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EW]국가 자본의 기업투자와 정부의 역할

김희윤 2025. 4. 22.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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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한 정당 대표가 언급한 K엔비디아 투자나 공공기관 및 국부펀드의 투자 방향에 대해 여러 논의가 있었다. 국부펀드는 기본적으로 국부를 증진하고 미래 세대를 위한 재원을 마련한다는 공익적 목표 아래 운용되지만, 이들이 민간 기업의 주요 주주로 참여할 때 예상치 못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단순히 국가 소유 자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정 기업의 이익을 우선시하거나, 반대로 국가적 필요에 따라 기업 경영에 개입하려 들지 않겠느냐는 시각이다.

물론 이러한 우려가 과도하다는 반론도 있다. 국부펀드 역시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투자 주체이며, 합리적인 판단에 따라 투자 결정을 내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특정 기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을 정확히 예측하고 막대한 투자 수익을 올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금융시장이 아무리 효율적이라 한들 완벽하지 않으며, 내부 정보를 가지지 않은 외부 투자자가 지속적으로 시장을 뛰어넘는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특히 특정 자원에 의존하는 국가의 국부펀드는 포트폴리오가 편중되기 쉬우므로, 분산 투자를 통한 위험 관리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투자가 항상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자본을 투입한 모든 주체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국부펀드라고 해서 투자의 불확실성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문제는 국부펀드가 특정 기업의 지분을 상당 부분, 가령 30% 이상 보유하게 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영향력이다. 이 정도 지분율이면 주주총회에서 특별결의를 저지할 수 있고, 다른 주주들의 지분이 분산된 경우 사실상 최대주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 경우, 국부펀드가 해당 기업의 경영 전문성이나 시장 상황을 고려하기보다, 자국의 정치적 또는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의사결정에 개입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기업 경영의 효율성 보다는 다른 국가 목표를 우선시하거나, 비효율적인 사업 부문을 유지하도록 압력을 행사할 수도 있다.

설령 국부펀드가 직접적인 경영 개입을 자제한다 하더라도, 그 존재 자체가 시장의 작동 원리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거대하고 안정적인 국가 자본이 주요 주주로 버티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다른 잠재적 투자자들의 견제 심리가 약화될 수 있다. 경영진의 방만한 운영이나 잘못된 의사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는 행동주의 펀드나, 인수를 통해 경영 효율화를 꾀하는 세력의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 이는 결국 기업 경영의 건전한 긴장감을 떨어뜨리고, 장기적으로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과거 정부가 공기업을 통해 시장에 과도하게 개입하려다 비효율을 초래했던 사례들을 떠올려 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국가 자본의 바람직한 역할은 무엇일까? 시장에 직접 뛰어들어 특정 기업의 성공을 담보하려 하기보다는, 시장 전체가 효율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튼튼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공정한 '심판'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 불공정한 행정 및 법 집행의 경우 시장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참여자들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경쟁하고 혁신할 수 있도록 토양을 다지는 것이 국가의 중요한 책무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 규칙을 확립하고 엄정하게 집행해야 한다. 독과점을 방지하고 불공정 거래 행위를 규제하며, 모든 시장 참여자에게 동등한 기회를 보장하는 법규와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 우선이다.

또한, 안정적인 거시경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예측 가능한 통화 및 재정 정책을 통해 인플레이션과 환율 변동성을 관리하고, 경제 주체들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국가가 자본력을 활용해 시장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반드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국가의 부를 안정적으로 운영하여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면 당연히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다만, 진정한 국가 경쟁력은 정부가 직접 '선수'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선수가 공정하게 경쟁하고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경기장'을 잘 만들고 관리하는 데서 나온다.

박성규 미국 윌래밋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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