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행정에…범죄자 '여권 무효화' 유명무실

김다빈 2025. 4. 22.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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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자의 해외 도피를 막고 귀국을 압박하는 수단인 여권 무효화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진 행정절차 탓에 실효성을 잃고 있다.

이미 출국한 범죄자에게도 국내 주소지로 등기우편을 두 차례 보내도록 돼 있어 여권이 정지되기까지 평균 한 달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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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체류자 여권 정지에 한달
국내 주소로 무효처분 통보해야
제3국 도피 우려에도 속수무책

범죄자의 해외 도피를 막고 귀국을 압박하는 수단인 여권 무효화 제도가 현실과 동떨어진 행정절차 탓에 실효성을 잃고 있다. 이미 출국한 범죄자에게도 국내 주소지로 등기우편을 두 차례 보내도록 돼 있어 여권이 정지되기까지 평균 한 달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22일 외교부에 따르면 지난해 수사기관 요청에 따라 외교부가 여권 반납 또는 무효 처분을 통보한 경우는 837건이다. 이 가운데 650건(77.6%)은 등기우편이 당사자에게 송달되지 않아 외교부 홈페이지를 통한 공시송달 방식으로 처리됐다.

수사기관이 해외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나 해외로 도피한 범죄자를 인지하면 외교부에 여권 무효화를 요청한다. 외교부는 해당 인물의 국내 주소지로 무효처분 통지서를 두 차례 발송하고, 송달 실패 시 공시송달 절차로 넘어간다. 이런 절차를 거치는 데 한 달가량 걸려 수사기관은 속수무책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사이 범죄자가 제3국으로 도피하는 사례도 있다. 과거 사내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전 D그룹 회장, 불법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 운영자, 후원금 사기 의혹으로 고발당한 윤모씨 모두 해외 도피 후 여권이 정지되기까지 4~6주가 걸렸다.

외교부는 행정절차법에 따라 우편 송달 방식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행법은 행정기관이 행정처분을 할 경우 우편 또는 교부에 의한 송달을 원칙으로 한다. 전자문서는 당사자 동의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된다. 2022년 개정된 행정절차법에는 ‘공공의 안전 또는 복리를 위해 긴급하게 처분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는 문자나 이메일 등의 방식으로도 처분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이 예외 조항을 활용해 유연하게 대응하는 부처도 있다.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증원 정책에 반발한 전공의들이 무더기로 사직서를 제출했을 당시 보건복지부는 이들에게 문자와 이메일 등을 통해 업무개시명령을 통보했다. 복지부는 일부 전공의가 수령을 거부하자 “발송 자체를 송달로 간주한다”고 했다. 효력이 즉시 발생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행법상 송달 규정이 당사자가 처분을 의도적으로 지연하는 데 악용될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종범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는 “중대한 피해를 발생시키고 도피한 범죄자인 경우에는 정부가 행정절차법상 예외 조항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며 “문자나 이메일 등 비대면 송달을 통해 소요 기간을 단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다빈 기자 davinc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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