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적한 ‘비관세 부정행위’, 한국도 안심 못 해
소고기 수입·환율도 관세 협상에 영향 줄 듯
(시사저널=오유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이 상호관세에서 비관세 장벽으로 시야를 옮기고 있다. 환율, 정부 보조금, 덤핑 등을 관세 부과를 위한 합리적인 근거로 활용하려는 목적이다. 한국 정부는 이에 대해 비관세 부정행위와 한국은 거리가 멀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나 8대 비관세 부정행위에 환율, 농업 기준 등 수년간 한국의 비관세 장벽으로 지적됐던 항목이 포함된 만큼 안심하긴 이르다는 지적이다.
20일(현지 시각) 트럼프는 트루스소셜을 통해 '8대 비관세 부정행위(NON-TARIFF CHEATING)'를 명시했다. 1순위로 환율 조작을 언급한 가운데, △부가가치세 △원가 이하 덤핑 △수출 보조금 및 정부 보조금 △보호무역적인 농업 기준 △보호무역적인 기술 기준 △위조, 불법 복제 등 지식재산권 절도 △관세 회피용 환적 등이 포함됐다. 관세 협상 테이블에 올릴 비관세 장벽을 직접 제시한 것이다.
주무 부처인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는 이같은 8대 비관세 부정행위에 대해 한국은 표적 대상이 아니며, 거리가 멀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인 만큼 덤핑, 보조금 등의 비관세 장벽 등이 이미 FTA로 해소됐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FTA를 사실상 무력화하고 있는 만큼 비관세 장벽과 관련된 논의는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 지난달 31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발간한 '2025 국가별 무역장벽보고서(NTE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보호무역적 농업 △보호무역적 기술 등의 항목에서 미국과의 충돌 가능성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 지도 데이터 반출도 협상 테이블에
비관세 부정행위로 지목될 가능성이 가장 큰 영역은 지도를 비롯한 위치기반 데이터, 온라인플랫폼법 등 국내 디지털 규제다. 업계에서는 구글 맵스(Google Maps) 등 미국 기업의 국외 지도 반출 문제가 문제될 수 있다고 진단한다. 현행법상 국내 고정밀 지도 데이터는 국외 반출 시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까지 수출이 허가된 이력은 전무하다.
USTR은 "한국에서 내비게이션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외국 업체는 한국 기업과 동등하게 경쟁하기 어렵다"며 "주요국 중 위치기반 데이터의 국외 반출을 제한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했다. IT업계의 한 관계자는 "구글이 지난 2월 지도 반출 허가 신청서를 냈고, 우리 정부도 8월까지는 결론을 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디지털 영역에서의 보복 관세를 예고하는 각서에 서명하는 등 관심이 많은 영역인 만큼이 문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온라인플랫폼법도 주요 쟁점 중 하나다. 온라인플랫폼법은 국내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최혜대우 요구 등을 규정한다. 이 규제가 구글·애플 등 미국 기업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NTE 보고서에서는 "이 규제안에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대다수의 미국 기업과 두 개의 한국 대기업이 적용되는데, 다른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 일부는 제외"라며 "미국 정부가 투명성 제고와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기회 등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며 논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이 외에도 망 사용료 부과, 공공 클라우드 수주 등 미국 기업에 불리한 관련 규제들이 부정행위 사례로 거론될 수 있다.
매년 USTR의 지적 대상이 됐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제한 등 농·축산업 부문도 협상 테이블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우리나라는 2008년부터 광우병 발생 우려가 큰 30개월령 이상 미국산 소고기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데, 최근 미국 축산업계가 관련 규정 개선을 USTR 측에 공식 요청한 상태여서다. NTE 보고서 또한 "과도기적 조치로 부과한 30개월령 조건이 16년 동안 유지되고 있다"고 문제를 짚은 바 있다.
환율 조작·부가가치세도 한국이 불리
환율 조작과 수출 시 관세 효과를 내는 부가가치세 문제도 안심하긴 이르다. 통상업계에서는 미국이 각각 중국과 유럽연합(EU)을 겨냥한 부정행위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한국은 지난해 11월 미국의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포함된 만큼 환율 문제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부가가치세 또한 EU(19%)보다는 낮지만, 미국의 주별 평균 판매세율(6%)보다는 높다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비관세 장벽이 수십 년간 각국의 통상 관행으로 유지되어 온 만큼, 미국의 요구가 일방적으로 수용될 가능성은 작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앤서니 가드너 전 주EU 미국대사는 WSJ을 통해 "비관세 장벽은 매우 복잡하고 심층적인 분석이 필요해 트럼프 대통령이 '없앱시다'라고 주장하는 건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외부 압력에 밀려 통상 현안을 검토하거나, 단기 현안을 둘러싼 세부 논의에 매몰되기보다는 중장기적 방향을 설정하고, 경쟁정책의 기조를 결정하려는 노력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미국과 관세 협상을 진행 중인 일본은 다음 주 미일 장관급 협의에서 비관세 장벽 개선안을 제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22일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미국 측이 첫 협상에서 자동차 안전기준, 쌀 의무 수입과 관련된 불만을 제기, 농산물 수입 확대를 요구했다"며 "다음 주 협상에서 쌀 일정량을 의무 수입하는 등의 비관세 장벽 완화 방안을 공식 제안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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