다가 버스를 타고 출발지점으로 돌아옵니다. 이번 대회엔 완주를 하지 못했지만 이 대회는 계속 있기에 다음 대회를 기약해 봅니다.

대회가 끝난 후, 정신을 차리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트레일러닝은 멀리 이동하는 장거리 운전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평소에 관리를 잘한 엔진이 받쳐 줘야 멀리 갈 수 있고, 휴게소와 같은 CP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며 경기를 운영해야 합니다. 도전하는 거리에 맞게 훈련을 하고 몸을 만들어야 하며 휴식 전략을 잘 세워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실패했지만 한 단계 더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완주자 그리고 비완주자 트레일러너분들, 추운 날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곧 다른 대회에서 환한 얼굴로 만나길 기대해 봅니다.

월간산 5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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