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과 차별 금지, 대선에서 사라져”

신다은 기자 2025. 4. 22.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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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탄핵 광장 자유발언자 6명 심층 인터뷰…“극우를 밀어내는 수단으로 차별금지·인권보장 필요”
2025년 4월14일 오전 전북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사무실에서 만난 조용화 민주노총 전북본부 부설 전북노동정책연구위원. 그는 탄핵 광장에서 12번에 걸쳐 마이크를 잡았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다소 충동적으로 무대에 올랐다. 2024년 12월9일, 조용화씨가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서 ‘불법 외노자 몰아내자’는 말을 들었을 때다. 용화씨는 최근 산업재해로 숨진 전북의 미등록 이주민 2세 강태완을 떠올렸다. “전 그분이 정말 저 같았거든요. 지역 청년 연구원이었고, 평생 가장자리에서 안으로 들어가려 했고, 죽어서도 ‘30대 몽골 이주노동자’라는 원치 않는 이름으로 불린 사람인데. (발언자가) 그렇게 부르니까 (이성이) 툭 끊겼죠.”

용화씨는 허둥지둥 자유발언을 신청했다. 그리고 외쳤다. “저는 트랜스젠더입니다. 끊임없이 ‘당연함’에 대해 생각합니다. (…) 어떤 사람이 당연해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불법이고, 정신병자고, 더럽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세상에 질문합시다. 우리에게 자신의 말과 기준을 따르라 강요하는 이들에게 맞섭시다.”

그 일을 시작으로 용화씨는 매주 자유발언을 했다. “대통령이 특정 사람들을 오염물이라고 치워버릴 수 있는 세상을 막자”고 외쳤다.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12번 커밍아웃했다. 시민 누구나 신청해 무대 발언에 나설 수 있었던 ‘오픈마이크’ 시스템 덕에 광장 시민 이야기가 생명력을 얻었다.

3명 중 1명 ‘차별금지·인권보장’ 요구

용화씨의 요구는 광장 시민 모두의 요구였다.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비상행동)이 2025년 2월10일~3월6일 자체 인터넷 공론장(‘천만의 연결’)에 기록된 651건의 시민 발언을 분석한 결과, ‘차별금지와 인권보장’(31%)이 1위로 꼽혔다. 민주주의와 정치개혁(23%), 돌봄과 사회안전망(8%), 노동권과 일자리(7%), 평화와 통일(7%), 기후위기 대응(7%), 경제와 민생안정(6%), 교육(5%), 생명존중(4%)이 뒤를 이었다.

그러나 정작 윤석열 탄핵으로 열리는 6·3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은 ‘경제성장’ ‘인공지능 경쟁’을 최우선 과제로 꺼냈다. 광장이 요구한 다양성 의제엔 침묵했다. 4월17일 현재 대선 출마 후보들 중 차별금지법 제정을 명시적으로 약속한 후보는 권영국 정의당 대표와 김재연 전 진보당 대표뿐이다.강성희 전 의원은 차별 금지를 원론적 차원에서 거론했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차별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으며,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차별금지법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한겨레21은 6·3 대선을 맞아 윤석열 탄핵 광장에서 자유발언에 나섰던 6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과 민주주의의 확산, 돌봄의 확장을 촉구하는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이들은 기성 정치가 낡은 공약을 ‘재탕’하는 대신 광장이 던진 낯선 언어와 의제를 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025년 3월1일 ‘윤석열 즉각파면 사회대개혁 제13차 범시민 대행진’에서 진은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우측)가 맨 앞에서 행진하고 있다. 진은선 제공

“‘내가 아는 세상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이야기’를 옆으로 치우는 거죠. 장애인도, 퀴어도, 여성도요. 모든 존재를 정상성의 규범 안에 집어넣은 뒤 벗어나지 말라는 걸 윤석열은 더 극단적으로 강화하려 했고 그걸 상시로 할 수 있도록 계엄을 선포했어요.집회에 나온 너희는 정상이 아니고 공간의 규칙을 위반했으니까 잡아갈 수 있다고요.” 용화씨의 말이다.

그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나중에’가 아닌 지금 당장 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극우적 토양이 전세계적으로 에스엔에스(SNS)와 커뮤니티로 되먹임하면서 확장시키는 과정이 오래 전부터 있었어요. 그걸 정치적으로 드러낸 스피커가 전광훈, 이준석, 윤석열 등이었죠.이걸 묵인하는 정치인도 있었고요. 민주당은 계속 차별금지법을 무시했고 원내 진보정당도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선 똑같이 갔던 면이 있어요. 보수 기독교의 목소리를 의식해서 (차별금지법을)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을 거고요.”

“5년 뒤가 너무 두렵다”

용화씨는 그래서 “5년 뒤가 너무 두렵다”고 했다. “이런 식의 태도를 방관하거나 동조하면 다시 계엄이 생길 거예요. 그래서 극우 정치의 도래를 막는 것으로서 다양성 정치가 가장 우선적인 문제가 돼야 한다는 거고요. 그런데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은 이걸 부차적인 문제로 생각할 게 확연히 보여서 너무 답답합니다.

그는 대선 주자의 천편일률적인 경제 공약도 의문스럽다고 했다. “사실 지금 노동불평등 같은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 경제를 살려내는 게 불가능한 상태인데요. 경제만 따로 떼어 완전히 다른 영역처럼 취급하는 게 문제죠.게다가 대선 주자들이 집중하는 부동산, 주식 같은 불로소득은 기반 없는 경제잖아요. 순식간에 거품처럼 없어질 수 있는 걸 경제부양책으로 이야기하는 건, 결국 현실 문제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숫자만 올리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아요.”

성소수자·이주민 문제 뺀 정치

충북 청주 페미니스트 모임 ‘걔네’의 활동가 김솔미(가명)씨도 6·3 대선에서 차별금지법이 전혀 얘기되지 않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했다. “광장에서 다양성이 인정받는 기분, 자신의 범위를 넘어선 연대를 경험한 일들이 있었잖아요. ‘나랑 관련 없을 것 같던 것이 관련 있었다는 걸 알게 되는 감각’이었다고 생각해요. 2030 여성이 노조 조끼를 입고 노동 의제에 관심 갖는 것도 이런 것과 연관돼 있는데, 조기 대선 과정에서 연대의 힘을 경험한 사람들이 또다시 외면받는 기분이었고요. 앞으로도 무력감을 느끼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미씨는 포괄적 차별금지법과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3조) 개정이 대선 국면에서 꼭 얘기돼야 한다고 본다. 2030 여성 상당수가 비정규직 노동자와 프리랜서라서다.“두 법이 정말 생존에 꼭 필요한 법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 대선에서도 이 부분이 외면될 가능성이 클 것 같아요.”

솔미씨는 지역 활성화 공약도 ‘대개혁’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청주만 해도 버스 노선이 부족하고 일찍 차가 끊겨서 이동에 큰 불편을 느낍니다. 또 산불 사례에서 보듯 소방시설도 부족하고 산부인과가 없어 큰 도시로 원정 출산을 가요. 자꾸만 효율을 따지면서 ‘사람이 적으니까 이런 건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정책을 편 결과예요. 저는 관광자원 확충보다 지역에 부족한 공공의료, 안전, 교통, 문화시설을 만드는 게 정말 시급하다고 봐요. 지역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걸 의견 내고 실현할 수 있는 자치성이나 공공성 회복도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2025년 2월8일 충북도청 앞에서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에서 활동하는 김솔미(가명)씨가 광장 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김솔미 제공

부산 시민 ‘주라사’(필명) 역시 다양성 정치가 실종된 한국 사회에 대해 지적했다. “일본 같은 경우는 극우파가 정당을 잡고 있지만 성소수자와 이주민 문제도 활발하게 논의하거든요. 그런데 한국에선 그런 얘기가 전혀 화두가 안 되더라고요.”

주라사는 ‘일본 혼혈’이라는 이유로 집단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학교에서 3·1절 광복 행진을 할 때도 ‘내가 거기에 낄 자격이 있나’ 생각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다문화 가정끼리 반을 따로 만들자’거나 ‘언어를 잘하니까 외고 가는 게 학교 실적에나 본인 진로에 좋다’는 선생님 말씀도 자주 들었고요. 고맙긴 하지만, 그것 외에는 선택지를 주지 않으려는 느낌? 저는 이과를 택했거든요.”

주라사는 자신과 같이 배척 속에 살아가는 이주민 2세를 위로하고 싶다. “지금은 개인과 국가를 어느 정도 분리할 수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어렵거든요. 이주민 2세들이 그런 말을 듣더라도 역사적 맥락은 우리 세대가 아닌 앞 세대의 잘못이니 자책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하고 싶었어요.개인 안에 정체성이 여럿이어도 어느 쪽을 선택할 필요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으면 좋겠다고도요.”

(계속)

 “탄핵 완성한 시민 극우 막아낼 다양성 정치, 지금 하라’”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류석우 기자 rainta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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