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뒤로 묶여 처형된 유해들... "이렇게 참혹할 줄이야"
[이재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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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월 초. 당진시 우강면 민간인 학살지 현장. 발굴 초기 모습이다. 이후, 유해가 추가로 발굴되기 시작했다. |
ⓒ 이재환 |
지난 4월 7일 합덕 전파관리소 관사를 짓는 과정에서 나온 유해를 모아 합장한 봉분에서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봉분 아래를 더 파 내려가자 반전이 시작됐다. 다량의 유해가 발굴되기 시작한 것이다. 팔이 뒤로 묶인 채 바닥을 보고 누운 유골, 벽에 앉은 상태로 세워진 유해들은 그날의 참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학살 도구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창을 포함해 구두, M1소총 탄피와 탄두, 구두, 단추 등도 함께 나왔다. 그렇게 지난 18일까지 발굴된 유해는 55구에 달했다.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직후 후퇴했던 국군은 그해 10월 초 당진지역을 수복했다. 수복과 동시에 '보복'이 시작됐다. 마을에 조직된 치안대 청년들은 '빨갱이(좌익) 색출'을 시작했다. 무고한 희생이 잇따랐다.
임홍빈 당진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 유족회장은 "그해(1950년) 10월 3일부터 학살이 시작됐다. 수 십명씩 트럭으로 싣고 와서 이곳에서 죽였다. 우리 아버지도 여기서 돌아가셨다. 우강면 지서(현 파출소)에서 붙잡혀 이곳으로 오셨다. 빨갱이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다. 단지 빨갱이로 지목돼서 억울하게 돌아가셨다. 그때 (마을에서) 똑똑하다 싶은 분들은 모두 그렇게 죽임을 당했다"라고 증언했다.
학살의 기억은 마을 곳곳에 스며 있다.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 "1990년대 모 교수의 추정에 따르면 이곳에서 500명이 죽었다. 인근 곳곳에서 끌려와 학살을 당했다. 우강면 공포리에서는 한 마을에서 49명의 희생자가 나왔다"라고 말했다.
이어 "(공포리) 유가족 중 한 분이 '총알이 아깝다며 창으로 죽였다'고 증언을 하기도 했다. 증언자들이 지목한 바로 그 지점에서 유해가 나온 것이다. 빨갱이로 몰리거나 보복이 두려워 시신을 찾지 못한 유족들도 많다"고 말했다. 유족들조차도 감히 찾기를 두려워했던 유해는 그렇게 75년 만에 세상으로 나온 것이다. 유해들은 마치 누군가 자신들을 발굴해 줄 것을 기다려 온 것처럼 당시 상황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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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굴 전 봉분의 모습. 봉분에서는 유해가 발굴되지 않았다. 하지만 봉분 아래를 더 파래려가자 유해가 쏟아져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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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로 묶여 처형된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손이 뒤로 묶여 골반위에 올려진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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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22일) 비 예보 탓에 발굴 현장은 천막으로 덮기 위한 작업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발굴현장이 침수될 경우 작업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장은 처참했다. 희생자들을 무참히 처형하고 구덩이에 밀어 넣는 과정을 반복한 것일까.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장은 "대부분 팔이 뒤로 묶인 채로 죽임을 당했다"라며 "이렇게 참혹할 줄은 몰랐다"라고 혀를 찼다.
유해 발굴 현장을 담담하고 있는 B팀장은 "봉분을 열었을 때는 재매장 된 터라 뼈가 모두 부식되어 사라진 상태였다"라며 "하지만 봉분 아래 쪽에서 유해가 발굴됐다"고 발굴 초기의 분위기를 전했다.
B팀장은 "방공호(형태의 학살지) 같은 경우 유해가 일렬로 나오곤 한다. 한두구 정도가 겹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곳은 유해가 무덤처럼 한곳에 묻혔다. 이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좀더 살펴봐야 겠지만 아래 쪽에도 유해가 더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일단 위쪽에 드러난 유해들을 발굴 한 뒤 아래쪽도 더 살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B팀장은 "뒤로 묶인 상태의 유해도 발굴되고 있다. 팔이 뒤로 꺾여서 골반 쪽에 놓여 있다. 일부 인골은 벽쪽으로 기대어 있다. 학살을 하고 한쪽으로 차곡차곡 쌓아 둔 것 같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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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진시 우강면 한국전쟁당시 민간인 학살지에서는 용도를 알수 없는 유품도 나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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