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더럽히는 일을 게을리 말라"... 거칠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의 손을 기억하라 [기고]

2025. 4. 23.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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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방종우 신부·가톨릭대 윤리신학 교수
22일 서울 중구 명동대성당 지하성당에 프란치스코 교황 추모 빈소가 마련되어 있다. 뉴시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던 날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한국시간으로 새벽, 새 교황의 선출을 의미하는 흰 연기가 바티칸에 피어오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고 다급히 방송을 켰다. 이후 모습을 드러낸 것은 라틴아메리카 출신의 교황이었다. 한동안 언론에서 보도했던 유력한 교황 후보가 아닌 생소한 인물이었다. 바티칸 광장에 모인 신자들을 축복하기 전, 그는 이야기했다. “이제 강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여러분의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여러분을 축복하기 전에, 여러분들이 먼저 주님께서 저에게 축복해 주시기를 기도해 주십시오. 잠시 침묵 중에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는 회중을 향해 고개를 깊이 숙였다.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TV를 통해, 간절히 새 교황을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의 모습이 전해졌다.

모든 것이 생소했다. 이전에 없었던 빈자들의 성인의 이름을 딴 '프란치스코'라는 교황명도, 로마를 벗어난 첫 공식 방문지가 난민들이 있는 람페두사였던 것도, 교황 관저에 들어가지 않고 게스트하우스에서 계속 머무르는 것도, 성목요일에 관례를 깨고 소녀의 발을, 이슬람 신자의 발을 씻겨주는 모습도 생소했다. 그러나 우리는 차차 깨닫기 시작했다. 그가 보이는 가치가 당연한 것이었지만 잊고 있었던 것임을. 그렇기에 그의 행보가 새롭고 낯설게 느껴짐을 알게 되었다.

2014년 8월 서울공항에 도착해 세월호 유가족 대표들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연합뉴스

새 교황이 선출되던 그해, 나는 이탈리아 유학길에 올랐다. 그사이에도 교황은 소탈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신자들에게 다가갔다. 회중들은 교황을 사랑했고 ‘자비’와 ‘사랑’으로 대표되는 그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는 여전히 이탈리아에 머무르고 있었다. 내가 지내던 수도회의 수녀님들과 신자분들은 한국에서의 교황 행보를 궁금해했다. 나는 성실히 고국의 뉴스를 전달했다. 예고에 없던 KTX 이동, 세월호 유족들의 세례, 124위 시복, 검소한 의전차량. 나의 이야기를 들으며 파란 눈의 수도자들과 신자들은 감동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기억하며 눈을 반짝였다.

2017년 4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탈리아 로마 레지나 코엘리 교도소를 방문해 한 재소자의 발을 씻겨주고 입을 맞추고 있다. 로마=EPA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년 4월 11일 바티칸 교황청 내 '산타 마르타' 게스트하우스에서 남수단 지도자들과 회동 중 무릎 꿇고 엎드려 살바 키르 남수단 대통령의 발에 입을 맞추고 있다. 바티칸=AP 연합뉴스

12년의 재위 기간 동안 교황은 끊임없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것들을 상기시켰다. 가난한 이들, 고통받는 이들을 지나치지 말 것을 강조했으며 인간의 욕심으로 파괴된 지역의 피해자들을 방문했다. 특별히 기억하는 것은 2019년의 모습이다. 교황은 분쟁 중인 남수단의 지도자들을 만나 무릎을 꿇고 엎드려 그들의 구두에 입을 맞추며 내전종식과 평화를 호소했다. 고관절 통증으로 걷는 것조차 힘든 고령의 나이에, 명예와 권력을 향한 욕심에 희생되는 이들을 보호해 달라며 가장 낮은 모습을 취하는 교황의 모습은 세간에 충격을 주었다. 어디 그뿐인가? '찬미받으소서' 회칙을 통해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애썼으며, 집이 없는 늙은 노숙인이 죽는 것은 뉴스가 되지 않고 주식시장의 하락은 뉴스가 되는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음을 비판했다. 행정적인 변화도 다양했다. 교황청 장관에 수도자를 중용하고 세계주교 정기총회 때에는 여성 참석자 수를 적극적으로 늘리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24년 8월 14일 서울에서 국내 소형차 쏘울을 타고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러한 행보는 마지막 눈을 감는 날까지 이어졌다. 선종 전 참석한 부활대축일 미사에서 교황은 이야기했다. "악은 역사에서 사라지지 않았고 끝까지 남아있을 것이지만, 희망이 있는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국민들, 레바논과 시리아의 신앙 공동체, 미얀마의 난민들을 기억함과 동시에 우크라이나와 같은 분쟁지역에서 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많은 국가에서 폐기의 대상이 되는 노인과 병자들, 태중에 있는 아이의 생명의 소중함을 강조했으며 여성과 어린이를 향한 폭력, 취약한 이들, 소외된 이들, 이주민을 향한 멸시가 계속되고 있음을 지적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교황을 사랑했지만 한편으로는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 속에서, 약자들을 끌어안는 한편 권력자에게는 비판을 쏟아내는 모습이 모두에게 감동적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교회는 세상에서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고 환경과 과학 기술의 영역까지 건드리는 가르침을 무의미한 것으로 여기기도 했다. 그동안, 누군가는 무모한 폭력의 희생자가 되었으며 나날이 세속화되어 가는 세상 안에서 허탈하고 외로운 마음은 커져만 갔다.

교황의 선종 앞에서 다시금 생각해 본다. 생소한 것들. 너무나 당연하지만 우리가 잊어버린 것들. 그러나 소중한 것들. 전쟁, 평화, 소외된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 평등한 사회, 환경 보호, 생명, 인간의 존엄성, 사랑, 희망, 정의. 이 얼마나 당연한 것들인가? 이것이 무의미한 것들이라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인류는 자기 욕심과 명예를 위해 불의에 침묵하곤 했으며 당장의 즐거움과 자유에 몸을 내맡긴 채 살아가고 있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나와 상관없는 이들이라 여기며 타인에게 미움과 혐오의 벽을 쌓기도 했다. 이러한 인간의 모습이 한순간에 변화되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교황의 행보 앞에서 우리는 적어도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껴야 할 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9년 12월 로마의 한 전시장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축복을 해주고 있다. 로마=AP 연합뉴스

이탈리아에서 유학생활을 마칠 즈음, 재학 중이던 학교의 기념일을 맞이해 교황과 직접 만날 기회가 있었다. 교황은 우리들에게 "손을 더럽히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라"라고 당부하셨다.어려움에 빠진 이들에게 다가가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라는 비유적 표현이었다. 이를 비추어 보면, 교황의 손은 퍽 지저분했다. 그러나 그 손은 참 아름다웠다. 피부병 환자를 끌어안고 머리를 맞대던 손, 아버지를 잃은 어린아이를 위로하며 아픔을 들어주고자 귀를 기울이던 손, 무한한 발전만을 목표로 하는 경제 개발을 과감히 비판하던 손. 탐욕 때문에 분쟁을 일으킨 사람에게도 평화를 위해 엎드린 손.

교황을 떠나보내며 이제 우리들은 그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다시 한번 인류의 공동선을 위해, 다시 한번 희망으로 나아가야 한다. 나 또한 한명의 사제로서 예쁘고 단정한 손이 아닌 거칠고 투박하지만 아름다운 손을 지니게 되길 희망한다.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해서 꼭 기억해야 하는 것들로 지저분한, 참 아름다운 손일 것이다.

방종우 가톨릭대 윤리신학 교수

방종우 가톨릭대 윤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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